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사라진 반짝이 트리와 캐럴송 풀천지'
25년 12월 24일 수요일 -크리스마스이브-
"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그리고 그 할 수 있는 것을 늘려나가자 "
'두 번 오는 하루는 없다.
반복되는 하루 같지만 같은 날은 단 한 번도 없다.
오늘 하루를 아낌없이 사랑하고
후회 없이 살아가고
즐겁고 날마다 멋진 날.. '
봉화죽향: 나 홀로 붐비는 점심시간 간짜장곱빼기와 군만두 시켜 먹음(아버지와 동생은 춘양 소머리국밥)
수해로 무너진 하천부지 다리와 개울둑 다시 쌓아주시며 큰 인상을 남겼던 '도로 고압세척기'
이번 공사 뒤마무리에도 큰 위력발휘 사진 찍어둔
물건과 우마사다리 필요한 자재 구하러
아버지와 동생 영주행
굴러들어 온 복덩이 '2개월 안된 탄이(수컷)'를 불의의 사고로 보낸 후 허전함을 달래려 대구 15만 원 들여 직접 데려온 '2개월 지나왔던 탄희(암컷)'풀어 기르다
여의치 않아 묶어 기른 지 몇 달이 되었다.
*'블랙탄진돗개 수ㆍ암' 흔한 황ㆍ백구 비해 만나기 힘듦. 처음은 저절로 찾아왔다면 나중은 찾아 나섬.
두 번째 목줄도 이제 한 칸 남아 미리 다음 목줄 2개 준비
'강황ㆍ울금' 실수로 보자기 안 깔고 한 게 과정이 더 좋았다. 생각보다 스테인리스판에 노란 물들이지 않고
빨리 펴 럴수 있고 마를 때 열풍으로 보자기 나풀거리며
뒤집는 현상도 없이 바짝 잘 말랐다.
20kg 한 박스 추가로 해온 편선것도 전과 똑같이(50도
10시간 1차 같으나 두께는 중간 맞춤) 돌려두었다.
다 완성된 거름더미 지난해 쓰고 조금 남은 게 비닐이 벗겨져 있다. 언제 덮어야 할 텐데 손을 못 대니 어제 내린 비를 또 맞히고 말았다.
쇠삽 손잡이 한쪽 진작에 떨어져 나간 거 용접 미루다가
이번 공사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해야 할 일 보일 때 바로 손을 대야 하는데 그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쉽지 않다.
*초기에는 안동사랑상품권을 받았는데 그 규모를 넘게 되어 받아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엔 지각안하리라 약속시간 보다 2시간 반 일찍 나와서 여유 있을 줄 알았더니 점심 먹고 큰 볼일보고 안동사랑상품권 확보하려 돌아다니다
보니 빠듯해졌다.
15프로 할인이 내년부터는 10프로 바뀌었고
26년 1월 2일 전까지는 구할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안동농협은행 본점과 축협 허탕 친 후 나머지는 전화
알아봄. 신협, 새마을금고, 농협지부..)
오후 3시 30분 10분 전 아슬아슬 세이프
경과보고 후 준비해 간 양치질 마무리 하니 "추재현 님 추재현 님 어디 계세요." 안내데스크 양이 나를 찾는다.
나는 처음 뵌 김 과장님 먼저 치료를 받은 아버지와 동생은 구면이다.(가수 성시경 님이 중년이 되었을 때 연상되는 이미지)
임플란트 가격흥정 전 서로 안부물을 때
연말 가기 전에 식사대접 하려 했는데 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못했다는 준비된 이야기를 꺼냈다.
세 자릿수 금액을 두 자릿수로 줄어 금전적 부담은
줄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2층 진료실에서 빠진 치아 잇몸 마취를 받고
3층 수술실로 올라갔다. (3층은 처음/ 여유 있게 혼자 집중케어 VIP치료 임플란트 뿌리 심는 시술)
고급스럽고 깨끗한 인테리어로 채워진 공간 한편
수술방에 들어가 간호사님이 시키는 대로 몸을 맡기며
원장님을 기다림.
오른팔 맥박제고 입주위 입안도 마취약 기운이 돌음.
처음부터 끝까지 아프지 않게 섬세한 정성으로 치료를
해주시는 간호사분들과 원장님
나는 당분간 죽을 먹을지라도 아버지와 동생에겐 크리스마스이브 기분 나는 저녁을 사주고 싶었다.
안동 단골 파스타집 봄날 가득 붐비는 차량에 트럭은
나 혼자 밖에 없었다.
차 댈 자리 없어 옆건물 카페에 양해를 구하며 눌림 크루아상 하나 구입했다.
마스코트 대형 골든레트리버 의젓한 풍채가 탐이 난다.
"괜찮다면 골든레트리버 쓰다듬어보고 사진도 찍고 싶은데 어떨까요?" "그러세요."
안동 비스트로 봄날엔 가족과 연인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런 부산스러운 기다림이 맛에 대한 기대를 더 크게 하였다. (안동의 돈은 여기서 다 버는 것 같다.)
카운터엔 안경을 쓴 부녀지간으로 보이는 두 분이 고객을 응대했는데 아버님은 짬 만나면 딸에게 자리를
맡기고 피자반죽에 치즈 각종토핑 얹어 나무로 때는
보이는 화덕에 구워내셨다. (갓 나온 시카고피자류 치즈가 옴팍 쭈욱 늘어나는 걸 보면 먹고 싶어 진다. )
구경하다 보니 주방에서 주근깨 있는 동남아아가씨가
서툰 한국발음으로 나에게 포장음식을 건넸다.
"포장 주문했지 이거 가져가 양 많이 달래서 줬다."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목살 스테이크는 같았으나 시푸드 필라프 2인분 대신
파스타 2가지가 영수증에 적혀있었고 돈은 1만 원 정도
더 비싸 가져가면 이득이긴 했다.
'어쩐지 양이 많더라니 빨리 발견해 다행이네'
그러나 파스타는 멀리 가져가면 퍼지고 식구들이 원한 건 밥류였기에 차로 뛰어가다 다시 돌아왔다.
(안동라온치과 다닐 때마다 놀란다.
그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진정성 있는 배려에.. '감사합니다. 치아관리 잘해서 늦게 뵐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병원은 안 볼수록 좋은 사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12월 어머니 계셨을 때는
한 달 내내 집 안 밖에 크리스마스트리장식과
때때로 틀어놓는 캐럴송으로 성탄절에 태어난 나를
매일 맛있는 음식과 사랑으로 축하해 주셨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당연했던 12월 시작은 어머니의
아픔으로 그럴 여유가 없었다.
몸과 아픔에 찾은 병원과 연말을 즐기는 사람들의 거리 사이를 지나간다.
크리스마스트리장식을 눈으로 담고 캐럴송을 들으며 기운이 날 때면 항상 웃어주시던 어머니가
보름달이 되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