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노트만 있으면 충분하던 때가 있었다
초등학생 나이였던 나는 외출할 일이 생기면 꼭 책을 챙겼다. 그래서 내 가방은 항상 묵직했다. 그 묵직한 가방만 들고 있으면 어디에 가서 얼마나 시간을 보내든 상관없었다.
그 당시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오락거리였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난 핸드폰이 없었고 TV를 자유롭게 볼 수도 없었다. 우리 집 거실에는 TV 대신에 책장이 벽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덕에 나에게는 책장 있는 거실이 훨씬 익숙했다. 책은 내게 있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들과 더 넓은 세상을 상상하게 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자료 열람실에 들어서는 순간 정적으로 바뀌는 공기의 흐름, 외부의 소음이 잦아드는 그 감각이 좋았다. 특정한 책을 찾으려는 목적 없이 천천히 서가 사이를 걸으며 빼곡한 책들을 훑어보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그러다 눈길을 끄는 책이 있으면 빼어 훑어보고 다시 꽂아놓거나, 간혹 더 궁금해지면 그대로 그 책을 가지고 푹신한 소파에 앉곤 했다.
사람들이 학교나 직장에 있는 시간, 한산한 열람실 소파에 앉아 읽고 싶은 책을 쌓아놓고 마음껏 읽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되면 나는 내 카드로 빌릴 수 있는 최대 권수만큼 책을 빌려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빌려가서 완독 하지 못한 책도 많았지만, 당장 손 닿는 거리에 읽을 책이 많다는 사실은 늘 기분이 좋았다.
막상 펼쳤지만 도통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책들이 있는 반면, 넘어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 오히려 아껴 읽고 싶은 책들이 있었다. 후자는 보물 같았다. 읽고 또 읽어도 된다지만 처음 읽을 때의 새로움과 흥미는 처음에만 맛볼 수 있는 것이니까. 페이지가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것이 아까워 일부러 분량을 정해 두고 읽은 책들도 있다. 그때는 거의 소설만 읽었다. 이야기가 재밌느냐 아니냐가 내가 책을 고르고 그 책을 아끼게 되는 기준이었다.
아빠는 그런 나에게 제동을 걸었다. 소설책을 읽지 말라는 아빠의 말씀은 청천벽력 같았다. 이제부터 책을 읽으려면 아빠에게 가져와서 읽어도 되는지 허락을 받은 뒤 읽으라고 하셨다. 말을 꽤나 잘 듣는 어린이였던 나는 곧이곧대로 따랐다. 그렇게 이야기 책을 좋아했던 내가 소설을 대체하여 고른 책은 역사책이었다. 그 시기에 집에 있던 <세계 역사 이야기>를 수 차례 읽었다. 사실 그중에서도 재미있는 중세 편과 근대 편을 위주로 읽긴 했다. 왕과 여왕, 영주와 농노, 정복, 전쟁, 사랑, 배반, 혁명. 그때 읽은 내용들은 물론 잊어버렸지만, 세계사의 희미한 흐름 정도는 그리 낯선 것이 아니게 되었다.
책을 편식하던 나는 독서 클럽을 시작한 이후 그나마 책을 골고루 읽게 되었다. 그래도… 역시 소설이 좋았다.
어디서나 자리에 앉으면 책부터 펼치는 나에게 어른들은 종종 말씀하셨다.
“아이고, 또 공부하네.”
당시에는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공부하는 게 아니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뿐인데. 지식 쌓는 데에도 영 도움이 되지 않는 책들 말이다.
“얘 좀 보고 배워, 너도 책 좀 읽어라 제발.” 한 술 더 떠서 이렇게 자신의 아이들에게 한 마디씩 하시는 어른들을 볼 때면 괜히 숨고 싶었다. 가만히 있다가 부모님께 한 소리 들은 아이들의 눈빛이 불편했다. 저 애들이 저런 소리를 듣는 게 나 때문인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들고, 조금 억울했다. 뭐 대단한 걸 하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는다고 내가 더 똑똑한 것도 아닌데. 책을 읽는 나에게 차라리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솔직히 어렸을 때 읽은 책들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중 반복해서 읽을 정도로 좋아했던 소수의 책들만 여전히 좋아하고 있다. 책을 많이 읽어서 얻은 게 있느냐 묻는다면 확실히 대답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긴 글을 읽고 사고하는 데에 거부감이 없었던 것, 특히 영상물들이 주로 소비되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그렇다는 것은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아, 또 하나 있다면 맞춤법은 따로 배울 필요가 없었다는 것.
요즘 들어서는 책을 그리 많이 읽지 않는다. 예전에는 책으로 보내던 시간을 이제는 전자기기들이 채우고 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책이 좋다. 책으로 가득한 도서관이 좋고, 전자 책도 좋지만 종이 책의 질감이 더 좋고, 매끄럽게 읽히는 문장과 생각이 필요한 문장이 좋고,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의 아쉬움과 뿌듯함이 좋다. 책을 읽고 나면 꼭 글이 쓰고 싶어진다. 그러면 글을 써내려간다. 그 순간 역시 나는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