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보낸 마음통신-어둠을 지나 봄을 바라봅니다

남한산성의 상수리나무숲과 소나무숲

by 물냉이

남한산성으로 가는 숲을 걸었습니다. 9호선 둔촌오륜역에 내려 고분군이 있는 광암동에서 출발해 금암산(321.2m) 능선을 따라 연주봉옹성-북문-로타리에 이르는 숲길이었습니다. 금암산의 숲길에는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가 섞여 숲을 이루고, 손길이 느껴지는 밤나무들이 숲길 주변으로 열병하듯 반겨주었습니다. 연주봉옹성을 지나면서는 잘자란 소나무들이 충신의 절개처럼 숲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소나무재선충 피해를 막기위해 방재를 해놓은 모습이 심각한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로 몇년째 어려움을 격고 있는 우리의 처지를 자연의 생물들은 오래전부터 겪고 있는데 이제 사람들이 다른 생물들의 처지를 조금 더 이해해 주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숲길엔 떨어진 낙엽이 겨울색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산의 겨울색은 갈색입니다. 눈이 내려 산을 새하얗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그 아래 바탕색을 없애지는 못합니다. 저 선명한 갈색이 바람에 삭고, 물에 녹으면서 검은빛이 돌게 되면 산은 낙엽을 토양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낙엽하나도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허물고 세상의 순리에 순응합니다. 이 겨울의 고통이 지나면 나무들은 더 푸르고, 생명력 넘치는 새싹을 낼 것입니다. 향기로운 꽃과 열매도 다 겨울의 인내가 있었기 때문에 꽃피울 수 있는것 아닐까요.

숨을 고르면서 능선을 따라 걷다보니 등에 땀이 배어 납니다. 힘든 산길도 천천히 걷다보면 그 강도가 훨씬 낮아 집니다. 숲에서는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숲에서 만나는 다양한 생명과 아름다운 경관을 누리는 것이 훨씬 가치가 있다는 걸 숲을 찾으며 배우게 됩니다. 나무의 가지가 붙는 연리지를 만나거나 피해를 입은 나무에서 새롭게 돋아나는 맹아의 생명력, 참나무 열매를 떨구는 도토리거위벌레의 바지런함, 산들 숲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의 속삭임, 이 모든 것이 숲을 찾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의 거리들입니다. 천천히 능선을 걷다보니 별도로 쉬는 시간을 오래 가질 필요도 없었습니다. 무리하지 않고 숲을 즐기며 걷는 산행을 많은 분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남한산성의 성벽이 보이면서 숲은 소나무숲으로 주인공을 바꿉니다. 우리는 한 숲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숲의 주인공을 '우점종'이라고 합니다. 우점종은 숲의 특징을 형성하고, 그 숲에 사는 다양한 생물들의 종류나 생태를 결정짓기도 합니다. 참나무에서 소나무로 주인공이 바뀌면 나뭇가지들이 푸른색에 거미줄처럼 뻗은 하늘경관이 짙은 소나무잎이 하늘을 가리는 경관을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는 보는 것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습니다. 숲이 주는 이런 영향은 좋고 나쁨이 아니라 변화와 새로움입니다. 참나무로 이루어진 겨울숲길을 걷다 소나무가 너른 산성의 길가에 숲을 이루고 있는 풍경은 신산함을 줍니다. 이제 산행도 거의 끝났기 때문에 마음은 더 가벼워집니다.

산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낮고 좁은 암문을 지나야 했습니다. 컴컴하고 바닥이 잘 보이지 않는 통로를 걷을 때면 본능적인 긴장을 느끼게 됩니다. 구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암문을 빠져 나왔을 때 새롭게 마주하는 경관에 더 다른 기분을 느끼게 하는 촉매제가 되어 줍니다. 참나무숲은 겨울의 추위라는 터널을 지나면서 푸르고 생명력 넘치는 봄숲을 시작합니다. 껍질에 감싸여 깜깜한 세계 속에 갇혀 있던 종자들도 겨울지나 봄을 맞이 하면서 껍질을 가르고 싹을 틔워 새로운 세상을 맞이합니다. 숲에서의 겨울도, 인생에 있어서 어려움도 다시 생각해보면 생명력을 얻거나 행복을 위한 과정일 뿐인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서로가 어려운 세상에서 우리가 용기를 갖고 새로 힘을 내야 하는 것은 그 뒤에 우리가 맞이할 행복을 알기 때문입니다.

수리중인 북문을 내려와 남한산성 로타리에 이르렀을 때 어두운 하늘에서 눈송이들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만나는 눈은 포근하고 따스한 느낌을 줍니다. 이 산골의 집들에도 하나둘 불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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