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못하던 아이가 AI 감독이 되기까지
나는 항상 머릿속에서만 영화를 만들었다.
어릴 땐 미술을 잘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숨겼다. 어설프게 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냥 혼자 상상만 하다가 말았다. 자신 없었으니까.
그런 내가 지금은 영상을 만든다. AI라는 스태프와 함께.
시작은 커뮤니티의 한 마디였다. '이젠 이미지를 힘들게 만들 필요가 없다고.' 처음엔 흘려 들었다. 에이, 그런 게 있을 리가. 근데 웬걸? 미드저니를 열어본 순간, 충격이었다.
프롬프트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던 시절, 미드저니를 처음 접했고 마치 어릴 때 첫사랑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래서 프롬프트에 미쳐 있었다.
AI 영상 제작의 핵심은 이미지다. 이미지가 90퍼센트 이상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이미지에 바람이 불고 있으면 AI는 바람을 읽는다. 비가 내리면 비를 읽는다. 자동차 앞부분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다면 당연히 정방향으로 가는 것으로 묘사한다. 내가 따로 프롬프트를 주지 않아도. 이미지 안에 미장센을 심으면, AI가 그것을 읽는다. 이미지가 이미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미지 단계에서 공을 들인다. 뺄 건 빼고, 넣을 건 넣고. 이미지만 잘 뽑아두면 영상은 짧은 프롬프트로도 잘 뽑힌다.
물론 항상 뜻대로 되진 않는다.
한국어로 대사를 시켰는데 밑도 끝도 없이 중국어로 말한다. 조선시대 사극을 연출했는데 갑옷이 중국 갑옷이다. 액션 장면은 더 웃긴다. 강력한 타격을 원했는데, 대부분 그냥 몸을 쓰다듬는 수준이었다.
짜증 나지만 재미있다. 실제 영화도 원테이크에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들었다. 2번, 3번 계속 뽑아낸다. 그것도 연출이다.
이제 나의 제작 과정은 하나의 파이프라인이 됐다. 주제를 정하고 결과부터 만들어둔다. 그 하이라이트를 핵심으로 두고 세계관을 확장하듯이 내용을 붙여 나간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가다 잘못된 길로 접어들어도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스크립트대로 이미지를 쭉 만들어내고, 펼쳐놓고, 머릿속으로 계속 그려본다. 그리고 영상을 만든다. 컷편집 단계에서는 최대한 덜어낸다. 이 과정이 고되지만, 이상하게 행복하다.
예전에는 스토리와 맞지 않는데 영상이 잘 나오면 버리기 아까워서 억지로 끼워 넣었다. 그러면 전체 퀄리티가 떨어진다. 편집은 덜어내면 덜어낼수록 올라간다.
처음에는 그냥 영상미만 좋으면 될 줄 알았다.
예전에 정말 잘 만들어서 만족했던 작품이 있다. 주변에서도 '야.. 네가 아니면 누가 받겠냐'라는 칭찬을 들었다. 하지만 떨어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메시지가 약하다. 그냥 영상만 이뻤던 것이다.
말 그대로 이쁜 쓰레기.
수상한 작품을 보고 깨달았다. 메시지가 잘 담겨 있고 서사가 잘 뽑힌다면, 영상의 오류쯤은 그냥 넘어가도 된다. 표가 나지 않는다.
이쁜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나는 공부를 시작했다. 작법서를 읽고, 시나리오 구조를 배우고, 철학 서적을 넘긴다. AI에게 더 좋은 명령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 안에 더 좋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내가 깊어질수록, AI도 함께 깊어진다.
미술을 못해서 상상을 숨겼던 아이는, 이제 숨기지 않는다.
부끄럽다. 다 커서야 꿈을 꾸기 시작했으니까.
아니, 부끄럽지 않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시작이니까.
상상은, 끝내 현실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