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

받아들이는 힘

by 김청유

사실 처음부터 글쓰기에 흥미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책이라면 질색팔색을 하던 내가 어쩌다가 글을 쓰게 되고 책을 좋아하는 지경까지 왔는지 가끔 놀랍다. 대학생 때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하면서 무념무상한 삶을 살다 보니 무기력과 우울이 찾아왔다. 되는 일이 하나 없는 것 같고 무엇을 해도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면 미래의 불안감을 안고 잠에 드는 일이 많아졌다. 이대로 살면 나는 나의 재능을 썩힐, 나를 가장 한심한 인간으로 만들 죄인이 될 거 같아서 밖에 무작정 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내 나이 21살이었다. 처음으로 커피도 배워보고 음료 만들어봤다. 생각보다 너무 재밌어서 적성을 찾은 거 같아서 기뻤다. 하지만 매일 똑같은 일만 하고 발전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바쁘게 사는데 성취가 없는 느낌이었다. 그 무렵 우연히 친구들의 근황을 보게 되었다. 각자 자리에서 커리어를 쌓아가며 화면 너머의 그들은 유난히 단단해 보였다. 반면 나는 손에 포타필터나 들고 에스프레소만 뽑았다. 이런 모습이 한심해 보여 결국 나는 취업 플랫폼에 가입했고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준비를 하기 시작헀다.


처음 해보는 취업 준비는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데만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한 번이 끝이 아닌 수없이 많은 첨삭과 수정을 통해 결국 내가 원하는 곳마다 서류는 통과되었다. 지원한 분야는 뉴스 ad와 같은 파견회사를 통해서 지원할 수 분야였다. 준비를 하면서 자기소개서를 너무 잘 써서 모범으로 남기고 싶다는 말까지 들었다. 어릴 때 이후 처음으로 글에 대한 칭찬을 받았다. 면접준비도 열심히 했다. 남들이 하지 않은 포트폴리오도 준비해 가면서 나의 가능성을 어필하였으나 반응이 좋았던 때는 딱 그때뿐이었다. 붙을 줄 알았던 회사는 결국 불합격이라는 쓴맛만 남겨놓았다. 번번이 불합격 소식이 들러오자 나는 마지막 면접이 끝날 때까지 남아서 결국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저는 제가 경험도 많이 없고 나이도 가장 어렸지만 뒤처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준비했고요, 저를 한두 번 보신 것도 아닌데 왜 저는 합격할 수 없나요?"


"기자가 꿈이신 거 같은데요, 솔직히 기사 좋았어요, 어린 나이에 도전하는 모습도 좋았고요. 근데 왜 뉴스 ad를 지원했나요? 저는 차라리 기자 준비를 더 열심히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나중에 회사에서 기자로 뵙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나는 내가 능력이 없고 경험이 없어서 떨어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모집 공고에 적힌 '기자와 함께 뉴스를 만든다'는 말에 혹해서 지원했을 뿐이다. 꿈을 위해서였다는 말도 틀리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실전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컸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기자로 방향을 틀어 자기소개서를 준비했고 하나쯤은 걸리겠지 하는 마음으로 인턴기자를 지원했었다. 물론 처음부터 쉬웠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포기하려는 잡생각이 들 때마다 자꾸 그 한마디가 생각나서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한 달을 낮에는 이력서, 오후에는 알바, 밤에는 자기소개서 등을 번갈아가며 죽은 듯이 준비했고 결국 한 언론사에서 연락이 와서 인턴 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인턴생활을 마치고 나는 다시 복학하여 학교를 다녔다. 필수교양으로 들어야 했던 글쓰기 수업 때 교수님께서 과제로 나를 움직이는 한마디라는 주제로 글을 써오라는 과제를 내주셨다. 그때 기억이 떠올라 나는 과제라는 이유로 하소연을 하듯 적어내려 갔다. 잘 써야겠다는 마음보다는 주어진 분량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런데 수업이 끝난 후 교수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말씀하셨다.


"다음 글도 너무 궁금해, 나는 너의 글이 좋아서 빨리 보고 싶어."


감사한 마음에 허리를 숙여 인사드리고 나왔다. 어안이 벙벙해졌다. 칭찬인지 조언인지 헷갈리면서 이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나 싶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글을 잘 썼다가 아닌 궁금하다고 말을 감히 나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이 들어도 되나 싶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글을 조금 다르게 대하기 시작했다. 글이라는 것을 기자 때 조금 써보거나 취미로 생각한 적도 없었던 것인데 그렇다고 책을 직접 찾아서 읽는 편도 아니었다. 작은 변화가 생겼다면 떠오르는 구절이 있으면 메모장에 적는 것이 끝이다. 이제는 과제가 아닌 나 자신을 정리하기 위한 문장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글을 쓰면서 독서라는 건전한 취미도 생겼다.


돌이켜보면 나를 바꾼 말들은 모두 거창하지 않았다. 인생을 단번에 바꿔주겠다는 선언은 아니었지만 누군가가 나를 조금 더 앞서 바라봐 준 순간이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 기회는 늘 분명한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때로는 질문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조용한 말 한마디로 다가온다. 그리고 간절한 사람은 그 말 한마디를 기회로 삼는다. 지금도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 말들이 없었다면 나는 과연 지금처럼 글을 쓰고 있을까, 확신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그 말들 덕분에 나는 나의 무한한 가능성을 빠르게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살면서 이런 말들을 만날 기회는 많고 언제 어디서 불쑥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래는 늘 불분명하기 때문이고 전보다 더 좋아진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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