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마음을 피울까 행복한 마음을 피울까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들은 때에 따라 자신감이 넘쳤다가도 한순간 우울해지는 롤러코스터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하필 우울한 시기에는 심연까지 파고 들어가 눈물을 쏟아낸다던가 자책을 한다던가. 원인과 결과에 집착해서 내 어린시절까지 뒤적이며 나란 사람을 이해하려한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해?'하며 매번 고민이 끝없이 이어지는 내게 그럴 필요 없다며 내 어깨의 짐을 덜컥 내려주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학창시절 유독 또래에 비해 생각이 깊고 공상을 하며 누군가에겐 헛소리, 나에게는 철학인 생각들을 하던 시절 내 별명은 '진지충'이었다. 내가 입만 열면 너무 진지해진다나..
그보다 어린 시절에는 친구들 사이에서 유머가 있던 편이라 '진지충'이란 별명은 꽤나 아프게 다가왔다.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철이 금방 들었고 친구들보다 성숙했으며 남들은 잘 하지 않는 생각들을 한다는 걸.
어느 시점에는 나의 철학적 고충들이 또래와 어울리기에는 별로 세련되지 않고 트렌디 하지 않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하필 트렌디함이 생명인 전공을 선택한 탓에 '진지충' 타이틀을 벗겨내고자 의식적으로 그런 생각들을 줄이기도 했었다. 생각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을 중단하는 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고민으로 부터 회피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진지한 사고가 줄어든 내 모습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순간 내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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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중반까지는 미래에 대한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어떤 꿈을 꿔야할지 어떤 일을 해야만 내 자아를 완성 시킬 수 있을지 고민을 하며, 아직 스스로의 기준에 한참 못미친 자신이 못나보였다.
채찍을 들어 스스로에게 마구 휘두르곤 했다. '최선을 다했나?' '너가 진짜 하고 싶은건 뭐야?' '더 잘할 수 없을까'와 같은 말들로 나 자신의 노력들에 대해 되돌아보고 능력을 의심했었다.
20대 중-후반에는 관계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뤘다. 내 주변인들에게 사랑을 배우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며 차츰 인간관계라는 거대한 조직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즐거웠고, 결이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편안했다. 그러다 인생을 함께할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게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 평안은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이에게 화를 내고 신경질 내는 내 자신이 도저히 봐줄 수가 없어서 나날이 내 고민은 커져만 갔다. 예민함으로 둘러대기엔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듯 해서 끊임없이 성찰하며 내 자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서른이 된 지금 내 고민은 한층 더 세분화되었고 주로 현실적인 고민을 많이 한다.
뒤늦은 직장생활로 남들보다 뒤쳐진 재테크에 대한 문제랄지. 집값이 계속올라 주거비의 부담을 느껴 서러운 1인 가구의 비애랄지. 그보다는 오직 안정적인 직장때문에 고른 원치않는 일을 하는 내자신이 그렇게 한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대에 커리어우먼을 꿈꾸며 주도적으로 삶을 꾸려나가던 모습의 생기를 잃고, 끊임없이 불안으로 내 자신을 키운 내가 또 안쓰러워 한참을 우울해했다.
윤정은 작가의 <메리골드 마음 식물원>이라는 책을 빌려 읽고, 한참 생각해봤다.
분명 밝은 책이었는데 내 손에 쥐어지니 한없이 어두워졌다.
누구나에게 시련과 비극은 존재하고 그 아픈 마음까지도 식물로 피워내 결국은 해피엔딩인 이야기들로 구성되어있는 책이다. 소설을 읽으며 그리 울어본적도 없었다. 각자의 사연으로 마음이 시들어진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너무 공감되기도. 내 모습같기도 하면서 (사실은 한번도 겪어본적 없는 일이지만) 엉엉 울어냈다.
그리고 책장을 덮고 생각했다. '내 마음의 꽃은 가시뿐이겠구나'
하필 그 책을 읽던 시기가 내 감정 롤러코스터의 하강시기였기에 나는 내가 피워낸 가시로 스스로를 마구 찔러댔다. 사랑할 자격도 사랑받을 자격도 없는 아이. 상처와 불안을 먹고 자란 아이. 모두를 밀어내고 동굴에 들어가 쥐죽은듯이 잠만 잤다. 눈을 뜨면 눈물이 흐르고 지쳐 잠들기를 반복하고 습관처럼 재밌는 동영상을 틀어 보아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동굴에서 헤어나와 햇빛을 쬐고 바람을 맞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내가 모두에게 벗어나고 싶었던게 아니라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은 여린 마음이 존재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상처와 불안으로 똘똘뭉친 나를 그래도 사랑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기에..
머지않아 다시금 바닥으로 가라앉는 시기가 찾아올 것이다. 내 마음은 자주 가시를 피워냈다가 그 가시가 단단해지면 그 끝에는 눈부시게 빨간 장미를 피워낼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시일지라도 꾸준히 물을 주고 햇빛을 쬐어주길 바란다. 당신의 마음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