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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늘 Dec 02. 2023

강남으로 이사 간 친구

 “우와! 이 모든 게 아파트 내 커뮤니티야?”

오래전에 사둔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가 드디어 재건축을 시작한 지 몇 년 만에 새로운 명품 아파트로 탄생하였고 그 신축 아파트에 최근 입주하였다. 내 친구의 이야기다. 입주한 아파트에 초대받고 간 날, 나는 고급스러운 자재, 효율적인 공간 배치, 모든 게 반짝이는 내부의 집기들에도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입주민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에 한 번 더 놀랐다.

“애, 너무 그러지 마, 요즘 짓는 신축 아파트는 다 이 정도로 지어.”

연신 놀라움과 부러움을 표하는 나에게 친구는 한마디 했다.

단지 내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정원과 산책길은 기본, 피트니스센터, 골프 연습실, 입주민을 위한 도서관, 루프탑 카페까지. 대리석으로 된 높은 천장을 가진 아파트 동 출입구는 흡사 고급 호텔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게 했다. 커뮤니티 내 도서관에는 아이들과 함께 책을 보는 젊은 엄마 아빠들이 생각 외로 많았고 모니터 앞에서 무언가에 집중하는 젊은이, 중년들도 적지 않았다. ‘안전하다’ ‘평화롭다’ 그런 단어가 떠올랐다.

“우와! 부럽다 부러워. 정말 부럽다, 명품 주거지, 상급 지, 맞네, 맞아, 하하.”

“뭘, 또 그렇게까지.” 친구는 내 말이 악의 없는 순수한 부러움의 표현임을 알고 있다는 의미의 미소를 지었다. 부러움에 ‘순수한’이라는 형용사가 적절한가 싶기도 했지만 나는 부럽다는 속마음을 여러 번 내보였다.      

 20층 높이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친구와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 이야기, 아직 은퇴하지 않은 친구의 직장 이야기, 명퇴를 앞둔 남편 이야기…. 언제나 그렇듯 여자들끼리의 수다는 끝도 없었다. 내가 계속 부럽다고 하니까 친구는 묻지도 않았는데 아파트 분양받기까지의 여정을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넉넉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한 결혼 생활, 신혼시절부터 남편은 자신과 달리 내 집 마련, 부동산, 재테크 등에 관심이 남달랐고 그 분야에 늘 집중하다 보니 ‘재건축 아파트 구입’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당시로서는 무리해서 대출을 받아 오래된 아파트를 구입한 거라서 부부싸움도 많이 했다고도 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투자에 성공한 셈이 된 거였다. 입주를 앞두고 신축,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인기가 치솟으면서 남편은 투자에 대한 자신의 안목과 추진력을 요즘엔 더 대놓고 자랑한다고 했다.      

구축 아파트들 속에서 새로운 재건축 단지 아파트의 가치는 엄청나게 올랐고 몇 년간 부동산 가격의 부침이 있었어도 서울의, 그것도 강남의 아파트는 여전히 부동산 시장의 정상 자리를 고수하고 있으니 친구 남편이 그럴 만도 했다.


카페의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 내려다본 ‘뷰’도 정말 일품이었다. 비싼 리조트에 와있는 기분이었다.

“와! 뷰, 끝내준다. 정말 또 부럽네. 하하.”

“여기 원래 강남의 끝자락이라 시선을 받지 못하던 동네였는데 이곳 단지가 개발되면서 가장 핫한 곳이 되었지. 저기 저 지하차도 아래로 난 도로 보이지? 저 도로가 분당까지 연결되어 있는데 저 도로를 이용하면 분당 서울대 병원까지 겨우 20분이야. 지하철은 물론, 도로가 사통팔달로 나 있어서 편리하지. 아파트값이 비쌀 수밖에 없어.”

“음 그렇구나.”

“여기, 돈과 힘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가 봐. 그들이 요구하고 추진하면 도로도 쉽게 뚫리고 온갖 편의시설도 들어오고... 내가 전에 살던 동네에는 교통이 불편해서 사람들이 여러 번 민원 넣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요구했는데도 영 감감무소식이더만. 그 지역 출신 국회의원도 선거철 표를 구걸할 때만 단골 메뉴 얹듯 뭐 해준다, 뭐 해준다 하며 사람들 마음만 흔들어놓고 당선되고 나면 관심 밖이고. 근데, 이곳은 정말 빠르고 쉬워. 모든 게.”

“얘, 너는 이 단지 주민이면서 뭘 그렇게 말하냐? 누가 들으면 은근 무슨 코스프레한다고 하겠다.”

