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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뤼미쌤 Feb 24. 2023

2022학년도를 떠나보내며


학교는 다른 기업이나 심지어 교육청과도 다르게 회계연도가 3월부터 이듬해 2월이다. 그런고로 아직 학교는 2022학년도이고, 2023학년도는 2023년 3월 1일에 시작한다. 이번 겨울 방학에는 꽤나 학교에 많이 나갔다. 이제 어엿한 3년차라 그런지 학교는 꼴도 보기 싫고 발도 들이기 싫고 어딜 가더라도 근처에 지나도 가고 싶지 않던 마음은 예전보다는 많이 가라앉았고, 필요하다면 일을 해야 하고 외부상담사 선생님이 방문해주시는 날은 상담실 관리 및 기록 등을 위하여 출근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러려면 직주근접이 먼저 실현되면 좋겠지만...) 그리고 실제로 방학이라고 해도 해야 할 일은 꽤나 많다. 다음 학년도를 준비해서 많은 교육들(생명존중교육, 또래상담부 교육 등)을 새롭게 신청하거나 대기해야 하고, 2월에 오는 위기청소년 특별지원 같은 공문은 그 때 필요한 아이들을 재빨리 떠올려 연계해주지 않으면 금방 마감된다. 2021학년도에는 매월 하던 상담현황보고를 2022학년도에는 거의 하지 못해서 일년간 보고를 해야 하는데, 아직 하지 않았고... 학업중단숙려제 대상학생등록도 마감했고, 예산을 끝까지 탈탈 털어쓰기 위해 12월 말부터 지출품의만 10개는 족히 올린 것 같다. 또래상담부 동아리 아이들 생활기록부도 기록했고, 이번 겨울에는 국립중앙디딤센터 기관방문도 부장님과 함께 다녀왔다. 올해는 상담부가 교무부와 협조하여 신입생 표준화검사를 신입생 예비소집일날 하게 되어서 그 날도 출근하게 되었다. 이제 해야 하는 일은 여러 위원회 조직, 2023학년도 위클래스 운영 계획 수립, 학업중단숙려제 운영 계획 수립 등등등이 남아 있다. (이건 3월에 해야지ㅎㅎㅎ) 학교 일은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늘어나고 끝도 없고 계속 새로 만들어진다. 2023학년도 예산은 교육복지예산을 포함하여 2022학년도보다도 더 많이 책정받아서 신학년도에도 돈을 많이 쓸 수 있게 (써야 하게, 즉 일이 많게) 되었다. 지금 학교에서는 그래도 관리자 분들이 상담에 대한 필요성이나 장기적 상담 지원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셔서 학교에서 직접 종합심리검사 비용이나 학교방문상담비를 지원하기도 하고, 보호자 상담도 위기학생의 경우 지원한다. 쓰다보니까 느낀 건데 2023학년도에는 위기학생 심리치료비 지원 계획을 위클래스 운영 계획에 포함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말이 점점 횡설수설이 되어가지만, 신학년도가 다가온다는 것은 꽤나 스트레스이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는 것 같다. 심지어 올해는 거의 절반 정도의 선생님들이 정기전보, 명예퇴직, 정년퇴직, (여러) 휴직 등으로 바뀌시게 되어서 상담부는 부장님과 나로 동일한 구성이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부서는 구성원이 모두 새롭게 바뀌고 업무분장도 바뀌면서 좀 어색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한다. 마음을 나누며 위로받기도 하고 의지하기도 했던 많은 선생님들이 떠나셔서 조금은 걱정스럽기도 하고 허하기도 하다. 같은 공간이지만 기운이 달라진 느낌...? 공립 학교의 장점이자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나도 내년 즈음에는 옮겨야 할테니, 적응해야겠지.



2021년의 마지막 날 썼던 블로그 글을 보면서 2022학년도에 좀 더 나아진 점이 무엇일지 정리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 온앤오프가 (아직 멀었지만) 첫 해보다는 조금 더 잘 되었던 것 같다. 온앤 오프에 도움이 되었던 것은 업무폰은 학교에서만 확인하고 퇴근 시 학교에 두고 갔던 것, 사적인 나의 영역이 늘어난 것(데이트, 여행 등), 1년간 필라테스를 꾸준히 한 것, 친구들을 만나도 학교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는 것..?


