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에서 Bon사로
살아온 삶을 표로 만들어보았다. 용광로처럼 들끓던 성호르몬의 작용 유무 시기, 일과 사람 그리고 자와 타(관계)로 항목을 나누어 기록해 나갔다.
사람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했다. 이름을 적어보니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온 사람들이 먼저 떠올랐고 희미해져 기억이 날까 말까 한 사람들까지 다 끌어 모으니 상당했다.
어릴 때 스쳐 지나간 선생님, 친구, 친척, 이웃들까지 이름은 생각나지 않아 점으로 표시해 보았다.
점 하나 점 둘,
별처럼 기억 속에서 튀어나와 깜빡이고 있었다.
가장 복잡하게 가지를 치며 뻗어나간 것은 바로 관계였다. 내 마음과는 다르게 흘러간 일들을 적으려는 순간, 한꺼번에 우르르 쏟아져 어지럽게 엉키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 인간의 인생이 달랑 한 페이지 남짓한 공간에 펼쳐지나 싶었는데 관계로 들어가 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구태여 왜 끄집어내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라는 밥상 위에 놓인 관계가 빚어놓은 맵고 짠 반찬들을 이젠 엎어버려도 괜찮을 시간이 왔다.
어쩌면 사람이 전부인 이 삶을 어떻게 하면 잘 살다 잘 갈 지에 집중할 나이는 따로 없다. 빠르면 빠를수록 현재가 편할 테니까.
서로 생각이 달라 이해하기 어려워 평행선을 그리게 되는 것도 삶이고 사람이다. 받아들이기 힘겨워 마음이 조여 오고 머리에 빨간 불이 들어와 킹 받을 때도 많았다.
이런 마음이 들곤 할 때 내가 자주 했던 일이 있다.
가장 선한 마음을 오롯이 내어 나를 정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봉사활동! 모든 걸 수용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름다운 가게’라는 비영리 단체에서 4년 넘게 봉사했을 때의 일이다. 바쁜 일을 접고 일부러 시간을 내고 먹을거리를 챙겨가 나누어 먹기도 했다. 봉사활동이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일상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었다. 무임금 판매자인 동시에 구매자가 되어 활동이 끝나면 필요한 물건을 저렴하게 사 올 수도 있었으니까.
봉사의 한국어 뜻으로는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씀’이라고 되어있다. 이제 바뀌어야 한다. 자신도 같이 살피면서 함께 행복해야 진정한 봉사인 거다.
그런 의미에서 ‘Bon사’를 해보는 건 어떨까? 프랑스어로 ‘Bon’은 ‘좋은’ ‘적절한’ ‘행복한’ ‘굳세게’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나와 남을 위해 좋고 적절하며 행복한 일을 굳세게 하는 일을 가정이든 일터든 상관없이 해 보는 것 말이다.
이런 생각을 왜 했냐고? ‘행복의 나라’로 가고 싶어서다. 이래서 서운하고 저래서 끓어오른 감정의 잔열로 힘들어하지 않겠다는 노력의 일환이다.
봉사는 밖에 있는 남을 위한 것만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가족에게도 봉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희생했을 때, 좋은 결말이 나오지 않을까? 다분히 자기 방어적 발상이지만 절실하다.
가족 구성원을 건강한 타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가정도 하나의 사회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봉사한 시간만큼 돌려받는 다양한 혜택들도 많다. 가족을 향한 봉사가 행복한 미래의 보험이라 생각해도 좋은 날들이 오늘도 유유히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