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간에 대하여

About time

by 닭죽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어바웃 타임>인데 그것과 상관없이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저는 시간이 아깝다는 느낌을 늘 달고 살았습니다.


어릴 때는 자는 시간이 아까워서 늦게까지 깨있으려고 했고


4살 때부터 시작한 컴퓨터 게임으로 많은 시간을 게임에 빠져 지내면서도


'이렇게 시간을 낭비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 한편에 있었습니다.



시간을 의미 있는 일에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의미 있는 일이란 -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하는 일이나, 세상이나 가족에 도움이 되는 일이겠죠.

(책 읽거나, 운동하거나, 공부하거나, 친구 사귀거나 도와주거나 흔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행위들)


글쓰기는 제 자신에게 이로운 일입니다. 저 자신을 계발하고 표현하고 원하는 형태로 가꾸어 가는 일이라고 봅니다.


아무튼,



저는 돈으로 부리는 사치는 크게 사치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부자들이 돈을 어떻게 쓰며, 호화로운 요트를 몰던, 전용비행기를 타던, 외제차를 수집하던지 하는 것보다


오히려 진짜 사치스러운 건, 시간으로 부리는 사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돈이야 사람마다 가진 규모가 워낙 다를 수 있다 보니 씀씀이에 차이가 나는 것이 이해가 가는데


시간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생물학적 시계, 평균수명 기대치와 1일 24시간으로 제한됨.)


실컷 늦잠 자고, 목적 없이 깨어나 어슬렁 거리고 낭비하며 의미없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인생에 얼마나 있겠는가, 얼마나 사치스러운 시간인가'를 생각하곤 합니다.



"아빠,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게 뭘까?"


올해 초 딸아이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시간?"


하고 답했더니,


"사랑 아니야?"


하고 되묻더군요.



제 생각에 사랑은 소중한 것을 내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란 정해진 시간을 가지고 있으며, 시간이라는 연료를 태워가며 존재합니다.

(그런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니 시간을 나누어 준다는 것은 생명의 일부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시간을 함께한다는 것은, 서로의 소중한 시간, 즉 생명을 함께 나누는 것인데


서로 사랑함이 아닐까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어쩔 땐 무의미하고 시간낭비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아이 역시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나와 함께 태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얘는 의식도 하지 않고 나에게 시간을 모조리 주고 있구나.'


싶어서 사랑받는 느낌을 충실히 받습니다.



태어나서 삶을 같이 한 가족들,


학교를 같이 다닌 급우들, 친구들,


직장 생활을 함께 한 동료들,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은


내 안에 스며들어 나 자신의 일부가 된 것 같습니다.


이제 따로 연락도 안 하며 지내는 이들도 많건만,


기억 속에 남아 존재하다가 뜬금없이 꿈에라도 나타나곤 합니다.



부모님이 이미 80대에 돌입하셨고,


저는 이제 그 절반정도 나이에 지나지 않지만


앞으로 정력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20년은 남았을까 시간을 헤아려 봅니다.


영원히 사실 것 같던 부모님과도 얼마간에는 결국 헤어져야 할 것이고


언젠가 이 세상에 제 자리가 존재하지 않을 날도 올 겁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숙연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서는 존경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분들은 어쨌거나 저쨌거나 한 생을 살아내셨고,


저는 아직 마무리를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타닥타닥 떨어져 내리는 느낌이 듭니다.


엊그제 아점 시간에는 카페에 와서 커피 한 잔에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다가,


오늘 점저 시간에는 수영장에서 아이 교습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키보드를 바꿔 두드려대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시간을 태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쓸까 저렇게 쓸까 단어와 문장을 어떻게 바꿀까 고민하고 생각하는 일이 충분히 즐거웠습니다.


째깍째깍 돌아가는 타이머가 여전히 눈에 아른거리지만, 괜찮습니다.


오늘은 그래도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했습니다.


먼 훗날, 혹은 먼 훗날이 아니라 예기치 않게 갑자기 제 타이머가 멈추게 되더라도 괜찮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여전히 생각 중입니다.


<어바웃 타임>에서 주인공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결국 사용하지 않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하루하루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을까.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깨어져도 소리내지 않는 돌처럼, <스토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