2. 변경되는 수많은 일정들에 대해서 그냥 일이니까 감정을 배제하고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좀 더 나아졌다. 예전에는 왜 자꾸 나한테 이러지!!!!빼앰!!!하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가끔은 여전히 그러지만 대부분) 그냥 아, 그렇군. 그러면 전화해서 문의해보고 바꾸면 되지 하고 마는...?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싶었던 나의 완벽주의를 조금은 내려놓거나 체념한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그래도 일에 조금 적응한건가)


3. 학생들을 상담할 때 긴장하는 정도가 좀 더 내려갔다. 아직 첫회기나 접수면접에서는 팅글링이 있긴 하지만, 첫해에 몸 한 번 움직이지 못하고 뻣뻣하게 긴장해서 아이들을 만났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4. 근무시간 내에 일을 끝내고 정시퇴근을 할 수 있다. 일이 몰리는 시즌에는 어떻게 해도 다 해내는 게 불가하지만 그 외에는 말이다... 상담실에 찾아오는 선생님들을 응대 및 환대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짧다면 짧은 근무시간 내에 내 일을 다 하지 못해서 초과근무를 할 때가 많았다. 물론 지금도 가끔은 그럴 때가 있지만, 이를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일이 많아 바쁘다면 응대를 제대로 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것이 실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다들 매한가지로 정신없고 바쁘니까. 아무리 관리자여도 내 근무시간은 내가 일하는 시간이고, 내가 바쁘면 시간을 내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5. 상담'교사'라는 점을 조금은 수용하고 계속해서 교사의 삶을 사는 내 모습이 조금은 그려지게 되었다. 교사라는 직업이 안 맞는 것 같고 이런 전쟁터에서 어떻게 평생을 살지?라는 막막함에 그냥 절레절레하고 말았었는데, 삼십여년, 사십년가깝게 교직생활을 하시고 정년퇴임하시는 선생님들을 뵙고 또 감사히 떠나보내는 파티를 준비하면서 단지 그냥 그 세월을 견디고 버텨내셨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존경스럽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기는 자가 승자가 아니라 끝까지 버티는 자가 승자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워낙 험난하고 거친 곳이니까 말이다.


6. 인간관계에서 좀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직장에서는 잘 못하지만) 가깝고 소중한 친구나 연인에게 특히 서운하고 섭섭한 점을 터놓고 말하고 같이 울기도 하면서 풀고 넘어가는 작고 큰 에피소드들을 경험했다. 고맙고 아낀다는 긍정적인 내용은 잘만 말하면서도 나는 내가 서운하고 힘들었던 점을 상대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것은 잘하지 못하고 대부분 참는 편에 속했다. 그런데 이렇게 참는 것이 결국에는 너와 나에게 모두 해가 된다는 것을 첫 해 즈음 머리로 알게 되었고, 둘째 해에는 작고 크게 직접 뱉어보고 수용받아보는 경험을 하면서 참지 않고 감정적으로 터뜨리지 않고 울먹거리면서라도 그때그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도 내 소중한 사람들은 진지하게 내 마음을 들어주고 서로 맞추어가면서 곁에 머물러준다는 것을 알았다. (이걸 학교에서도 할 수 있게 되면 좋겠군...)


7. 집에 와서는 말을 줄이고 잠을 자거나 누워서 쉬는 시간들을 확보했다. 나를 걱정하는 어머니께 있었던 일들을 늘 이야기해드려야 한다는 모종의 셀프압박감이 있어서 집에 와서도 애를 써서 엄마와 이야기했었다면,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지치면 지친대로 기운이 나면 나는대로,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되었다. 엄마에게도 솔직하게 '오늘은 힘들어서 쉬어야겠다'고 이야기하고 방에 들어가기도 하고, 엄마가 볼멘소리로 '맨날 피곤하대'라고 해도 폭발하지 않고 '에이 어쩔 수 없지 주말에는 같이 시간을 보내야지'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8. 첫 해에는 내가 선생님이라는 정체성이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아져서 그런지 학생들이 너무 어색하고 몸은 어른인데 생각은 너무 어린 게 이해가 안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아주 조금은 애들이 애들로 보이고 가끔은 귀여워보이기도 한다. 고1로 만난 아이들이 이제 고3이 되니 나도 기분이 묘하게 이상하고, 나도 모르게 오며 가며 마주치면서 정이 든건지 뭔지.


9.  첫 해보다는 책을 꾸준히 조금씩 더 많이 읽었고, 경제에도 관심이란 게 생겨서 찾아도 보고 공부도 해보고 있다. 상담이라는 분야에만 한정되면 질리기도 하고 여전히 시야가 좁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넓으니까,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직종에 일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 것도 나의 생각이 갇히지 않는 데 도움을 줄 것 같다.




2022학년도에도 여전히 힘들었고 아쉬웠던 점은 무엇이 있을까.


