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젠 Jun 26. 2024

가루와 뻑뻑함의 경계, 오일파스텔

글로 배우는 그림 그리기

성인이 되어 미술과 담을 쌓은 사람이라도 살면서 크레파스는 한번쯤 손에 쥐어봤을 것이다. 


육각형 모양의 알록달록한 크레파스는 어린 시절 필수 그림재료였다. 유치원생 때, 어린이 미술학원에서 선생님이 8절 스케치북에 정육면체를 그리시고 따라서 그려보라고 하셨다. 남색 크레파스로 원래 형태보다 더 입체적이면서 형태를 알 수 없는 육면체를 그려냈던 것이 크레파스에 대한 최초 기억이다.


성인이 되면서 크레파스라는 재료와 점점 멀어져갔다. 색연필처럼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재료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가끔 보이는 크레파스는 다이소 미술 코너에서 파는 어린이용이 전부였다. 


3년 전 우연히 SNS에서 크레파스와 비슷한 (소프트)오일파스텔이라는 재료를 사용해 귀여운 일러스트를 그리는 작가님을 발견하면서 오일파스텔에 대해 알게 되었다. 호기심에 신청한 원데이클래스가 재미있어서 2개월 동안 서울에서 인천까지 수업을 들으러 갔을 정도로 오일파스텔 매력에 빠져들었다.

최근에 구매한 문교 오일파스텔 120 색 중 일부

초보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미술재료를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오일파스텔을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다. 


오일파스텔은 가루파스텔과 크레파스의 중간 질감을 가진 그림재료이다. 폴폴 날리는 가루파스텔보다는 무겁고, 뻑뻑한 크레파스보다는 가벼운 오일파스텔은 종이에 부드럽게 칠해지면서 블렌딩도 잘되고, 질감을 살려 유화처럼 꾸덕하게 그릴 수 있다.


2023년 3월부터 1년간 오일파스텔로 꽃 그리기 챌린지를 참여했는데(6월은 참가자 모두 사정이 있어 한 달 쉬었다), 1일 1그림이 규칙이라 손을 푼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참여할 수 있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자리에 앉는 것 자체가 힘들 때도 있었고, 여행 때문에 집을 떠났다가 루틴이 깨져 그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슥슥 선만 그려도 그럴듯한 작품이 나오는 오일파스텔 덕분에 이런 슬럼프는 단 몇 분 만에 극복할 수 있었다.

챌린지 초반 그렸던 작품들


글을 쓰다가 문득 궁금해져 ‘오일파스텔’과 ‘크레파스’를 검색해보았다. 

크레파스라는 용어 자체는 일본 미술업체의 등록상표명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사용하는 길쭉한 크레용과 다르게 크레파스는 안료에 왁스를 더한 후 오일까지 더해져 색이 잘 섞이고 꾸덕한 질감이 나오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크레파스가 보통명사화되어 ‘크레용’이라는 단어와 혼용되고 있었다. 

크레파스의 정식 영어 명칭이 바로 오일파스텔(또는 왁스 오일 크레용)인데, 성인이 되어 만난 ‘오일파스텔’이 익숙했던 이유는 어릴 때부터 이름과 성분이 같은 ‘크레파스’를 사용해왔기 때문이었다. 


정리하자면, 어릴 때 사용한 ‘크레파스’는 왁스 함량이 더 높아 단단하고, 성인이 되어 알게 된 ‘오일파스텔’은 오일 함량이 높아 부드럽다는 차이가 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오일파스텔에 호기심이 조금 생겼다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시작해보길 추천한다. 

재료를 구매하기 전에 나처럼 원데이클래스로 먼저 접해봐도 좋다. 나의 첫 오일파스텔은 문교 소프트오일파스텔 72색인데,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이 가능해 애용하고 있다. 주로 쓰는 색상은 낱개로도 구매할 수 있다.


도서관에서 오일파스텔 드로잉책을 한 권 빌려 따라서 그려보자. 오일파스텔과 드로잉책 한 권만 있다면 올 한 해를 다채롭게 보낼 수 있는 새로운 취미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올해는 A4사이즈 캔버스 10개에 직접 찍은 사진을 오일파스텔로 그리는 것이 목표이다. 그림이 완성되면 다음해 달력으로 제작하고 싶다. 


3년 전 새로운 취미를 찾다가 가루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오일파스텔 드로잉이었는데, 올해도 차근차근 부드럽게 쌓아서 뻑뻑하고 단단한 내 실력으로 만드는 여정이 계속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가깝고도 먼 소재, 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