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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May 17. 2021

한 여름 밤의 꿈

왜 모두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가

공연이 끝났다. 지난 2월부터 3개월 넘게 준비했던 공연이 끝났다. 물론 내가 지휘자는 아니었다. 난 그저, 우리 선생님의 어시스턴트로 참여하며 이것저것 배우는 학생일 뿐이었다. 주인공은 선생님, 나는 주인공이 더 빛날 수 있게 도와주는 반사판과도 같은 존재.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내가 빛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나의 노력이 선생님의 음악에, 그러니까 그가 창조해 낼, 아주 정교하고도 섬세한 그 추상세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누군가 학부 졸업하기 전에 이루고 싶은 꿈을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선생님께서 지휘하는 공연을 돕는 것’이라 답했다. 다들 내가 특이한 사람이라고 했다. 무언가에 너무 미쳐있어서, 현실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다 속세의 가치에 눈을 뜨는 날에는 이미 돈을 많이 벌거나 좋은 곳에 취직을 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어져 있을 거라며, 지금이라도 현실을 좀 돌아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현실이 싫다. 돈, 자본주의, 취직, 결혼, 기타 등등의 사회적으로 깊이 뿌리내린 관습과 이념이 자꾸만 기괴하게 느껴진다. 그것보다 소중한 것들이 있을 것만 같다. 그것보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분명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음악’이란 것에 모든 걸 걸고 살아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내 앞에서 100여명의 단원으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만들어가고, 그들을 연주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우리 선생님이라는 사실은,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또는, ‘좋은 곳에 취직을 하고 싶다’와 비교가 안 되는, 소중하고도 아름다운 꿈이라는 걸 이해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해도, 하여튼, 나는 그것이 유일한 꿈이었다.


지난 일주일, 그러니까 5월 10일부터 그 주 금요일까지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 나는 어시스턴트 신분으로 리허설을 볼 수가 있었다. 중간 중간에 쉬는 시간을 빼면, 6시간동안 내 앞에서 음악이 계속 울려 퍼졌다. 그것은 음반이나 LP플레이어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내가 있는 공간을 오직 음악 하나로 가득 메우며, 그것을 연주하는 이들의 숨소리, 활 긋는 소리, 심지어는 몸을 움직이는 소리까지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생생하고도 적나라한 것이었다. 그들의 소리는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완전히 달라졌다. 그의 손끝의 움직임 하나가 변하면, 그들의 음악이 변했다. 그것은 정말이지 마법과도 같았고, 기적이었으며, 나는 그들의 마술 같은 그 무언가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이것이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이라는 게 생각이 나면, 1분 1초가 너무나 소중해서 내 앞에 있는 모든 광경을 눈과 귀에, 그리고 온 몸에 꾹꾹 눌러 담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수만 번 생각했다. 그럴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지만, 이 환상적인 순간들이 영원하게 해 달라고, 정체 모를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기도했다.


하지만 공연은 끝났고, 그러므로 행복한 순간도 끝이 났다. 공연이 끝난  며칠 되지 않은 지금, 나는 행복한 만큼 공허해서 미쳐버릴 지경이다. 행복하거나 공허하거나,  중에 하나만 느낄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지 감정은 공연이 끝나자마자 불행히도 동시에 나를 찾아왔고, 나는 그래서, 속이  느낌이 자꾸 든다. 나라는 껍데기는 여전한데, 속이  비어버린 느낌. 그래서 자꾸만 마음이 아프다. 입은 웃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난다. 분명 나는 꿈을 이뤘고,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임이 분명한데, 다시 2월로, 아니 3월로, 아니 저번주로 돌아가고 싶다. 저번주 월요일부터 금요일,  5 사이에서 평생 살아가고 싶다. 어른이 되지 못한다 해도 상관이 없다. 평생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해도 상관이 없다. 그렇게  수만 있다면,  5일이라는 시간동안 영원히 매일 밤을 새며 일만  대도, 견뎌낼  있을 것만 같다.


한 여름 밤의 꿈. 일장춘몽. 행복했던 순간은 왜 모두 꿈으로만 존재하는가. 왜 모두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가. 오늘은 욕조에 따듯한 물을 가득 받아 몸을 푹 담갔다. 한 손으로는 핸드폰에 담긴 지난 한 주간의 사진을 보며, 다른 한 손으로는 전자담배를 피우며 오래간만의 여유를 즐겼다. 문득, 지난 추억이 담배연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 한명에 깊이 스며들었다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되어 사라지는 것이 마치, 내가 그토록 영원을 바랐던, 하지만 결코 영원할 수 없는 그 순간들과도 같다.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결국 사라졌고, 나는 그것이 남긴 연기마저 희미해져 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에 눈물만 흘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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