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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유영 Nov 03. 2022

배낭 하나 들고

여행을 떠나다

   

   유럽여행은 배낭여행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부다페스트는 유럽에서도 중앙에 위치해 있어 다른 나라로 여행 가기에 좋은 편이다. 시기만 잘 잡는다면 10만 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왕복 비행기표를 끊어 유럽의 다른 나라로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 하지만 저가 항공의 수하물 추가 비용이 거의 비행기 값과 맞먹거나 더 비싸기도 하다. 유럽에 오기 전에는 생각지 못한 비용이었다. 그래서 기본으로 포함되어 있는 Personal Item 만으로 어떻게든 해 보기로 했다. 내게 있는 가방은 학교에서 간단히 수업 자료와 노트북 정도 넣고 다니던 작은 칼하트 백팩뿐이었지만.


각각 파리, 스위스에 가져간 내 짐의 전부.


   처음 비행기를 타고 떠난 여행지는 파리. 나는 정말로 이 백팩에 5박 6일 분량의 짐을 다 넣었다. 바지는 입고 간 것까지 총 두 벌에 상의 세 벌, 잠옷 하나와 속옷들, 그리고 세면도구와 간단한 화장품. 꼭 쓸 것만 챙기니 생각보다 5박 6일의 여행에 필요한 짐은 많지 않았다. 매일 찍을 사진에 이틀 정도 같은 옷을 입고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걸로 했다. 그렇게 가볍게 간 파리 여행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다채롭고 예쁜 옷은 없었지만, 실용적인 옷을 입고 힘든 일정을 소화하며 꽤 괜찮은 사진들을 남겼다.


   다음 여행지인 스위스 역시 5박 6일 일정이었다. 마찬가지로 파리에 갔던 짐과 비슷하게 쌌다. 옷이 두꺼워져서 가방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용케 다 들어가긴 했다. 그렇게 스위스 일정까지 무사히 마치며 다시 한번 느꼈다. 이렇게 적은 짐이어도 충분하구나. 여행지도 결국에는 다 사람 사는 곳이니까 짐 싸다가 뭐 빠뜨린 게 있더라도 그게 그렇게 큰 일은 아니구나. (물론 그게 여권이나 지갑만 아니라면 말이다.)


   유럽 여행이라면 필요한 것이 정말 많을 줄 알았다. 나는 가까운 곳에 외출할 때에도 혹시 몰라 이것저것 챙기느라 웬만하면 에코백을 들고나가는 사람이다. 매 학기 기숙사 짐을 쌀 때에도 언제 필요할지 모를 것들까지 챙기다 보면 짐이 불어나곤 한다. 올해 여름에 갔던 일주일짜리 캐나다 여행에는 무려 28인치 캐리어 하나를 친구와 낑낑대며 끌고 다녔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내 인생에서 가장 적은 짐을 가지고 떠난 여행이었다. 그래서 파리에 가기 전날 밤, 내 백팩에 컴팩트하게 들어간 짐을 보며 "정말 이걸로 될까"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하지만 막상 여행지에 가보니 기숙사에 놓고 온 물건이나 옷들 따위는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있는가 보다는 내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리고 처음 가보는 나라에서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며 구글맵을 찾아 돌아다니고 밤에는 무사히 숙소로 귀가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돈을 아끼느라 짐을 줄였지만 크게 부족한 것은 없었다. 5박 6일을 다른 나라에서 살아남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살아가는 데에도 생각보다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모든 것을 갖추고 있을 수는 없을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다. 필요한 때가 되면 어떻게든 채울 수 있고, 문제가 생겨도 대부분의 상황은 어떻게든 해결이 되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올해 들어 이 생각을 많이 한다.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며 예상치 못한 상황에 워낙 많이 부딪치다 보니, 이제는 계획에서 어긋나는 일이 생겨도 무덤덤하다. 오히려 "이번에는 또 어떤 일이 날 기다리고 있으려나" 하는 태평한 마음까지 갖게 되는 것 같다. 삶도 마찬가지다. 삶은 예측 불가능한 일의 연속, 문제의 연속이 아닌가. 이런 삶에 전보다 조금 더 여유 있고 의연한 태도를 취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어떻게든 해결되고, 어떻게든 지나간다. 행복한 날이 있으면 불행한 날도 있고, 좋은 사람이 있으면 안 좋은 사람도 있다. 성공적인 계획이 있으면 실패한 계획도 있다. 적으면 적은 대로 버티고, 풍족하면 그만큼 감사하면 된다. 여행이 그렇고, 삶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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