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 : 나
인생을 비유하자면 한 편의 영화 같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해피엔딩을 많이 바라듯 삶도 결국 따뜻한 결말로 끝나는 마음은 늘 한편에 있다. 그 장르가 누아르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잔인한 삶은 살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그 영화의 주인공은 늘 나이기에 '나'라는 유일무이한 장르로 작품을 완성하고 싶다.
생각해 보면 우주는 아득할 만큼 오래되었고 지구도 역시 상상하기 어려운 시간을 버텨왔다. 우주는 한 번의 빅뱅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혹은 여러 번 반복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구도 마찬가지로 5번의 대멸종을 거쳤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 거대한 시간 속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장면은 단 한 번뿐이다. 그리고 그 위에 잠시 머무는 인간의 시간은 많이 짧다. 수십억 년의 시간 앞에서 한 사람의 인생은 겨우 몇 장면에 불과하다. 길다고 믿었던 하루와 일 년이 사실 찰나의 순간이었고 카메라 셔터 같다. 잘못은 저지를 수 있어도 무시당하는 장면이 찍히면 많이 슬플 것이다. 그리고 회피하고 싶었던 고단함은 지나고 나서야 돌이키며 후회한다. 한마디라도 했었다면 자꾸 생각나지 않을 것인데 말이다.
우리는 전생을 믿고 있듯 누구나 전생을 궁금해한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전생도 좋은 삶이었길 바라고 현생이 몇 번째 환생일지 누구도 알 수 없다. 환생이라는 개념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은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수많은 문화와 이야기 속에서 반복되어 왔다. 그리고 우리는 늘 이런 말을 달고 산다. 이번 생은 망했으니 다음 생에는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아직 끝까지 보지도 못했으면서, 주어진 생명을 다 하지 않았는데도 인간은 늘 일이 꼬일 때마다 생이 망했다고 한다.
많은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늘 불쌍하게 나온다. 누군가에게 질타를 당하고 누군가에게 무시도 당하면서 힘들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걸 지켜보는 관객도 주인공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본다. 하지만 작품에 대해서 한없이 긍정적인 우리는 왜 자신의 작품을 비관적으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인가? 나라는 사람이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어서 더 특별하다고 한다. 그렇게 특별하게 태어난 존재를 왜 가장 잘 아는 내가 나를 괴롭히는 것일까. 살면서 애통의 눈물을 많이 흘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화려하지 않아도 되고 그렇다고 막살지는 말자. 속도는 느릴 수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결국 나이고 이 이야기의 흐름을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도 나다. 누구의 기준에 맞춰서 살다가 나라는 작품은 특별함을 잃어가게 된다. 나라는 장르로 완성되는 영화면 그 자체로도 만족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훌륭한 작품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