그 날도 옥상 테라스에서 H기자와 괴테에 대해 잠깐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잉~잉~' 소리가 나면서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계속 울렸다. 그는 말을 잠깐 끊고 나에게 전화를 받으라 하였다.
폰을 꺼내서 보니 칠득이였다. 안 받으려 했으나, 그는 옆에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그에게 잠깐 여유 시간을 주는 것도 좋겠다 싶어 전화를 받았다.
칠득이는 굉장히 조용한 목소리로 할 말 있으니 저녁에 뚝방에 보자며 전화를 끊었다. 칠득이는 말이 많다. 통화할 때도 쓸데없는 소리만 해서 시간 끄는데 선수인데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용건만 말하고 끊으니 좀 당황스러웠다.
H기자와 대화를 마친 후 퇴근하여 집 근처 뚝방으로 갔다. 집 앞에는 개천이 하나 흐르는 데 시에서 사람들이 걷기 좋도록 구성해 놓았다. 벤치도 꽤 많이 설치해서 앉아서 대화하기 좋았다.
난 친구들과 만나면 항상 앉는 다리 밑 벤치로 갔다. 거기엔 칠득이, 낙하가 먼저 와 있었다. 우리는 모두 불행히 남자였으며, 더 불행한 건 외모가 서로 추하여 같이 다니면 요즘 말로 '다라이 배틀' 하냐는 소리를 들었다.
칠득이는 뒤통수에 500원짜리 땜빵이 있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 후 장발인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185m의 장신인데도, 몸에 살이 없어 슈퍼모델과 흡사한 갸냘픈 젓가락 몸매를 가졌다. 모자란게 특출난 점인데 숫자에 너무 약해. 간단한 산수도 잘하지 못한다. 본인 말로는 숫자 혐오증이 있다는데 그런게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낙하는 고 1 신학기 첫 날, 선생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선생은 뜬금없이 수업 첫날 떠드는 사람에게는 벌칙으로 2층 교실에서 밖으로 '낙하'하고 외치며 뛰어 내리게 할 거라 말했다. 시범으로 주번 나오라고 했는데, 주번이 낙하였다.
선생은 낙하에게 시범이니 창가로 올라가 교실 안으로 '낙하'하고 뛰어 내리라고 했는데, 이 미친놈이 밖으로 뛰어 버렸다. 그래서 다리가 부러지고, 119 오고 난리가 났다. 나중에 친해져서 왜 그랬냐 물으니, 학기 초반은 기세라고, 여기서 배짱 없는 모습 보이면 얘들한테 호구 보인다고 밖으로 뛰어 내렸다고 하더라. 기세 때문에 다리를 부러뜨리다니 참으로 미친놈이구나 싶었다.
1770년 가을 스물한살의 괴테는 운명적 만남을 하게 된다. 다섯 살 위인 문학청년 헤르더를 만난 것이다. 헤르더와 괴테는 독일문학계에 ‘질풍과 노도’란 커다란 운동을 일으킨다. 헤르더는 프랑스문학을 모방만 하고 있는 독일의 식문지 문학을 날카롭게 공격하며, 문학이란, 진정으로 개성이 있고 내면에서 솟아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헤르더에게 괴테는 많은 걸 배웠다. 특히나 그동안 괴테는 무얼 쓰던지 최고라는 칭찬만 받았다. 하지만 헤르더는 그런 괴테의 글을 보고 가차없이 꾸짖으며 그의 허식과 생명력 없는 문장에 독설을 퍼부었다.
괴테는 그의 꾸짖음 진심으로 좋아하며 더욱더 자신의 글에 박차를 가했고 25살에 독일문학계에 질풍노도의 태풍을 일으킨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완성하였다.
괴테가 헤르더를 만나 질풍노도를 일으켰듯이, 뚝방에 앉아 날파리를 내쫓기 위해 팔을 휘휘 젖는 그들을 보며 나 역시 이들을 만나 질풍노도를 일으킨 그때를 잠시 추억하였다.
낙하는 누나만 세 명 있는데 집에 놀러가면 누나들이 우릴 그렇게 따뜻하게 잘 챙겨주셨다. 라면도 끓여주시고, 막내 낙하 대하듯 살갑게 해주셨다. 그런데 낙하가 고 3 때 5살 위인 둘째 누나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둘째 누나는 낙하 누나들 중 제일 이쁘셨다. 우리가 가면 귀찮아하지도 않으시고, 생글생글 웃으시며 뭐든 먹을 걸 주시고 요리도 해 주셨다. 낙하는 아버지가 안 계셔서 어머니와 같이 살았다. 그런데 둘째 누나가 병에 걸리자, 빌딩 청소하시는 어머니와 경리 일 하는 누나들이 돈을 모아도 병원비는 턱없이 부족했다.
