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아버지는 늘 바쁘셨다. 가족들은 조린 갈치조림에 살점보다는 함께 어우려져 조려진
무를 좋아하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는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셨다. 무뚝뚝했지만 자상함에 말수는 적었다. 동네에
서 비교적 넉넉한 집 아들로 부족함 없이자라셨
다.20대 중반에 어머니와 결혼 후 1남4녀의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 친구분들과 막걸리를 즐겨 드셨던 아버지는 장날 이면 장에
가는 것이 유일한 취미생활 이셨다. 체격은 좋았 지 만 몸이 약하셔서 항상 걱정이었다. 막걸리 를 자주 드시니 자주 어지렵고 머리가 아프고 다리가 쥐가 난다고 자주 말하셨다. 두통 약을 드시면 나아지셔서 그냥 지나쳤다. 며칠 후 방 안에서 일어나다가 다리와 손에 힘이 풀리시더 니 그대로 쓰러지셨다. 병이 지속되고 있었던
것갔다. 병원에 갔지만 특별한 방법이 없어서
퇴원을 해 가정간호를 시작했다. 변해버린 몸을
보시고 많은 고통과 힘든 날들을 병마와 싸우셨다. 뇌졸증으로 쓰러지져서 고생을 하시 다가 49세 짧은 인생을 마감하셨다. 아버지
형제들은 지금도 건강히 잘 지낸다. 친척들을 만
나면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
하다. 무엇이 급하셔서 빨리 가셨는지.,.기억속
에 아버지는 큰띨이라고 많이 예뻐해 주셨던 것 같다. 큰사위라고 소개했을때 환하게 웃어
주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안계신 빈자는 가슴 한켠이 뼈를 깎는 듯이 아려온다. 부모가 되고 보니 아버지와 추억을 많이 쌓지못한 것이 후회
에 눈물이 난다.
아버지는 갈치조림을 를 잘 하셨다. 어머니가 외갓집에 가시면 아버지가 갈치조림을 해 주셨다 반지르하게 조려진 맛깔스런 갈치조림 이 올려진 밥상에섲아버지와 오남매가 마주 읹았다
무와 김치를 밥에 얹어 먹다보면 아버지는 딸
의 옆구리를 꾹 찌르며 갈치조림 한점을 밥그릇
에 슬쩍 얹어주셨다. 억젠가 시골집에 다니러 갔
는데, 저녁밥상 위에 갈치조림이 놓여 있있다. 시장에 가서 갈치만보면 아버지 생각이 나서 필히 사온다는 것이다. 어린시절 아버지가 해
주었던 것처렘 하나는 고추장을 풀어 무를 넣고
조림을 하고 다른 것은 고운 소금을 살짝 끼얹 어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기름에 튀긴다고 하
였다. 빕그릇을 앞에 두고 나와 형제들은 수저 위에 갈치 살점을 얹어 주셨던 아버지의 사랑표
현 때뮨이리라. 동생은' 갈치조림을 자식들에게
나눠 주시고 정재 아버지는 무를 드셨는지 아느
냐' 물었다. 나는 김치를 드시지 않았겠냐고 하니 , 동생은 접시를 들어 남아있는 김치와 무조각과 국물을 밥위에 얹어 한 술 떠 먹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하셨다며....
철없던 시절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한 늦은 후회와 갈치조림만 보면 아버지 생각
이 난다. 저 세상에 계신 아버지에게 전달었을까. 나도 아버지를 닮아 김치와 무를 넣고 비벼먹는
것은 내 어린시절 아버지 그대로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아버지가 이승을 떠나신지 30여년이 지났다.
매년 늦가을 제사를 지내러 고향에 간다. 형제
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아버지를 생각하여
정성껏 음식을 준비했다. 생전에 옛 노래를 흥얼
거리셨던 노래들을 부르면서 허전함과 그리움을
채워본다. 가족행사에서 친가 가족들을 마나면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 짧은 싦을 마감한 아버지는 하늘에서 잘 지내고계실까? 건강하시지만 홀로 계시는 어머니를 보면 아버지랑 오손도손 사셨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식으로서 잘 해 드리지 못 한
죄송함에 뒤늦은 참회로 가슴을 쓸어내린다.
천국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버지 만나
행복하게 잘 지내고 두다리로 뛰어 다니고 계신
가요? 아버지 건깅하게 계시다가 훗날 꼭 만나
요. 아버지 이승에서 못 한 일들 그곳에서는 이루시길 바래요. 우리 가족들을 지켜주세요.
아버지 계신곳은 편안하신지요.
지금은 이세상에 안 계시지만 항상 지켜보실거
라 생각하면서 열심히 성실하게 살게요.
이제는 아버지를 사진으로만 그리워 하며 살아가고 있다. 갈치조림을 보면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는 알겠다." 열심히 살고 있으니 하늘에서 잘 지켜봐 주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