순간, 말을 하고 나니 살짝 후회가 되었다. 아무리 친하다 해도 ‘코스프레’라니, 좀 지나친 표현이다 싶었다. 그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부러운 나머지 무엇으로라도 건드리고 싶었나 하는 생각에 나는 혼자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내가 사는 동네인데 도로도, 편의시설도 다 있으면 좋지. 근데 자꾸 옛날 내가 살던 곳이 생각나. 우리 부모님이 사시는 곳도 생각나고. 그래서 뭔가 마음이 편치 않아. 난 여기서 몇 년 살고 좀 외곽으로, 조용한 데 이사 갈지도 몰라.”

“음, 일단 이런저런 아파트 관련된 세금도 만만찮고 커뮤니티 시설마다 들어가고 나가는데 입주민 카드를 들이밀어야 하고 뭐 이런 게 내 적성에 안 맞아. 무슨 그들만의 왕국도 아니고 뭐, 불온한 개미 새끼 한 마리라도 들어오는 거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카드를 들이밀 때마다 여기저기서 시위하는 것 같아.”

“너 왜 그렇게 예민하냐? 요즘 세상이 오죽 불안전해? 입주민의 안전을 위한 세심한 시스템이지, 좋은 아파트라서 그런 거야, 그리고 요즘 짓는 신축 아파트 다 그래, 입주민을 위한 그런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비싼 돈을 주고 들어오지 않겠어?”

라고 말하고 나니 내가 참, 누가 누구를 위해 변명하고 역성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싶었다. 뭐, 그래도 난, 내 친구가 그렇게 까칠한 게 싫지 않았다.

‘역시 내 친구야...’ 하면서 흐뭇한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나는 지은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1기 신도시에 집 한 채를 마련하여 살고 있다. 물론 집 한 채도 없는 사람이 들으면 한 소리 하겠지만 말이다. 아이들은 커가고 전세를 전전할 수 없다는 비장한 목표 하나로 아파트 가격이 올라가는 시기에 대출을 끌어모아 집 한 채를 산, 부동산에 대한 통찰력이라곤 일도 없던, 많은 보통 사람 중의 하나였던 나다. 재건축 아파트 투자라는 부동산 테크에 성공하여 강남에 입성한 친구를 보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나는 이제껏 뭘 했나 싶은, 내가 좀 한심하다’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종잣돈 2천만 원으로 시작해서 100억대의 부자가 됐다는 한 유투버의 방송을 보았다. 그가 말하는 ‘경제적 자유’가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이 안 되었지만 신기하긴 했다. 그는 주말마다 전국의 땅을 보러 다닌다고 했다.

언론이나 사람들이 흘리는 정보에 의지하지 말고 직접 발로 뛰는 자세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도권 전체의, 그 많고 많은 수많은 아파트의 가치에 대한 분석을 일일이, 명쾌하게 하는 것도 놀라웠다. 우리 동네 아파트의 입지 가치도 분석해 놓은 영상이 있어서 보면서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댓글 창도 장난이 아니었다.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아파트의 입지 가치를 분석해 달라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은 부탁 글을 올렸다. 저 정도 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쏟은 걸까? 재테크는 고사하고 오래된 구축 아파트 하나 끼고 살아가는 내가 한심해 보여서 얼떨결에 부동산 공부를 하라는 유투버의 조언에 따라 관련 카페에도 가입하여 들어가 보았다.

회원들은 ‘우리 공부 열심히 해서 경제적 자유를 획득합시다’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서로 주고받곤 했다. 부정할 생각 없다. 경제적 자유,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 부분에 딱히 재능이나 흥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끊임없이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고 정보를 공유하고... 그러려면 나의 에너지의 많은 부분을 투자해야 함이 확실한데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까 요러고 살지,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비웃으면서도 나는 나의 두 눈이 다른 곳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음을 매 순간 느꼈다.   

   

 지난여름에 우리 아파트 근처 작은 공원 산책길에 맨발 걷기 공간이 생겼다. 더운 여름날 저녁에 더위도 식힐 겸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걸었다. 대부분 반바지에 맨 발이었다. 사람들은 혼자, 또는 친구나 가족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해서 걷기 시작했다. 나는 주로 그 시간에 걸으면서 친구나 가족들과 비교적 길고 편안한 통화를 했다. 예상외로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다. 추워지기 얼마 전에 한 아저씨가 빗자루를 들고 맨발 걷기 트랙을 쓸고 있었다. 작은 모래들이 많아서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 발바닥이 아플 거 같다고 말했다. 걷고 있던 사람들이 고맙다고, 애쓰신다고 한 마디씩 하며 지나갔다.