칠득이와 난 둘째 누나가 계신 병원으로 병문안을 갔었다. 그 예쁜 누나가 초췌한 모습으로 코에 호흡기 같은 걸 낀채, 와줘서 고맙다고 배시시 웃으며 낙하를 잘 챙겨달라고 들었을 때, 낙하가 어머니와 병원비 땜에 대책이 없어 난감해 하는 대화를 들었을 때, 뭔지 모르지만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고 여겼다.
병원을 나와 칠득이와 대화하며 구걸이라도 해서 낙하를 도와주자고 했다. 구걸을 어디서 하는가? 원래 불리할 때는 홈 그라운드에서 싸우면 반은 이긴다는 명언이 생각나 우리는 학교에서 구걸하기로 결정했다. 우린 다이소에서 전지를 구입하고, 박까스 박스 가로 윗 부분 뚜껑을 없앤 채 돈 넣는 통을 만들었다. 전지에는 낙하 누나의 사연을 내가 구구절절하게 썼다.
다음날 아침부터 학교 1층부터 4층까지 쉬는 시간마다 교실에 들어가 고1, 고2 후배들에게는 삥 뜯는게 아니고 좀 도와달라고 읍소했다. 교실을 돌다가 점심시간에는 밥을 포기하고 급식실 앞에서 전지는 칠득이가 들고 난 옆에서 몇 천원 들은 박까스 박스 소중히 앞으로 받든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말 그대로 진짜 구걸을 했다.
칠득이 이 새끼는 자꾸 부끄럽다고, 전지들고 벽으로 자꾸 돌아서려고 하길래, 발길질을 해가며 똑바로 하라고 채근했다. 그러나 구걸의 성적은 별로 좋지 못 했다. 박카스 통엔 동전 몇 개와 천원 짜리 몇장만 있을 뿐이었다. 학생들은 매점에서 지들 빵은 사 먹어도 우리에게 돈을 주진 않았다.
구걸에 실패해 집에 왔을 때, 엄마가 낙하에게 전화가 왔었다고 하여, 전화했더니 낙하가 병원에서 병원비를 못내니 누나 치료도 못 했는데 나가라고 한다고 울먹이더라. 그 소리를 들으니 나도 눈물이 날 거 같아, 일부러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야이, 병신아! 왜 울어! 병원비는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으니까! 울지마! 맨날 나한테 남자는 기세니 어쩌니 하면서 왜 등신같이 울어!"
낙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알았어"하고 전화를 끊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쓰레빠가 뒤집어 지는 줄도 모르고 다급하게 칠득이네로 달려가 칠득이를 불렀다.
칠득이와 상의했다. 이런 구걸로는 안 된다. 돈 있는 사람의 지갑을 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한 곳은 교무실이다. 선생들에게 가서 구걸하자라고 내가 칠득이에게 말하자. 칠득이는 눈이 돌아가며 입에 개거품을 물며 그건 반대라고 하지 않는가. 하기사 칠득이는 선생도 싫어하고 그들이 모여 있는 교무실은 더 싫어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흥분 상태인 그에게 내 전략을 말했다. 선생들에게 돈을 빌리자고 말이다. 사람의 심리는 묘해서, 구걸한다고 하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빌린다고 하면 쉽게 줄 수도 있다. 난 그 돈을 진짜 갚을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여름방학 때 만난 원양어선 참치배를 탔다가 돌아온 선배가 있었다. 선배는 1년 동안 바다에 있으며 몇천만원을 벌었다고 했었다. 칠득이에게 난 낙하 누나 병원비를 선생들이 준다면 그들의 목록을 다 써서, 참치배를 타서 급여를 타면 모두 갚을 계획이다. 이런 계획을 선생들에게 말한다면 우리를 도와주지 않겠냐고 말했다.
칠득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야, 너 근데 왜 이렇게까지 해?"
그래 좋은 질문이다. 낙하의 누나는 워낙 예뻤기에 항상 누나를 보면 마음이 설렜다. 이렇게 병원비를 해결하여 누나가 완쾌되면 낙하 집안에서 나와 누나를 결혼시켜 줄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날 이런 행동으로 이끈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모르겠다. 배까지 탈 정도로 내가 그 누나를 사랑했나?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그럼 나는 왜 이럴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괴테의 개인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이다. 괴테는 이미 약혼한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 한 괴테는 그 누구에도 말하지 않고 그녀가 있던 동네를 떠났다.
이런 그의 격정적인 마음을 쓴 소설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이 소설은 괴테를 일약 유럽 최고의 스타로 만들었다. 주인공 베르테르를 모방해 자살한 청년들도 있었고, 여주인공 로테처럼 자신에게 사랑을 바칠 베르테르를 찾아 이혼한 유부녀도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베르테르 효과"라는 유명인을 따라 자살하는 모방 심리에 대한 심리학 용어도 이 소설에서 유래했다. 이러니 괴테가 무슨 가정파괴범이자. 자살 칭송자 같으나 괴테는 그런 의미로 쓴 소설이 아니다.