1. 단연코 힘들었던 것은 선을 넘고 인격적으로 대우해주지 않는 직장 내 관계. 보이지 않는 권력구조 속에서 어리고 경력이 낮은 교사라는 이유로 만만하게 대해지고 함부로 하는 말을 듣고도 무서운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것. 그럼에도 잘 대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말을 내뱉는 이유를 이해해보려고 애를 쓰면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것.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존중할 필요는 없다. 복수할 필요는 더더군다나 없지만, 그냥 그런 사람들은 무시할 필요가 있다. 괜히 나서서 이용당하고 착취당할 필요가 없다. 부장님 말대로 인연을 맺지 않는 편이 낫다. 좋게든 나쁘게든 상관없이. 나르시시스트는 피하는 것이 가장 좋고 원하는 반응해주지 말고 무관심하고 무반응하기.


2. 상담량 조절을 하지 못해서 과부하에 걸렸던 것. 나도 사람이고, 상담도 수업처럼 나만의 룰과 시수가 필요하다. 하루 세건, 일주일에 15건을 넘지 않게 조절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아이들에게도 무해하고 유익한 상담시간을 제공할 수 있다. 또 행정업무가 너무 많기 때문에 행정업무를 집중해서 처리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금요일 오전이라든지, 월요일 오전처럼. 다른 부장님들이 행정업무가 많은 경우 수업시수 경감을 받듯이.


3. 상담만으로는 결코 청소년 아이들의 뿌리깊은 감정의 골과 가정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 누군가는 결국 자퇴하고 퇴학처분을 받고 가출을 하고 여전히 울면서 지내고 있지만, 그 모든 인생을 내가 책임져줄 수는 없다.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너무 속상하고 미안해서 많이도 울었다. 그럼에도 내 위치와 역할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해주려고 노력했다. 앞으로도 그래봐야지.


4. 많이 울고 가시는 어머니들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학부모상담은 여전히 어렵다. 2022학년도에는 부장님이 함께 또 따로 학부모 상담을 감당해주셔서 많이도 귀동냥을 했고 보고 배우는 점들이 있었던 것 같다. 아무리 듣고 봐도 당장 해보라고 하면 못하겠지만... 어머님들께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나부터 전문가라는 마음이 공고해야 할텐데 아직 나의 능력과 경력에 대한 확신이나 자부심이 부족해서 그런걸까... 아직 어려워 학부모상담...


5. 멀리 출퇴근하는 건 언제나 쉽지 않다. 그래도 첫 해보다는 나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지치고 피곤하고 힘든 일이다. 한시간 반은 잡고 가야 하니까... 30분 내로 출근하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러면 아침에도 무언가를 해볼 수 있을텐데... 지금은 5시 반에 일어나도 그저 씻고 허겁지겁 나가야 한다. 감사일기 쓰기, 아침 운동하기, 아침밥먹기 같은 거,, 나도 모닝 루틴같은 거 유지해보고 싶다.


6. 몸과 마음의 건강이 많이 상했다. 중간에 급하게 상담도 받았고 출근하는 지옥철에서 공황발작 같은 증세가 나타나기도 했고 계속 이유없이 열이 나고 연말에는 굴을 잘못 먹어서 탈이 심하게 나서 내과도 많이 다니고 약도 많이 먹었다. 약을 먹어도 안 나아서 한의원도 갔는데 울화통이라고 하시며 가루약도 지어먹고 침도 맞았다. 내 건강부터 지켜야 뭐든 하지,,,




정리하다보니까 또 많네. 2023학년도에는 다르게 해보고 싶은 건 뭐가 있을까.


1. 출근하는 시간에 무언가 공부하거나 읽어보기. 지금은 경제용어 보는 걸 하고 있는데, 매일 1시간은  차곡차곡 쌓이면 크다!


2. 올해가 지금 학교에서 마지막 해가 될 수 있으니 서류정리나 인수인계 염두에 두고 일하기


3. 업무할 때나 상담할 때 오만가지 주변 상황에 휘둘리지 말고 일단은 집중해서 내 일하기


4. 또래상담동아리가 잘 굴러가게 좀 더 신경써보기


5. 필라테스 주 2-3회 꾸준히 지키기 (코어힘 중요해)


6. 블로그(브런치) 한달에 한 번은 쓰고 생각 기록하기


7. 책도 한 달에 한권은 꼭 읽고 기록하기


8. 아침-밤에 감사일기 쓰고, 위클리 다이어리도 꾸준히 기록하기




잘은 몰라도 3년차는 덜 울고 덜 속상하기를. 아이들을 지킬 수 있기를. 내 몸과 마음도 건강할 수 있기를. 적당히 충분히 살아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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