언제는 또 한 아저씨가 또 당뇨, 혈압에 관련하여 의학 유튜브에서 본 내용을 가지고 썰을 한참 푸는 데 은근히 귀여웠다. 들어주는 사람들이 몇 있어서였는지 아저씨가 신이 나서 쉬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가자 한 사람이  

“사장님, 2부는 내일 이 시간에 듣기로 하지요. 하하.”했다. 거절하는 방법도 참 순했다.

지난달 다녀온 스페인 여행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는 아저씨가 은근 유머 감각이 있는지 주변에서 듣고 있던 아줌마들이 연신 깔깔거리고 웃었다. 우리 동네, 안전하고 평화롭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날씨가 추워져서 맨발 걷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아담한 공간은 아파트로 둘러싸인 마을에 숲 속 샘물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친구의 신축 고급 아파트를 보고 온 후 들끓던 나의 유치한 부러움은 어느새 슬그머니 사라지고 나는 내가 사는 오래된 이 동네랑 다시 친해졌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나도 나쁘지 않았다. 부동산 공부한다는 인터넷 카페에서 나왔다.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에 잘 집중이 안 되었다. 이래서 내가 돈을 못 버나보다 하는 생각만 커져 갔다. 돈도 없고 무엇인가로 돈을 벌어볼 생각도 못 하는, 역량도 안 되는 나는 그냥 내 스타일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니 의외로 편안했다.

     

아이들 어린 시절부터 드나들던 마을 도서관도 운동 삼아 20 여분 걸어가면 나오는 동네. 가는 길목에 최근에 새로 생긴 수제 버거집도 다음 주에 가볼 생각으로 유심히 봐두었다. 새로 생긴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도 커피값이 저렴해서 좋다. 도서관 오고 가는 길에 커피 한잔 사 들고 마시기에 부담이 없다. 장사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절에 맞추어 부지런히 바꿔가며 옷들을 걸어놓는 작은 옷가게를 기웃거리는 일도 재미있다. 해물 파스타랑 골뱅이 소면이 끝내주게 맛있는 생맥주 집도 정말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건재하다. 난 이 오래된 우리 동네가 좋다.

 ‘감히 강남하고 비교를 하다니, 솔직히 돈만 있으면 강남으로 가지’ 하며 누군가가 나에게, 신포도 타령한다고, 요즘 말로 ‘정신승리’ 놀이한다고 놀려도 괜찮다. 그냥 내가 마음 편한 대로 살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말이다.      


최소한 내가 절대 빈곤과 절대 통증으로 고통받고 있지는 않잖은가? 그거면 감사할 일 아닌가? 그 이상의 많은 것들은 나의 행복감을 앗아가는 욕심의 허들이지 않을까? 그 허들의 개수는 주변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브런치에서 내가 구독하고 있는 한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삶을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는 ‘과도한 경쟁’ 때문이라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어디서고 경쟁이다. 집, 학교, 직장, 어린 시절부터 무시무시한 경쟁의 도가니 속에서 우리 모두는 힘겹게 아등바등거린다.

경쟁을 떠올리니니 '비교'가 생각난다. 경쟁은 비교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비교는 일정 부분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순기능도 하지만 지금 우리의 일상은 온통 '비교' 투성이로 숨이 막히는 것 같다.

남보다 더 잘, 남보다 더 많이, 남보다 더 높이…. 그런 지향을 성장, 성공, 발전이라고 믿는 강박에 우린 사로잡혀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비교가 아니라면 무엇으로 헤쳐나갈 수 있을까?


낡았지만 몸 누일 공간이 있고 아침에 무탈하게 일어나서 해를 볼 수 있고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고 음식을 내 손으로 요리하고 맛을 즐길 수도 있고, 난 가진 게 많다. 아, 또 있다. 얼마 전에 브런치라는 공간을 알게 되었고 이렇게 이곳에서 내 생각을 글로 끄적여 보기도 한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의 멋지고 아름다운 글들을 매일 읽을 수도 있는 게 너무 행복하다. 매력적인 글을 만나면 감탄과 부러움을 느끼며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보곤 한다. 매일 밤, 혹은 새벽마다 외로움, 쓸쓸함, 답답함, 행복함, 꿈, 소망, 사랑 같은 것들, 자기 안에 있는 그 많은 것들을 꺼내 보이면서 서로 위로와 격려를 주고받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감동이다.  


겨울에 눈이 쌓이면 우리 집 창가에서 내려다보이는 가로수의 눈꽃이 근사하다. 사진을 찍어 가장 예쁜 것을 골라서 강남으로 이사 간 친구에게 보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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