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밀 Oct 06. 2024

[세상의 수많은 ‘진짜 김작가’]

마음의 기본값을 마인드맵으로 표현한다면

그리 크진 않지만 그리 작지도 않은

부끄러움을 매번 그려 넣어야 한다.  

라디오 작가로 10년이 넘었지만

누군가 ‘미리작가’가 아닌 ‘김작가’로 부르면

아직까지도 마음의 마지막 페이지에

애써 두꺼운 무언가로 덮어놓은

수치심이 딸깍하고 고개를 든다.

둘 다 작가로 불리지만 이름이 들어가면

친근함이 앞서는 반면

성과 작가가 합쳐지면 아주 유능하고

잘나야만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세상의 수많은 ‘진짜 김작가’들을 오염시키고 있다.

블로그와 SNS을 전전하며

남들이 써놓은 글을 가져와 오프닝으로 갈겨대고,

라디오 프로그램 성격상 원고량이 많지 않은데도

오프닝에서 날짜를 틀리게 적어두거나

퀴즈에 정답을 그대로 노출시켜서

디제이를 바보로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예전에 했던 오프닝을 가져와

‘우라까이’(적당히 외형만 바꿔서 다시 방송하는 것)

조차 않은 채  복사 붙이기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단 한 명, ‘김작가’를 부를 때

부끄러움과 수치심 따위 대신

흐뭇함과 뿌듯함이 살짝 올라올 때가 있는데

바로 아버지다.

아버지께 전화를 드리면 늘 첫마디는 같다.

“으응, 김작가”

‘그래’라는 의미로 ‘응’을 길게 발음하는 ‘으응’ 뒤에  

김작가를 붙이시는데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래도 사람 구실하고 있는 딸자식에 대한

안도감과 한 스푼의 자랑스러움

그리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 중

가장 고귀한 인정받고 사랑받는 느낌.


최근에는 학원을 하면서

‘김원장’이라고 하실 때도 있는데

초보 김원장 보단 오래된 김작가가 듣기 좋다.

방송작가는 주로 글에만 몰두하는 작가와는 달리

게스트를 응대하고,

알맹이가 비어있는 원고에 날짜만 바꿔내는

심의원고를 때마다 제출해야 하고,

매달 상품을 받은 청취자들의 인적사항을 정리하는 등

‘잡가’에 가깝지만 아버지의 목소리로

김작가를 들으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수많은 진짜 김작가들과

한 덩어리로 묶이는 듯하다.


꽤 오래전,

한 달에 한번 발간되는 <방송작가>에

어느 라디오 작가의 인터뷰가 실린 적이 있다.

라디오 작가가 돼서 좋은 점을 물었고

세 가지로 답변을 해놓았는데 무척이나 와닿았다.

라디오 작가로 일하다 보니 밖에서 누구를 만나면

자신이 아는 게 많은 사람이 되어 있더라는 것,

그리고 글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늘 쓰다 보니

남들보다 조금 더 똑똑해지는 것 같고,

마지막으로 엄마가 작가로 일하는 걸

아이가 좋아하는 눈치라는 것이다.

산뜻하고 깔끔한 답변.


그래서 어쩌다 한 번씩

작가로 일하면서 좋은 점을 말해야 할 때가 오면

‘내가 본 인터뷰가 있는데...’ 라며

이 말을 가져오곤 한다.  

남들보다 몇 개 더 아는 것 같고,

점점 똑똑해질 수도 있고,

그런 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고등학생 아들도 좋아하는 것 같아서

가능한 작가를 오래 하고 싶고,

새로 시작한 학원도 정돈이 되면서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

가장 묵직한 순간과 차분한 시간이

일상의 단단함이 되어 준다.   


글쓰기에 대한 작가들의 생각 중

최근에 알게 된 두 작가의 말을 전해본다.

인도 출신의 노작가 살만 루슈디는

미국 뉴욕 야외 강연장에서 피습을 당한다.

연사로 무대로 오른 그는 무슬림 극단주의 청년에게 온 몸을 난도질 당했는데

그가 쓴 소설 <악마의 시>가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불경하게 묘사했다는 게 이유였다.

극적으로 살아났지만 오른쪽 눈은 시력을 잃었다.

고비를 넘긴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기록해야겠어. 이건 나 개인의 일이 아니야.

더 큰 주제(자유)에 대한 사건이지 “

덧붙여 그는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글쓰기는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에 참여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가장 중요한 도구다 ‘


그리고 황보름 작가의 인터뷰.

“ 도마에 팔을 올려놓고 어슷 썰기를 한다는 건

나를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끝까지 망가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나에겐 있다 “

세상의 진짜 작가들.




작가의 이전글 [ 컵뚜껑 하트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