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광성보의 곰솔숲
마음이 답답한날, 어디 멀리 가기도 애매한 날, 당신이 수도권에 산다면 강화도를 추천합니다. 차를 이용한다면 한시간이면 갈 수 있고, 바다와 산, 한적한 어촌과 농촌의 풍경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김포를 지나 염하(鹽河)라 불리던 강화해협을 건너면 만날 수 있습니다. 강화도는 국내에서 5번째로 큰섬이며 강화도를 본섬으로 하는 강화군은 15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강화하면 삼별초의 항쟁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만 강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민족이 뿌리를 내리고 살던 섬입니다. 강화도의 마리산에는 강화도를 찾았던 우리의 선조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참성단이 마리산에 있습니다. 고려시대까지 왕이 참성단에서 천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강화도는 고려시대부터 외세의 침탈을 막는 보루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강화에는 유난히 진이나 보, 돈대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 많습니다. 이들은 모두 조선시대 군사시설 일컫는 말인데 강화도에는 5진 7보 53돈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군사시설이 많다는 것은 안전보다는 위험이 상존하는 곳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곳들은 병자호란, 신미양요 같은 우리의 귀에 익숙한 전난들을 겪으면서 수많은 국민들이 가슴 저미는 희생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오늘은 멈추지 않고 흐르면서 시간과 함께 역사를 쌓아온 염하를 바라보는 광성보의 숲을 찾아갑니다. 광성보에는 선연한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이곳을 걸으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을 자취를 보며,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고 부르짖으면서도 자신과 함께하는 무리를 위해 법의 논리마저도 수시로 바꾸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잠시라도 잊을수 있습니다. 광성보의 숲은 곰솔과 상수리나무, 감나무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강화도를 다니다 보면 집주변이나 농경지, 길가에 유난히 상수리나무가 많이 눈에 띕니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수도 있지만 우리의 역사와 연관이 깊은 나무이기도 합니다. 고려시대 강화도에서 몽골에 맞서던 시절을 생각해봅니다. 적의 위협이 쉽게 끊나지 않고 섬에서 버티는 것이 장기전으로 갔을 때 섬에서 나는 식량만으로는 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특히 일반 백성들은 그 어려움이 더했을텐데 이때 백성들에게 중요한 보조식량의 기능을 한 것이 도토리였을 것입니다. 도토리 중에 상수리나무는 열매가 크고 맛이 좋아 우리 선조들이 집주변에 많이 심던 나무입니다. 지금 우리가 강화도에서 마주하는 상수리나무는 그 역사의 흔적일지 모릅니다.
광성보는 차로 김포의 대명포구를 지나 초지대교를 건너 북쪽으로 10분정도 올라가면 있습니다. 초지진과 초지항, 덕진진을 지나 덕성리 바닷가의 곶처럼 툭튀어나온 곳이 있는데 바로 이곳에 광성보가 있습니다. 항공지도를 보면 이곳은 마치 새의 머리처럼 생겼습니다. 북쪽으로 펼쳐진 농경지가 마치 날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김포의 부래도가 마치 새가 주워먹으려는 콩같기도 합니다. 사적 227호인 광성보는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을 막기위해 강화해협을 따라 돌과 흙을 섞어 쌓은 성으로 조선시대 숙종때인 1679년에 석성으로 다시 쌓았습니다. 1871년 신미양요 때 이곳을 쳐들어온 미국의 극동함대는 열악한 무기로 대항한 조선군을 초토화시켰습니다. 그때 순국한 이름없는 군인들의 무덤이 '신미순의총'입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표를 사기위해 이동합니다. 주차장 주변에는 수형이 잘생긴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습니다. 꽤나 오래되어 보이는 나무들인데 나무의 표피가 작게 갈라져 있는 것이 눈에 띄어 가까이 가보니 감나무입니다. 겨울이라 감은 달려있지 않지만 강화의 감은 꼭지쪽이 오돌도돌하게 튀어 나와 있어 다른지역의 감과 생김새가 다르고, 대부분 씨가 없는것이 특징입니다. 모양 때문에 접시감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널리 알려진 이름은 장준감입니다. 장준감은 신증동국여지승람(중종25년, 1530년)에 기록되어 있는 강화도에서 역사가 오래된 나무입니다. 홍시의 특성상 유통기간이 길지 않아 지금은 상품으로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표를 끊은 후 언덕처럼 보이는 바닷가에 곰솔이 줄지어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며 안해루(按海樓) 쪽으로 올라갑니다. 안해루는 영조때 성을 수리하며 새로 만든 것으로 126년 뒤인 신미양요 때 파괴 된 것을 1976년 다시 복원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던지 수리나 신축을 하지 않은 건축물이 거의 없습니다. 그만큼 많은 시련을 겪으며 역사를 만들어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 세우는 불굴의 정신이 이작은 나라를 세계에서 꿋꿋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주었지만 그때마다 국민들은 고통을 받아야 햇습니다. 함포고복이라는 사자성어가 왜 태평성대를 뜻하는 말인지 알것 같습니다. 국민이 편하면 그게 잘사는 나라 아닐까요.
광성돈대를 보고 안해루를 지나 공원처럼 꾸며놓은 곳을 걸어봅니다. 이곳에는 감나무와 함께 모감주나무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씨가 중국에서 바다를 건너 왔다는 이야기가 있는 모감주나무는 전국에 분포하는 모습을 보면 원래 우리나라에 자생했던 나무라는 생각이듭니다. 봄철에 노란꽃을 화사하게 피우는 모습이 검은 열매만큼이나 매력적인 나무입니다. 쌍충비각을 지나 손돌목돈대를 향 천천히 걸어봅니다. 길 양쪽으로 서있는 곰솔은 바닷바람에 맞서 살면서 스스로의 기개를 꺾지 않는 나무들입니다. 나무고 사람이고 바람을 맞다보면 그만큼 억센 잎을 갖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가봅니다. 광성보의 숲길은 강화나들길의 2코스 구간이기도 합니다. 강화를 찾는 발길들은 조용하면서도 꾸준해 겨울에도 이 길을 걷는 이들을 쉽게 마주칩니다.
손들목돈대를 들어가 바다를 봅니다. 염하 건너 김포 쪽에 있는 부래도 옆에는 갯벌이 퇴적되면서 새로운 섬이 생기고 있고 그곳엔 갈대가 무성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과거에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듯 무심한 표정입니다. 그게 세월인가 봅니다. 손돌목돈대의 안내판에는 신미양요 때 무참히 죽은 조선군의 사진이 있습니다. 두명의 피해만을 보고 상대군을 모두 학살한 그들의 전공을 기념한 사진 일지 모르겠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끔직한 일입니다. 전쟁과 같은 격변이 일어 날때 인간의 감정은 무시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작은 근심들이 큰 재난 앞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돈대의 바다로 향한 포구는 어둡고 좁은 통로 안에서 바다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범위를 한정 했을 때 상대해야 하는 대상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바다를 통해 들어오는 외적을 감시하듯, 마음의 열린 곳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다가오는 문제들을 좀더 쉽게 해결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손돌목돈대를 떠나 다시 광성보주차장을 향해 걸어나갑니다. 소나무숲길에서 누군가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그에게 이 숲은 어떤 의미일까요? 강화나들길을 걷는 몇사람이 강화해협의 돈대들을 이야기 하며 지나갑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누군가를 지키고 있는것 같습니다. 숲길의 가장자리에 잠시 앉아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각자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조금씩 베어납니다. 강화 온 김에 무언가 맛있는걸 먹고 가야겠습니다. 인삼, 손두부, 커피 뭐가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