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준비 따위.
대학생이라면 한 번쯤 꿈꾸는 교환학생. 나는 대학에 입학한 후 '졸업하기 전 언젠가는 가봐야지' 정도의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구체적인 계획은 고사하고 어느 나라에 가고 싶은지조차 정하지 않았었다. 다만 내가 홀로 외국에 가서 생활하게 된다면 그때는 나의 영어 실력과 생활력이 훨씬 향상된 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대학 2학년까지 마치고 휴학을 했다. 반복되는 학기의 사이클에 지쳐 쉬고 싶기도 했고 가족이 보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가족이 있는 캐나다로 갔다. 처음 몇 주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이었다. 캐나다의 겨울은 춥고 우울했지만 가족과 함께 있으니 편안했다. 그러나 한 달이 채 못 되어 나의 한국인스러운 조급함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놀아도 되는 건가?“
요즘 대학생들은 참 바쁘게 산다. 학기 중에는 학점관리, 동아리, 기타 교내 활동으로 정신없이 한 학기를 보낸다. 방학 기간이나 휴학 등 비교적 긴 텀이 생기면 자격증, 공인 영어시험, 대외활동 등을 찾아서 한다. 솔직히 나는 방학에까지 그리 바쁘게 살지는 않았다. 학기를 잘 보내려면 방학에는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어 공부와 독서 같은 소소한 목표를 실행하며 여유로운 방학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휴학은 달랐다. 한두 달도 아니고 무려 일 년이 나의 온전한 시간으로 덜컥 생겨 버린 것이다. 그래도 지겨워진 기숙사를 벗어나서 완전히 새로운 환경으로 가면 무언가 달라지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우선은 가족을 보고 싶었다. 그저 캐나다에 가면 영어라도 늘겠지, 거기에서의 생활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비행기에 탔다.
캐나다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지루했다. 내가 갔을 무렵 1월이었던 캐나다는 거의 매일 비나 눈이 왔고, 네 시 반이면 해가 졌다. 집 밖이 온통 새로운 환경인 것은 맞았지만 나는 빠르게 익숙해졌다. 나의 환상과 달리 캐나다도 다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일 뿐이었다. 모두가 각자의 삶을 사느라 바빴고, 내가 찾아 나서지 않으면 친구를 만날 수 없었다. 내가 직접 부딪히지 않으면 영어가 늘 일도 없었다.
그 무렵 불안함과 함께 거의 매일 지속되는 우울을 겪었다. 꽤 오래전부터 지니고 있던 우울이었지만 할 일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야말로 피할 겨를 없이 부딪혀 오는 것이었다. 휴학을 결심할 때 은근히 느끼던 불안함 역시 더 커졌다. 말 그대로 쉬려고 한 휴학이었음에도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결과물을 가져가야 할 것만 같은 강박을 지울 수 없었다.
한동안 영어 수업을 듣고 현지 교회도 몇 군데 나가 보고, 그곳에서 잠시 봉사를 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캐나다에 일 년이나 있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은 점차 강해졌다. 그곳에 나의 자리가 없다는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던 중 친한 친구에게 연락을 받았다.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같이 가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가벼운 제안이었다. 그 자신도 아직 결정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당시 남는 게 시간이었던 나는 일단 파견교 목록을 훑어보았다. 이왕이면 안 가본 유럽 쪽으로 가보고 싶었고, 그중에서 내가 들을 전공 수업과 물가 등 여러 조건으로 국가 몇 개를 추려 보았다.
교환학생 지원 마감 기간은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그리 오래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나는 마침 학점과 토익 성적이 높은 편이었고, 휴학을 해서 흐름이 끊긴 상태였다. 반드시 가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안 갈 이유도 없었다. 안 붙을지도 모르니 지원이나 해 보자는 생각으로 지원서를 냈다. 1 지망은 헝가리, 2 지망은 네덜란드였다.
서류 지원이 마감되자 곧 영어 면접 일정이 잡혔다. 같은 학교에 지원한 세 명이 묶여 줌으로 면접을 보았다. 온통 예상치 못한 질문들이었지만 다행히도 면접을 무사히 마쳤다. 그러나 국제처 선생님이 면접을 마무리하며 하신 말씀에 나는 조금 기대를 접었다.
"이번에 코로나 규제가 많이 풀리면서 교환학생 자체 경쟁률도 높고, 특히 헝가리 지원자가 좀 많아요. 1 지망이 안 될 수도 있으니 너무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1 지망이 되지 않으면 이번에는 깔끔하게 포기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헝가리에 붙어 버렸다. 그 이후로도 나의 갈등은 계속되었지만, 그 와중에도 헝가리로 파견을 가기 위해 진행되는 절차는 착실히 밟았다. 막상 붙었는데 포기하기는 아까웠고, 그렇다고 이렇게 갑작스레 교환학생을 결정하자니 걱정되는 것이 많았다. 낯선 나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역시 컸다. 몇 번이고 취소한다고 메일을 보낼까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헝가리 학교에 모든 지원 서류를 제출했고, 그때가 되어서야 마음을 정했다.
지금 아니면 언제 갈까. 한번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