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박노해 #시 #일침을 가하다 #추모 #개혁 #더 나은 세상으로
아침 산책 길에서 벌침에 쏘였다
내 뺨에 침을 꽂고 날아간 벌은
잠시 후 비틀거리다 허무하게 죽어갔다
벌은 나에게 왜 그리 한 걸까
실수로 자기 집을 밟은 적인 나를
죽이지도 쓰러뜨리지도 못하면서
일생의 단 한 방, 목숨의 침을 쏘고
왜 기꺼이 죽어가기를 각오한 걸까
나는 점점 부어오르는 뺨의 통증을 느끼며
생각에 잠겨 산길을 내려온다
나 또한 우리 삶을 망치는 것들에 맞서
적의 심장을 찌르는 비수가 되어
기꺼이 죽기를 각오한 날들이 있었다
단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뛰어든 나는
적들에게 겨우 벌침 한 방 정도였을까
하지만 나는 뜨거운 통증과 함께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내가 벌침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행여 벌집을 건드리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음을
만일 그 작은 벌들이 한꺼번에 달려든다면
나도 목숨 건 그들과 함께 죽어갈 수 있음을
봉기라는 것!
벌떼처럼 일어나 달려든다는 것
아주 작은 최후의 무기인 벌침을 품고 일어서
저 거대한 구조악의 실체를 쏘아버린다는 것
시대가 변하고 모순이 변하고 적 또한 변해도
저들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단 하나는
목숨 걸고 달려드는 작은 자들의 봉기,
무장봉기라는 것
나도 그곳에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