당시 유럽은 계몽주의 사상에 흠뻑 젖어 있었다. 무엇이든 이성의 판단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이성 만능주의 사상이었다. 괴테는 인간은 그러지 않다고 보았다. 본인도 설명 못 한 격렬한 감정이 있고, 개성, 열정이 있는 무한의 존재로 보았다. 그걸 표현한 소설이 바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나도 그랬다. 가슴에서 이성은 아니라고 말한다. 논리타당한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너의 젊음을 참치배 타면서 보내면 안 된다. 그들은 남이다.' 라고 외쳤다. 그러나 내 마음 밑바닥에서 폭풍처럼 휘어 잡을 수 없는 그 무언가의 마음은 '그렇게만 해야한다'라고 외치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니, 좋아하는 누나를 위해 참치배를 타는 인생도 나쁘지 않다고 질풍노도의 마음이 일어났다.
그동안의 삶은 뿌였으며 흐렸다. 그런데 삶에서 뭔가 불 태울 목표가 생기자. 마음에 용기가 생겼다. 단호해졌다. 망설임은 없었다.
칠뜩이의 두 눈을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게 하고 싶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마치 영화처럼 말을 마치자, 어디선가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강한 바람에 아카시아 나뭇 잎이 바사삭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어두운 밤 전봇대 등불 아래에서 칠득이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말했다.
"나...나도..갈...갈래. 나도 참치배 탈래."
칠득이가 결연히 고개를 들고 말했다.
엥? 이번엔 내가 놀랐다. 나도 칠득이처럼 '너는 왜?'란 의문이 들었다. 칠득이에게 물었다. 넌 왜 타냐 나 혼자 타도 된다. 넌 여기 남아 동생들을 챙겨야 하지 않냐. 참고로 칠득이는 여동생이 둘인데 중, 고딩이다. 아버지는 일을 안 하신다. 집에 소주병을 장식하시는 알콜 중독 컬렉터였다. 어머니가 홀로 벌어 생계를 유지했다. 칠뜩이네 집은 가족들이 웃는 날 보다 우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나 혼자 간다고 하니 이 미친놈이 지도 탄다고 바득바득 우기는 거 아닌가. 불현듯 이런 생각도 들었다. 지금 무대는 내가 주인공인데 이 놈이 껴들면 난장판이 될거야. 주인공은 오로지 나여야 해.
어두운 골목길에서 참치배 태워 줄 사람은 없는데 둘이서 내가 탄다 너는 내려라는 미친 대화를 20분째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나처럼 칠득이도 누나를 좋아하는건 아닌지, 그리고 나처럼 결혼을 꿈꾸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지루해진 대화의 종결을 위해 본심인지 아닌지 나도 모르는 본심을 말했다. 누나를 사랑한다고 말이다.
칠득이는 그 말을 듣자마자
"아우, 시벌. 그럼 니가 배 타야지."
라고 말하며 단숨에 승복하더라. 어렵사리 칠득이의 승낙(?)을 받았다.
다음 날, 점심 시간에 교무실 앞에서 둘이 계속 서성거렸다. 나도 말은 대차게 했지만 정작 용기가 나지 않았다. 칠득이는 둘둘만 전지를 손에 들고 '이러다 점심 끝나겠어. 끝나겠어'라고 혼자서 바닥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식은땀이 났다. 누나는 병상에서 홀로 격투 중인데 난 무엇이 그리 부끄러워 한걸음을 전진하지 못 하는가! 제발! 등신아! 한발만 앞으로 가자!
눈 감고라도 문을 열자 마음먹고 눈을 질끈 감고 문 손잡이를 잡았을 때, 칠뜩이가 뒤에서 둘둘만 전지를 펼치며 날 밀치고 '도와주십쇼! 도와주십쇼!'하고 외치며 들어가 버리는게 아닌가!
아, 이게 교과서에서 읽었던 3.1 운동의 모습일까? 일제 침략에 항거하여 태극기를 휘날리며 울부짖은 유관순 누나처럼 칠뜩이는 지 혼자 뛰어 들어가 전지를 휘날리며 울부짖고 있었다.
'미친놈아, 전지 내용을 읽어야 우릴 도와주지. 그렇게 태극기처럼 휘날리면 어떻하냐'
라며 울부짖는 그를 달려 잡으러 들어가려는 그 때였다.
- 3부에서 계속 됩니다.
참고 문헌
요한 페터 에커만, 『괴테와의 대화 1, 2』, 민음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