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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위 포트홀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편견에 맞서 내 권리를 찾은 이야기

by 달빛서재

이 글은 2년 전, 비 내리던 어느 겨울밤의 이야기입니다. 도로 위 깊게 팬 구멍, 포트홀이 제 차뿐만 아니라 제 마음까지 할퀴었던 그날 밤의 기록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상처가 아닌, 작은 용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건 원래 안 돼요"라는 세상의 무심함 앞에서 끝내 "아니요, 됩니다"를 증명해 낸 한 사람의 끈질긴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차가 아니라, 마음이 찌그러졌던 그날 밤


2023년 1월 14일, 늦은 저녁이었습니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시흥시 물왕리의 어두운 도로를 나름의 최선을 다해 안전 운전하고 있었죠. 그 순간, '쿵!' 하는 굉음과 함께 차체가 격하게 흔들렸습니다. 너무 놀라 심장이 내려앉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실감했습니다. 곧이어 계기판에는 타이어 이상 경고등이 섬뜩하게 떠올랐습니다.


가까스로 차를 안전한 곳에 세우고 확인한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타이어는 날카롭게 찢어져 있었고, 단단해야 할 휠까지 속절없이 휘어 있었습니다. 보험사를 통해 10km 무상 견인으로 가까운 타이어 매장에 도착했지만, 휠까지 교체해야 한다는 진단에 결국 다시 서비스센터로 2차 견인을 해야 했습니다.


10km가 넘어가는 거리에 추가 비용까지 지불하며, 그 늦은 밤까지 사고를 수습하느라 계획했던 모든 일들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찌그러진 휠이나 예상치 못한 지출이 아니었습니다. "에이, 포트홀 사고는 원래 보상받기 힘들어요."라며 저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정비소 직원의 무심한 눈빛이었습니다.


그 눈빛 속에는 '여자가 뭘 알겠어'라는 명백한 무시와 편견이 담겨 있었죠. 자동차와 관련된 일을 겪을 때마다 마주해야 하는 이 불쾌한 시선들. 그 순간, 제 차가 아니라 제 마음이 더 깊게 찌그러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길 위의 싸움, 지도를 그려나가다.


다음 날, 저는 포기하는 대신 현장으로 다시 나갔습니다. 비는 그쳤지만, 사고 지점의 포트홀은 여전히 위험하게 입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다른 운전자들의 안전을 위해, 그리고 제 권리를 찾기 위해 저는 시흥경찰서에 신고했습니다. 잠시 후 도착한 경찰관 두 분의 도움으로, 쌩쌩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안전하게 현장 사진과 동영상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찌그러진 휠만큼이나 복잡해진 머리를 붙잡고 '길 위의 싸움'을 위한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시와 편견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저는 감정적인 호소 대신 객관적인 자료와 절차라는 나침반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권리 찾기'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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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증거 확보): 사고 직후 도로 위치와 차량 파손 상태를 꼼꼼히 촬영하고,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합니다. (저는 경찰관 입회하에 더 확실한 증거를 만들었습니다.)


2단계 (서류 준비): 수리 견적서와 영수증 등 피해를 입증할 모든 자료를 빠짐없이 챙깁니다.


3단계 (책임 기관 확인 및 청구): 사고 도로의 관리 주체를 확인하고, 준비된 자료를 제출해 배상을 청구합니다. 저의 경우는 시흥시청 도로관리과였습니다.


(※ 고속도로는 한국도로공사, 자동차전용도로는 시설관리공단 등 도로 종류에 따라 책임 기관이 다릅니다.)


*중요: 과속 등 운전자의 과실이 없어야 보상 청구가 원활하다는 점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막막해 보였지만, 하나씩 절차를 밟아가니 가야 할 길이 보였습니다. 저는 그저 '피해자'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게, 길은 열린다


보험회사와 시흥시청에 제가 준비한 모든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기적 같은 연락을 받았습니다. 타이어와 휠 교체 비용 전액을 보상받게 된 것입니다. "원래 안 된다"던 그들의 말은 틀렸고, 포기하지 않았던 저의 믿음이 옳았음을 증명해 낸 순간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사고는 제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세상은 때로 "원래 그래", "해봤자 안 돼"라는 말로 우리의 용기를 꺾으려 합니다. 특히 사회적 편견 앞에 놓였을 때 우리는 더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곤 하죠. 하지만 저는 이 경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부당함 앞에서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그리고 끈질기게 배우고 두드릴 때, 세상은 반드시 길을 열어준다는 것을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지금 어떤 분야에서든 보이지 않는 벽 앞에 서 있다면, 저의 작은 이야기가 당신의 마음에 작은 파동을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당신의 정당한 목소리는 당신 자신을 지키는 가장 단단한 무기입니다. 그 무기를 꺼내 드는 순간, 당신의 길도 활짝 열릴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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