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 신궁.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그저 '일본의 유명한 신사 중 하나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녀온 지금은,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이세 신궁은 단순한 신사가 아니다.
이곳은 일본이라는 나라의 ‘심장’이자, ‘뿌리’이며, ‘정체성’ 그 자체였다.
천황의 뿌리는 신에게 있다
일본은 헌법으로 ‘신의 나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일본 사회 곳곳에는 “신의 혈통”이라는 개념이 은근하게 배어 있다.
왜 그럴까?
일본 천황 가문은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직계 자손이라 믿는다.
그 신을 모신 곳, 바로 이세 신궁이다.
이세 신궁은 그래서 ‘신의 궁전’이자, ‘천황의 조상집’ 같은 곳이다.
일반인도 들어갈 수 있지만, 가장 안쪽—진짜 본전은 천황도 평소엔 들어갈 수 없다.
오직 천황의 즉위식 같은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만 허용된다.
이쯤 되면 느껴진다.
이건 관광지가 아니라, 정체성의 성지라는 걸.
왜 일본은 신궁을 20년에 한 번씩 허무는가?
이세 신궁을 걸으며 가장 놀라웠던 사실.
바로 이 신궁이 20년에 한 번씩 새로 지어진다는 것이다.
1300년 넘게,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그것도 그냥 리모델링이 아니라,
기둥부터 나무, 못 하나까지 모든 걸 새로 다시 짓는다.
그걸 ‘시키넨 센구(式年遷宮)’라고 부른다.
왜일까?
“신을 모시는 집은 늘 새로워야 한다.”
“정성을 다한 새 집에 신을 다시 맞이하겠다.”
이 단순하면서도 고요한 철학이
일본의 질서, 장인정신, 예의범절, 그리고 ‘청결함’의 근본이 아닐까 생각했다.
외궁과 내궁, 그리고 밥 짓는 신
이세 신궁은 두 개의 중심 신궁으로 나뉜다.
외궁(게쿠 外宮): 먹을 것을 책임지는 도요우케 신
내궁(나이쿠 内宮):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
참배도 순서가 있다.
밥 짓는 신에게 먼저 인사하고, 그다음에 태양신에게 가는 것.
“먹고사는 게 먼저다.”
이 단순한 순서 하나에도 일본인의 세계관이 배어 있다.
그건 '신 앞에 서기 전, 기본을 다지라'는 인생의 철학처럼도 느껴졌다.
‘성스러움’이 일상이 되는 나라
돌아오는 길, 생각했다.
왜 일본은 그렇게나 조용히 줄을 서고,
왜 그토록 작은 예절 하나에도 진심을 다할까?
그 답 중 하나가, 이세 신궁에 있었다.
신은 위대한 존재라기보다,
늘 옆에 있고, 그래서 더 조심스러운 존재라는 일본식의 신앙.
그게 ‘신도(神道)’고,
그게 곧 ‘일본인의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