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PPoHpGzcWLI?si=nfMXmHtW7moApgDj
미성년자를 갓 벗어났을 때는 어른에게만 허락되는 자유가 그저 달콤하게만 느껴졌다. 그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학업, 미래를 위해 해야만 하는 활동들, 주변과 나를 비교하다 보니 한껏 자라난 조바심. 그런 압박에 짓눌려 지낼 때면, 나는 자주 과거를 떠올린다.
지루한 학교에서는 새로운 것, 재미있는 것을 가져온 아이가 언제나 학급의 중심이 된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도 이처럼 주변을 끌어모으는 힘이 있었다. 아무래도 좋아하는 것을 나누고픈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탓이 아닐까. 오빠가 나에게 게임이라는 별천지를 가르쳐 주었듯이, 나는 내 친구들을 내가 걷는 길로 인도하고는 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지 않았을 때는 A4 용지 여러 장에 연필로 대충 그린, 키우기 게임을 직접 만들었다. 내가 친구들의 캐릭터를 종이에 그려 주면, 친구들은 본인의 캐릭터를 원하는 대로 육성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게임. 시간이 지나자 종이는 구겨지고, 그림은 이리저리 번져 알아볼 수도 없게 되어 그 게임은 그대로 잊히고 말았지만. 모두와 함께 같은 게임을 즐겼던 경험은 쉽게 잊을 수 없었다.
볼품없는 종이보다는 화려한 전자기기를 더욱 선망하게 된 시기, 나는 모두가 같은 게임으로 하나 된 상황을 한 번이라도 더 경험하고 싶었다. 그렇게 친한 친구들을 ‘그랜드체이스’라는 온라인 게임으로 끌어들였다. ‘그랜드체이스’의 특이점이 있다면, 협력하며 플레이하는 ‘던전’과 상대 캐릭터를 쓰러뜨리는 것이 목적인 ‘대전’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때의 나는 비겁하게도, 내가 정보의 우위에 있다는 점을 이용해 ‘대전’에서 친구들을 손쉽게 쓰러뜨리는 것을 즐겼다. 묘한 우월감과 함께 승리를 거머쥐고 나면 기분은 좋았지만, 곧 허무가 찾아왔다. 나는 어쩌면 친구들이 내가 없이도 게임을 곧잘 플레이하는 걸 두고 보기 힘들었던 걸지도 모른다. 친구들보다 부족해지는 것, 머지않아 내가 타인에게 별 의미가 되지 못하는 것. 이런 것에 유독 집착하며 게임을 플레이했다.
사실은 그런 경험들도 모두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 주는 소중한 이들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것인데도 말이다. 친구들이 게임에 접속이 뜸해지고 나서야 그들을 온라인 게임에 초대하게 된 계기가 다시금 떠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으로 모두가 즐겁기를 바란 것인데, 어느새 나는 나의 열등감을 핑계 삼아 타인의 즐거움을 빼앗아버리고 말았던 거다.
그때부터는 토라진 친구들을 달래고, 함께 ‘즐겁게’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에 집중했다. 경쟁 대신 협력을 중시하는 ‘던전’을 향해 모두와 새로운 여정을 떠났다. 내 친구들이 몬스터를 없앨 때, 나는 내 안의 추한 열등감을 하나씩 없애 갔다. 그렇게 클리어한 ‘던전’ 안에는 우월감도 허무도 없었다.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해 가며 강한 적과 싸워 이겼을 때의 성취감, 함께이기에 의미 있는 시간만이 유영하고 있을 뿐.
이렇게 과거를 반추하다 보면 새삼 깨닫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나의 가치를 저울질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라는 개인과 함께이기에 즐거웠다고 말해주는 친구들이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그렇기에 이제는 안다. 소중한 시간을 피워낸 경험이 있기에,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그러니 어떠한 것이 압박해 오더라도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