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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고딕 Jan 02. 2023

동화 속 풍경, 플랑드르지방 겐트

백작의 중세 이야기가 강을 따라 휘감아 흐르는 겐트(Ghent)

벨기에 하면 브뤼셀이 EU와 나토 본부가 위치해있는 등 유럽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어서 현재는 가장 많이 알려진 도시이지만 중세시기에는 겐트가 방직산업으로 크게 발전하여 유럽에서 파리 다음으로 가장 큰 도시였다고 한다. 중세 시기 크게 발전한 덕분에 중세의 가장 발전적인 도시의 모습을 현재까지 간직하고 있어서 다른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중세의 매력이 가득한 곳이다.

새벽 첫 비행기를 타고 도착할 때만 해도 밖이 깜깜해서 빨리 움직여 일출을 보리라는 계획은 공항에서 버스를 놓치고 교통편에 혼선이 있어 공항에서 해가 다 뜬 후 이동해 시작부터 아쉬움이 있었지만 겐트를 마주한 순간에 모든 아쉬움이 날아갈 만큼 잠들어있던 동심을 자극하는 동화 같은 곳이었다.

겐트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모직물 생산품을 겐트를 가로지르는 운하를 통해 여러 도시로 이동할 수 있어서였다.  겐트를 감싸고 흐르고 있는 강이 레이에 강이다. 이 강을 기준으로 겐트는 위쪽의 흐라슬레이(Graslei)와 아래 동네인 코렌 레이(Korenlei)라고 불리는 두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흐라슬레이(Graslei)와 코렌 레이(Korenlei)를 흐르며 양쪽에는 예전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자태를 뽐내는 오래된 길드 건물들의 동화스러움과 건물 각각에는 개성이 강한 창문도 볼 수 있다. 현재는 크루즈를 통해 예전 중세시대 건물들을 운하를 따라가며 볼 수 있는 데, 배를 따라 서로의 개성을 뽐내며 경쟁하듯 빼곡하게 서있는 아름다운 중세 유산들이 겐트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된 것 같다.

레이에강을 따라 경쟁하듯 자태를 뽐내고 서있는 중세시대 건축물들


운하를 따라가다 보면 중세 건물 중 그 규모면에서나 동화 같은 외관상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그라벤스틴 (Gravensteen) 성일 것이다. Gravensteen 은 9세기에 플랑드르에 거주한 백작 볼드윈 2세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운하가 흐르는 전략적 장소에 요새를 건설했다고 한다. 백작의 아들인 아르눌프 1세(Arnulf I)가 볼드윈 백작을 이어 요새를 건설해서 겐트(Ghent)의 리스(Lys)와 셸트(Sheldt)가 합류하는 지점에 요새를 건설했다.


겐트 시내의 지어진 중세 건축물들은 모두 당시 시대로 볼 때 규모가 크게 지어졌는 데 13세기 이 전부터 발전하기 시작한 이곳의 방직 산업이 도시에 막대한 부를 안겨주어 도시가 번성하였다고 한다. 9세기부터 14세기 사이에는 겐트가 유럽에서 파리 다음으로 큰 도시로까지 성장하였다. Gravensteen 도 당시 지어진 수준에서는 규모가 크게 지어졌는 데 백작의 주 거주 용도는 아니었고 한시적으로 잠시 거주하였기 때문에 이 성은 다른 용도로 주로 사용하였다.

 

한시적으로 거주하는 용도 치고는 방마다 벽난로도 많이 만들어두고 정성을 들인 모습에서 주 거주용으로 사용하려고 지은 듯이 보였는 데, 남부 유럽과는 달리 북유럽에 가까운 날씨여서 건축할 때 임시사용 시에도 따뜻하게 지내려고 벽난로와 건물벽을 두껍게 튼튼하게 잘 지은 것 같다.


이 성은 건축 이후 교도소와 법원, 공장 등 여러 용도로 사용 돼왔는 데 특히  고문실로도 사용되어서 인지 건물 내부에서는 단두대와 고문기구가 많아서 처음에 외관만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보다가 관람 후에는 무거운 마음으로 성을 나오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성 내부 전시는 관람 입장료는 내면 무료로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할 수 있는 데 성안애 실제로 사용된 다양한 고문 기구들이 전시돼 있다. 죄수들을 지하 좁은 감옥에 넣어놓고 굶기면서 감옥 위쪽에는 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보기만 할 수 있게 약 올리는 고문 등 잔인한 당시 고문 수법들을 볼 수 있어 뭐 저렇게까지 했나 싶어서 당시 고문 장면을 보는 관람자는 마음이 심란해질 도 있다.

중세 고문실과 처형 기구 등을 보고 조금 무거워진 마음을 안고 성 꼭대기 층에 오르면 겐트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성을 따라 흐르는 운하와 성 외부를 볼 수 있고, 또 운하옆으로 겐트 시내를 관람할 수 있는 데 겐트를 대표하는 성 바프 성당도 보여서 겐트의 명물들을 모아서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이곳에 있다.


9세기부터 지은 건물은 목조 구조였는 데 11세기에 리노베이션을 통해 귀중한 Tournai 석회암으로 된 호화로운 저택으로 보수하였다. 초기에 지은 목조도 일부는 별채와 건물 일부에 남겨져있다.


성은 12세기가 되면서 Diederik van de Alsace가 새롭게 백작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성을 통치했는 데 성은 알자스 백작과 그와 그 아들 필립의 통치 기간 동안 플랑드르 도시에서 길드 산업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겐트와 인근도시인 브뤼헤를 더욱 번성하게 하는 중요한 정치 역할을 했다.

