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의 추억

by 임선

독립생활을 한다는 것은 많은 가르침으로 다가 왔다. 고등학교 입학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서 자취생활이 시작되었다.


전남 목포시에 자취방을 얻은 동네에 오래된

소나무가 장승처럼 마을 어귀에 서 있었다.

집이 멀어 자취생활을 하기로 하고 방값을 절약

하기 위해 중학교 친구들과 같이 방을 얻었다.

자취 집은 현대식으로 외풍은 없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했다. 시간이 없어서

아침에는 석유곤로 밥을 저녁에는 연탄 밥을 해

먹었다. 밥 하는게 쉽지 않아 연탄밥을 물에 말아

먹고 도시락으로 싸가 학교에 가서는 친구들이 볼까봐 고개를 숙이고 먹었다. 그럴때면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서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연탄불

이 꺼지는 날이 많아 추위에 떨며자는 날도 있었

다. 그러던 어느날 방바닥에 금이 간 곳으로 연탄 가스가 새어 들어왔다. 연탄가스를 마셔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프고 속이 니글거리며 토할 듯이 메스꺼워 정신이 몽롱해져 무의식적으로 방문

을 열고 밖으로 나와"살려주세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신음 소리에 놀란 주인집 아주머니가

맨발로 뛰어 나오셔서 가스를 마신 친구들을 밖으로 꺼내 주었다. 민간요법인 동치미 국물을

마시게 했고 지극 정성으로 돌보아 줘서 가스 중

독에서 깨어났다. 아파서 학교에 못가니 담임 선생님이 방문 하셨고 주인집 아주머니 아니었 으면 큰일날뻔했다고 하시면서 감사 인사도 해 주었다.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비밀로 했다. 동네

어귀에 사는 김흥순이라친구는 학교가 끝난 후

나에게 밥과 반찬, 과일을 내어 주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친구가 너무 보고 싶다.


2학년 때부터 교복 자율화가 시작 되었다. 교복

에서 해방된 학생들은 더 많은 선택권을 주고

학생들의 개성을 표현하고 자율성과 학교 생활

에 집중 할 수 있도록 학교문화가 바뀌었다. 똑

같은 옷차림과 신발을 신어 식별이 어렵고 천으

로 된 신발을 신으니 눈,비 오는 날은 발이 젖어 슬리퍼를 준비해서 신어야 하고 여분 양말도 준

비해야 해 불편함이 있었다. 나는 치마를 입지

않아 않아도 되니 좋았고 브랜드 가방과 가죽 운동화를 신어서 비가와도 젖지 않아 좋았다.

편한 옷차림의 청바지,청자켓을 입고 등교를

하니 활동하기도 편하고 수업에도 집중할 수

있고 실용적이어서 입고 싶은 옷이니 공부도 더

잘 되었다. 몇몇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은 체육

복을 입고 등교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머리는

단정하게 하는게 규율이지만 파마도 하고 염색

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학교에선 탈선하는 친구

들을 관리하기 위해 방과 후 교내 생활지도 하

시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나는 단정하게 입지

않으면 생활지도를 받아야 했기에 교칙을 지키

려고 노력했다.이제는추억으로 남는 시간들이

그리워진다.


학교에 밴드부는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들어가

려곶입학원서를 내는 친구들이 많았다. 음악을

좋아하고 흥도 있는 친구랑 신청서를 내고 심사

를 받았지만 아쉽게도 친구만 합격했다. 밴드하

는 친구들은 인기가 많아 인근 학교 남학생들과

미팅이나 펜팔요청을 많이 받았다. 규율이 업격

하서 빵집에서 미팅을 하거나 어울리다 발각되

면 학생부에 불려가서 반성문을 쓰고 처벌을 받

기 때문에 방가 후에는 그 장소는 가지 않고 집

에서 보내야 했다. 친구가 남학생 학생들이랑 미팅을 하기로 했는데 여학생이 사정이 있어서

못가게 되어 친구의 부탁으로 대신 나갔다. 두근

두근 가슴이 뛰고 떨렸지만 용기를 내어 미팅을

해서 짝을 정한 그애와 유달산을 한바퀴 돌면서

혹시라도 누가 볼까봐 주위를 살피느라 대화를

제다로 하지 못 하고 시간만 흘려 보냈다. 미팅

후 몇 번 만나기도 했고 주로 편지를 주고 받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용기도 없고 무섭고 학생부에 걸리면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기에

포기했다. 세월이 지난 지금 되돌아 보니 미팅

도 하고 빵집도 가볼걸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자취하는 시절 동네 친구는 잘 지내고 있는지

가끔은 궁금해진다. 고교시절 첫사랑 추억도 없는 것이 아쉬움도 남는다.


처음으로 부머님 품을 떠나 자취를 하면서 새로

운 환경과 마주하면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서로 양보와 인내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인생에 값진 깨달음을 배웠고 여고시절 자취생활을 하

며 겪은 친구들과의 추억이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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