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이 있습니다
변함없이,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내 편 결혼한 지 30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늘 곁을 지켜준 남편에게 보내는 늦은 고백. 수없이 흔들리던 제 삶의 등대가 되어준 사람.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간을 지나며 깨달은 '내 편'이라는 존재의 소중함에 대하여.
결혼한 지 어느덧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스물넷, 금형설계학원에서 소개로 처음 만났던 풋풋했던 그 사람은, 강산이 세 번 변하는 시간 동안 변함없이 제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단어로 부르는 이름, ‘내 편’. 그리고 제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게 부르는 이름, ‘오빠’.
이른 나이에 사회에 뛰어든 저는, 단지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수많은 도전을 이어왔습니다. 학문적인 배경이 풍부하진 않았고, 제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았기에 그저 부딪히며 살아왔습니다.
넘어지고, 헤매고, 길을 잃는 일이 반복되었죠.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저는 조금씩 저를 알아가고,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법을 배워왔습니다.
그 시간 동안, 내 편은 단 한 길을 묵묵히 걸어왔습니다. '금형설계'라는 한 우물을 파며 지금까지도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내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 갈래의 길 위에서 불안하게 흔들렸지만, 그는 늘 단단한 나무처럼 같은 자리에서 저를 바라봐 주었습니다. 마치 길 잃은 배가 등대를 보며 안심하듯, 저는 그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시 나아갈 용기를 얻곤 했습니다.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내 편'은 풍랑을 막아주는 방파제이자, 나아갈 길을 비춰주는 등대입니다.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용기를 얻습니다.
그의 존재가 가장 선명하게 느껴졌던 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추웠던 시간이었습니다. 3년 전, 매일같이 전화하며 웃고 떠들던 친정엄마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셨습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인 6개월 후, 친정오빠마저 불의의 사고로 부모님 곁으로 떠나갔습니다.
그 6개월은 제 삶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었습니다. 까만 밤이 찾아오는 것이 두려워 잠을 잘 수 없었고, 겨우 잠이 들어도 끔찍한 가위에 눌려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는 밤이 이어졌습니다.
제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던 그 모든 순간, 내 편은 조용히 제 옆에 있었습니다. 어떤 위로의 말도, 섣부른 조언도 없이 그저 따뜻하게, 제가 더는 가라앉지 않도록 곁을 지켜주었습니다. 그 말 없는 온기가 제게는 세상 가장 큰 위로였습니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나면 저는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새로 생긴 꿈을 위해 공부를 합니다. 예전엔 새벽 2시까지도 책상 앞에 앉아 있었지만, 병원에서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지금은 12시까지만 하기로 스스로 약속했습니다.
내 편은 소파에서 먼저 잠들어 있다가도, 12시가 되면 알람처럼 스르르 일어나 나직하게 말합니다. “그만 자자.” 그 다정한 한마디에 저는 비로소 치열했던 하루를 마무리하고 편안한 잠자리에 들 수 있습니다.
재택근무를 하는 그는 제가 잠든 후에도 새벽까지 급한 일을 처리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제가 먼저 잠자리에 들 때면, 그는 늘 제게 이불을 덮어주며 속삭여줍니다.
“오빠,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 그 말이 참 따뜻합니다.
칠흑 같던 밤, 홀로 가위에 눌려 공포에 떨던 저를 알기에 건네는 말이란 걸 압니다. ‘네가 잠든 사이에도 나는 깨어 너를 지키고 있으니, 무서운 꿈을 꾸거든 망설이지 말고 나를 부르라’는 세상 가장 든든한 약속이라는 것을요.
사랑은 꼭 화려한 말로 표현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일상 속 사소한 행동, 걱정이 담긴 한마디, 말없는 기다림 속에 더 큰 사랑이 담겨있을지 모릅니다.
이제는 내 편의 그 따뜻한 약속 덕분에 더 이상 가위에 눌리지도 않습니다. 한때는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압니다.
제게는 언제나 제 편인 그가 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내미도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다시,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 편이 늘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어 주었듯, 저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든든한 편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제 곁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제 글을 읽는 당신에게. 그런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살아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