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관계 [ep.2 -수현의 이야기]
수현은 가족에 대한 증오가 있었다. 그녀의 부모에 대한 증오, 그리고 가족의 관심과 사랑에 대해 갈증이 있었던 그런 수현에게 관심도 없던 그녀의 자매에 대해서 말이다. 애증의 관계로 어떨 땐 그들이 안쓰럽고 불쌍하다가도 수현은 목구멍까지 욕이 올라올 만큼 마음속에 분노가 가득 차 씩씩되고는 했다. 수현에게 해소되지 않는 ‘가족의 사랑’ 은 언제나 갈증이었다.
기계처럼 돈을 벌러 가는 가부장적인 아빠와 그저 그런 아빠를 묵묵히 따르는 엄마, 아빠의 말이라면 법처럼, 회사의 상사처럼 따르는 수현의 엄마, 수현은 그런 엄마도 아빠도 안쓰러워 보였다. 그 둘은 사랑을 정말 했을까?
아니면 세월이 흘러 사랑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걸까?
거실 밖의 소파에 차분히 앉으며 회색빛깔의 벽지를 바라보던 수현은 그 정적에 압도될 거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수현은 유독 어두운 밤을 싫어했다.
해를 보지 못할 때면 불쑥불쑥 그녀가 원하지 않은 불청객이 머리를 쑤욱 내밀며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던 수현의 머릿속에 행복하지 않았었던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조각들의 기억이 떠오르고는 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원하지 않음에도 어두운 생각들은 수현의 머릿속을 지겹게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마치 그림자처럼, 그녀에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거처럼 말이다.
흰색의 벽지가 오늘따라 차갑게 다가왔다. 건조한 공기, 그녀가 느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좋았던 기억들도 있었겠지만 그 좋았던 기억들은 수현의 머릿속에 안타깝게도 강력하게 남아버린 ‘슬픔’과 ‘화남’이라는 기억의 조각들에 의해 덮여버렸다.
그녀의 수많은 어둠 속에 아픈 조각으로 남아있는 기억, 그녀가 아들이 아닌 딸로 태어났고 그렇기 때문에 원하던 원하지 않던 ‘수현의 존재’는 부정당했다.
수현은 나이를 먹고 아흔 살이 된 지금 시점의 할아버지가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은 이렇게 나약한 존재이지만 왜 젊을 때는 그걸 자각하지 말고 독불장군처럼 행동했을까, 안타까운 마음과 그리고 애증의 마음이 공존했다.
현재 스무 살 후반인 수현은, 스스로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다른 평범한 친구들처럼 그녀의 어린 시절이 행복했던 기억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
슬픔과 무기력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더라면,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때 고비가 오고 결국은 넘어져버리는 순간들에도 쉽게 일어설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 어린 시절 수현의 손을 잡아주던 단 한 사람의 어른다운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그녀의 마음이 이렇게 엉망이지는 않지 않았을까?
수현은 조용히 앉아있던 소파에 베개를 감싸 안아 웅크리고 눈을 감았다. 그녀가 어린 시절 유난히도 좋아했던 노래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수현이 가족과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순간의 일부분이라도 행복했던 감정을 되돌아보면 조금이나마 따스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수현은 사랑을 받았던 그 순간을 힘들게 끄집어내지만 왼쪽 볼을 타고 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