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보낸 마음통신-나는 오늘도 숲을 걷고 있습니다

by 물냉이

21세기의 세번째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겨울은 몇번이고 휴대폰의 액정을 오르내리며 잊혀져 가는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 하지만 갖가지 난방으로 잘 포장된 도시는 겨울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한해의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월 첫주 월요일 모니터 앞에 앉아 사람들을 추억해 봅니다. 연말은 예의로 가득찬 안부들이 관목숲의 박새들처럼 요란을 떨었지만 월요일 아침 답지않게 조용합니다.

숲을 대상으로 먹고 사는 일은 종종 막일 같아 힘이 들지만 조금씩 감춘 것들을 옷고름 풀듯 풀어주는 매력이 숲을 떠나지 못하게 합니다. 올해는 길없는 숲을 헤메야 하는 일을 육년만에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사람처럼 숲도 나이를 먹으니 그동안 변했을 숲의 인심을 살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습니다. 그런 숲에서 보고, 느끼는 것들을 소식으로 전하려합니다. 마음통신은 꽤나 오래전부터 조금씩 써오던 것인데, 얇아진 연의 끊을 다시 되살려 보려는 것입니다.

산에 있는 숲을 우리는 산림(山林)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숲이 산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낙동강하구나 한강하구 장항습지의 버드나무숲 처럼 강변에 있는 숲도 있고, 청송 주산지의 왕버들처럼 물속에서 숲을 이루고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순천만이나 벌교천하구의 갈대밭처럼 갯벌 위에 서도 숲은 존재 합니다. 고성의 북천의 달뿌리풀이나 양양 남대천의 물억새는 모래밭에서 숲이되어 바람따라 일렁이기도 합니다.

숲은 모임이라는 공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한그루의 나무가 살아가려면 열사람의 정성이 필요하고(木=人+十), 숲은 백사람의 정성을 필요로 합니다(林=10x10). 그 덕분에 매순간 한그루 나무에 열사람이 쉬어갈 수 있으며, 백사람이 숲의 혜택을 누릴수 있습니다. 사람이 곧 숲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숲에서 행복하기도 하고 고독에 몸부림 치기도 합니다.

이런 숲에서 마주하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마음통신이라는 짧은 칡넝쿨로 묶어 전달하려 합니다. 종종 문안의 글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언제나 숲에 사는 해랑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