  
 양모 가공 산업 덕분에 겐트는 그 기간 동안 번영하면서 도시의 건물들은 당시 부자들의 유행으로 건축한 석조건물로 바뀌게 되고 Gravensteen성도 리노베이션을 하며 트렌드를 따라 투르네 석회암으로 만든 호화로운 석조 주택으로 보수하였다.


 1차 십자군 원정을 나갔던 성 주인 필립 반 드 알자스는 원정에서 돌아오자마자 당시 부자들이 많이 거주한 이곳에 중세시대의 최신식 건축양식으로 개보수를 하여 당시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양식의 모습을 현재에도 볼 수 있게 되었다. Gravensteen은 백작가족이 겐트에 잠시 있을 때만 머물렀기 때문에 주로 행정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백작의 행정부가 이곳에 있으며 법을 집행하는 역할을 많이 했기 때문에 14세기부터 백작의 성은 플랑드르에서 법의 중심지가 되었다. 중대한 범죄를 다스리는 권한이 있고 항소 법원 역할을 하는 플랑드르 평의회가 그곳에 있었다. 17세기에는 4개의 다른 법원이 성에 있었다.


Gravensteen은 법정과 동시에 감옥 역할도 했기 때문에 전시실의 지하공간 감옥은 보는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든다. 중세 초기에는 고문이 잠시 사라졌지만 고문을 프랑드르 공의회 때 다시 도입하기로 결정되면서 15세기부터 채찍질과 팔다리 찢기 같은 고문 등 당시 이곳에서 진행한 고문기구를 볼 수 있다.  (Gravensteen가이드와 설명서 참고)


성은 18세기에 법원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 경매를 통해 주인이 바뀌게 되는 데 건축가 Jean-Denis Brismaille이 성을 구매하며  성 입구 옆에 집을 지어 직접 이사를 오게 됩니다.

그는 성을 면화 공장과 금속공장단지로 변경시켰고 성의 부지에 약 50명의 노동계급 가족을 수용할 수 있는 숙소 즉 해치를 만들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성은 다른 전형적인 겐트 노동계급 숙소 형태로 꾸며졌고  백작의 성은 시테 훌린(Cité Hulin)으로 알려졌다.


19세기말에 겐트 시의회는 벨기에 주와 함께 이 부지를 매입하여 복원하였고 이 성의 중요한 시기에 주인이었던 알자스 필립 성 시대를 주 테마로 하여 오디오 가이드를 구성하였다. 백작의 성은 1913년 세계 박람회는 공개되면서 외부에 알려졌다.


성 꼭대기에서는 개인적으로 그라벤스틴과 함께 겐트를 대표하는 곳이라 생각되는 바프 대성당, 성 니콜라스 교회와 종루까지 일직선상에 나란히 볼 수 있어 백미를 이룬다. 중세 큰 부를 일군 도시라서 그런지 각자의 미를 뽐내고 서있는 길드 건물들과 대성당 등 랜드마크 건물들이 하늘을 찌르며 솟은 동화 같은 이곳의 풍경에서 겐트 사람들은 예술적인 자극을 받을 만한다.

 
이곳의 남다른 동화 풍경이 예술적인 감각을 자극해서 예술가들이 많은 도시일까? 중세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세계 최초로 유화를 만들었다고 하는 거장 반에이크가 남긴 불후의 걸작 '신비한 어린양에 대한 경배'가 바프 대성당에 자리 잡고 있어 예술을 접할 목적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겐트는 클래식 미술뿐 아니라 낙서 미술인 그라피티도 도시의 명물로 자리 잡고 있다. 꼭 유명화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기를 뽐낼 수 있는 장소들이 있어 예술적인 기운이 가득한 도시에서 끼를 감추기 어려운 거리 화가들이 숨통을 트며 살 수 있는 곳인 것 같다.

 그라피티는 전문 미술도구보다는 주로 스프레이를 이용해 거리에 있는 건물 벽면에 그림을 감기는 데 겐트시는 도시 곳곳에 그라피티를 그릴 수 있도록  후원하고 있다.


 겐트 운하를 체험하며 외부에서 그라벤스틴과 주요 랜드마크를 감상하고 길드 건물 사이 빼곡히 들어선 테라스 카페를 돌면서 성 바프 대성당을 지나며 플랑드르 화풍을 대표하는 얀 반 에이크의 동상을 가로질러 브뤼셀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이 도시를 떠났다.


겐트에서 저녁시간에 중세 공간으로 이끈다는 유명한 야경을 체험하지 못해 못내 아쉬웠지만 이곳은 다음에 꼭 다시 올 곳 같다는 예감을 믿으며 이곳의 야경은 다시 올 그날의 숙제로 미루며 떠난다. 브뤼셀로 돌아서 그랑플라스 번쩍번쩍한 금빛 야경을 보며 야경 욕구를 달래긴 하였지만 개인적인 취향이 그랑플라스의 번쩍번쩍한 야경보다는 저녁의 풍경 속에 젖어드는 조용한 중세 풍경을 원했기 때문에 프랑플러스보다 순수함에 가까운 겐트의 야경을 다음에는 꼭 마주하고 싶다.


북유럽의 깔끔함과 쾌적한 기분 그리고 동화 속으로 들어가는 설레는 동심을 선사해준 겐트, 새벽출발하는 첫 비행기를 타고 겐트로 함께 향한 여행친구와의 추억도 겐트에 묻어두고 다음번에 올 때는 야경과 함께 이곳의 첫 느낌의 풍경과 추억도 함께 꺼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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