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아카이빙 강국?

구술로 다시 쓰는 기록

by 옥천의 봄날

“한국은 기록 강국”이라고 말할 때면 적잖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못내 의심스러운 눈초리다.

하지만 한국은 고려시대부터 공문서를 생산, 관리, 보존 기관이 존재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법령을 통해 관련 규정을 명문화하여 실행해왔다.


단편적이지만 유네스코는 이러한 역사적 노력을 뒷받침한다.

유네스코는 인류의 소중한 기록유산을 보존. 활용하려는 목적으로 1995년부터 2년마다 세계기록유산을 지정해오고 있다. 2017년 현재 총 432건의 세계기록유산이 지정돼 있는데, 이중 16건이 한국의 기록유산이다. 이는 독일 23건, 영국 21건, 폴란드 17건에 이어 세계 4번째로 많다. 10개 이상 기록을 등재한 나라 역시 14개국에 불과하니, 새삼 한국의 위상을 확인하게 된다.

보다 흥미로운 건 기록들의 면면이다. 시기적으로 16건 중 12건이 고려-조선시기에 생산됐다. 1900년대 이후 기록은 국채보상운동 기록물(1907년 ~), 새마을운동 기록물(1970년 ~),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1983년 ~), 1980년 인권기록유산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록물(1980년 ~)등 4건이다. 내용적으로도 고려-조선시기의 기록은 왕을 비롯한 지배계층의 국정운영과 종교, 전투, 의학 등이 주를 이룬다. 단적인 사례지만,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고 보존, 활용해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록이 힘 있는 이들의 전유물이었다는 점에서 힘없는 자들의 기록을 발굴하고, 생산하기 위한 시도는 밑으로부터 역사를 다시 쓰는 작업이자, 사회를 피지배계층의 관점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시도였다. 민중의 지식과 지혜를 지식화하고, 언어화하며, 이들의 정체성에 자긍심을 북돋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문자가 힘 있는 이들의 전유물이고, 남겨지고 보존된 기록이 없다는 점에서, 민중에 대한 기록은 구술을 통해 생산, 수집, 보존되어 활용되었다.

1940~50년대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서부터 시작된 구술 기록은 1980년대 이후 한국에 상륙했다. 구술 기록의 포문을 연 것은 출판사 <뿌리 깊은 나무>였다. <뿌리 깊은 나무>는 1980년대 동안 민중들에 대한 구술 인터뷰를 정리해 20권의 민중 자서전을 발간했다. 1981년 발간한 민중자서전 시리즈 1권「두렁바위에 흐르는 눈물」은 한국에서 구술 자료를 이용한 첫 출판물로 알려져 있다.


구술은 1980년대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맞물려 사회적, 정치적 운동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권력에 의해 강요된 침묵에 저항하는 밑으로부터의 역사 쓰기, 기억 투쟁, 진실규명운동이었다. 시대의 정의를 구현하고자 했던 이들과 전쟁, 학살, 폭력, 노동, 차별의 피해자들이 만나 억압된 기억을 해방시키고 한국사의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고 규명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는 4.3 사건, 5·18민주항쟁, 일본군 위안부 등에 대한 기록과 아카이빙, 진상규명 운동이라는 시대적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진상규명작업을 통해 드러난 피해자들의 목소리와 저항이 공식 역사에 편입되기도 했다.

“기록/ 기억으로 싸우게 하라.”

1980년대 이후 한국의 구술 기록의 도전과 응전을 이보다 잘 표현한 문장은 없을 것이다.


이후 구술은 학문적으로는 인류학, 여성학, 사회학 등에서 매우 유용한 연구방법론으로 점차 자리를 잡게 되었다. 또한 구술의 사료적 가치에 대한 유의미성이 널리 인식되면서 구술 채록과 관련 기록이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는 구술 기록이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통념화된 사실을 전복”하고, 역사의 장막 뒤에 머물러 있던 사건과 사람들을 불러내 새롭게 호명해주고 의미를 부여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문헌자료의 공백과 이면을 채우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내고 있기도 하다. 이에 따라 국가, 연구기관, 대학, 공공 기록관 등을 중심으로 매우 광범위한 구술 자료의 생산과 수집, 아카이빙이 강조되었고,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학계 내의 열기만큼이나 학계 밖의 열기도 뜨겁다. 2000년 이후 구술 기록은 학계 밖에서 새로운 지형과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마을공동체는 물론이고 인권운동, 노동운동, 그리고 다양한 개인들과 집단들이 구술 기록에 기대어 삶과 사건, 공간 등에 대한 기록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편의상 시민 기록으로 명명할 수 있다. 국가 등의 주도로 공적 업무의 설명 책임성을 보장하기 위해 추진되는 공공기록, 학계의 필요로 학문연구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학문 기록과는 대비되는 개념으로, 아래로부터, 자발적이며, 공동체의 이해를 증진하기 위한 기록으로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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