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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지키는 붉은 길 ㅡ후시미 이나리 신사

by 다다미 위 해설자

일본 교토에 가면
꼭 나오는 사진이 있습니다.

빨간 문, 빨간 문, 또 빨간 문—
끝도 없이 이어지는 붉은 터널.
사람들이 거기서 사진 찍고, 박수 두 번 치고, 절도합니다.

그곳이 바로 후시미 이나리 신사입니다.

근데
그거 그냥 "예쁜 포토존" 정도로 생각하시면 큰 오산입니다.



이야기는 1,300년 전으로 올라갑니다.
그땐 일본이 아직 농업 중심,
쌀이 곧 재산이고, 쌀이 없으면 굶어 죽는 시대였어요.

그런데요,
교토 후시미 지역에 가뭄이 들어서
논마다 벼가 타 죽고, 마을 사람들도 굶주렸습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하타 씨입니다.
그가 말합니다.

“신을 모시자.
쌀을 지켜주는 신을 이 땅에 세우면, 풍년이 올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곳이 바로
후시미 이나리 신사입니다.

‘이나리(稲荷)’는 한자로 ‘벼를 나르는 신’입니다.
벼, 즉 쌀을 풍년 들게 해주는 존재.
근데 이 신이 단순한 농사의 신이 아닙니다.

쌀 = 생명
쌀 = 돈
쌀 = 권력

쌀이 곧 전부였던 시절,
이나리 신은 곧 ‘번영의 상징’이었죠.

“여우가 왜 여기 있냐고요?”

후시미 이나리 신사에 가면
온통 여우 석상입니다.

사람들은 사진 찍으며 귀엽다는데,
그 여우들, 그냥 세워놓은 게 아닙니다.

여우는 이나리 신의 ‘사자(使者)’,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전령입니다.

여우 입을 잘 보세요:

벼 이삭 → 풍요를 가져다줍니다

열쇠 → 곡물 창고를 여는 번영의 상징

두루마리 → 지혜와 학문의 은총

여우가 물고 있는 게 다 다르고,
그게 전부 사람들의 ‘소원’을 의미합니다.

“그 수백 개 붉은 문, 누가 세웠을까?”

후시미 이나리 신사의 시그니처, 바로 도리이(鳥居)입니다.
빨간 문이 끝없이 이어지는 그 길.

그게 왜 생겼느냐?
소원을 이룬 사람들이 감사 표시로 세운 겁니다.

장사 잘 됐다

사업 번창했다

병 낫고, 가정이 평안해졌다

그럼 “신님, 감사합니다” 하고
돈 내고 도리이 하나 설치하는 겁니다.

그렇게 1,300년 동안
성공한 사람들의 흔적이 길을 이룬 거죠.

이게 단순한 관광지겠습니까?

우리가 걷는 그 붉은 터널,
그건 누군가의 피땀, 성공, 소망이 층층이 쌓인 공간입니다.

그리고 일본 사람들은 아직도 거기 가서
두 손 모으고, 박수 두 번 치고, 절하면서 소원을 빕니다.

대부분 이렇게 빕니다:

“올해 우리 회사 대박 나게 해 주세요.”
“장사 잘되게 해 주세요.”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

다시 말해,
후시미 이나리 신사는 ‘성공을 비는 신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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