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차
해마다 한 번씩은 마시는 차가 있습니다
대만의 고지대에서 자라는 야생차를 따
정성으로 덕은 차입니다
다른 차들처럼 길쭉하거나 철사처럼
곱아 있지 않고 작은 공처럼
동그랗게 말려 있는 차입니다
서울에 살며 대만은 이야기만 들어 본
우리 집에 이 차가 있는 건
한때 대만에 체류했던 처형 덕입니다
나이 어린 제부를 챙겨주던 추억이
깃든 차입니다
수증기가 치오르는 주전자의 불을 끄고
세 숨쯤 참은 후 물을 부으면
다갈색의 찻물이 우러나옵니다
그 떫지 않고 마신 후에 단맛이 침으로 고이는
차가 10년 넘게 있는 건
일 년을 가는 잔향 때문입니다
일상에 묻혀 지내다가도
오월이면 그 햇빛 밝던 날이
떠오릅니다
이별 없는 만남이 어디 있겠습니까만은
너무 이른 이별은 멍 같은 기억을 남깁니다
봄이 꼭지에 찰 때쯤 마시는 차 한잔은
다시 멍으로 짙어져 한편에 자리 잡습니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 철쭉이 피었다가
시들어 가고 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아껴 마시는 차를
선물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