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벌써 4월의 마지막날이다. 2024. 3. 1.자로 교육청 Wee센터에 발령을 받고 휘몰아치듯 당장 해야하는 업무들을 숙지하고 해내느라 두달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무엇보다 집이랑 더 멀어져서 편도 1시간 40분(?)가량을 통근(2시간 전 출발)하는데 근무시간은 더 길어지다보니(기본 9to6) 퇴근하고 나서 무엇이든지간에 다른 것을 할 체력적, 정신적 여유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하던 필라테스도 홀딩하고 개인적 약속도 거의 못잡고 4월에는 3주내내 개도 안걸린다는 오뉴월 감기몸살에 걸려서 골골 앓고 말았다. 이비인후과에 가서 7알인가씩 약을 세게 처방받아서 먹었는데도 낫질 않아서 병원을 바꿨더니 목구멍에 구내염이 났다고 했고 머지 않아 코감기로 이어져서 코가 막히고 귀가 막히고(더해서 기가 막히고ㅋㅋ) 머리가 욱신거리고 몽롱해서 도무지 무엇에도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어제 하루 병가까지 써가며 쉬고나서 이제야 거의 나아가는 상태가 되었다. 요약하자면 현재의 나는 전보 후 이동증후군(소위 센터병)을 처음 겪으며 초반의 혹독한 신체적 적응기를 거치는 중이다. 그럼에도 3월은 이동직후니까 도저히 짬이 안난다고 스스로 이유를 대며 넘긴다해도 4월은 이대로 넘겨버리기 아쉬워 주섬주섬 폰을 열어 브런치에 들어와보게 되었다. 글을 매주, 매일처럼 꾸준히 올리지 못하는데도 계속 나의 글을 찾고 구독을 눌러주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은 내심 나에게 마음의 빚이자 기록을 남길 동기와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 같다. 오늘은 위(Wee) 센터 경험보다도 나 개인의 삶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처음에 들어가는 에너지와 품이 남들 이상으로 더 많이 드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초1, 중1, 고1, 대1, 교사 1년차, 지금 전보 후 1년차를 다 생각해봐도 상당히 애썼고 힘들었고 다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매번 아팠을 것이다. 처음 1년차에는 주어진 공부나 일도 잘하고 싶고, 폐끼치지 않으면서 이왕이면 내 역할(1인분)만큼 혹은 그이상으로 떳떳하게 해내서 인정받고 싶고, 조직 내 인간관계 속에서 소속되고 사랑받으면서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싶은 조바심도 나면서 더 과하게 노력하고 일도 벌리고 소속(동아리, 동호회, 사적 모임 등)도 늘리면서 그렇게 지내왔던 것 같다. 그렇게 확장된 1년차를 보낸 후, 남은 2~3년은 약간의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여 첫 해에 비해서는 계속 인풋을 투입하기보다는 올라온 상태를 유지하고 지속 가능하도록 가지치기를 하고 줄여가면서 관리하는 차원으로 쭉 기세가 이어졌던 것 같다. 돌아보니 기억이 비교적 더 선명한 중학교때부터 고등학교, 대학교, 교직생활이 지금까지는 대부분 3년의 텀으로 굴러왔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교 때도 3학년 때 아주 잠시지만 휴학하고 멈췄다가 다시 에너지를 쏟아부었고, 전보도 3년을 채우고 이동하게 되었으니 직업생활까지도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네 하면서 신기함을 느끼게 되었다. 내 인생을 3년 주기로 요약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써보기로 했다.
2010-2012 중학교 3년
2013-2016 고등학교 3년
2016-2018 상반기 대학교 3년(인생에 큰 타격을 준 상실경험)
2018 하반기-2020 대학교 3~4년차(진로 및 전공고민) + 임용고시 준비(학기 병행)
2021-2023 첫 학교 위(Wee) 클래스 교직생활 3년
2024~ 첫 교육청 위(Wee) 센터 생활 3년 중 1년차 겪는 중
상담에서 마음이 힘든 아이들에게 말로도 글로도 표현하지 않고 두리뭉실하게 머릿속으로만 상상하고 고민하면 막연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불안감을 증폭시킬 수 밖에 없다고 말해주면서, 고민이 많으면 지금처럼 선생님한테 와서 같이 이야기해봐도 좋고 혼자 글이나 메모로 적어보아도 좋으니 꼭 표현해보자고 도닥이곤 한다. 그래서 불안하고 겁이 나는 지금의 나에게도 적용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인생은 예측불가 변화무쌍하므로 계획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지금까지의 인생곡선 뒤에 덧붙여서 나의 가상의(?) 인생계획을 적어보려고 한다.
2010-2012 중학교 3년
2013-2016 고등학교 3년
2016-2018 상반기 대학교 3년(인생에 큰 타격을 준 상실경험)
2018 하반기-2020 대학교 3~4년차(진로 및 전공고민) + 임용고시 준비(학기 병행)
2021-2023 첫 학교 위(Wee) 클래스 교직생활 3년
2024-2026 첫 교육청 위(Wee) 센터 생활 3년
2025-2027 결혼준비, 신혼, 허리띠졸라매고 저축하고 이자를 갚으며 미래를 준비하는 시기
*2026 말-2027 초) 전보가 결정되는 시기인데, 아마도 두 번째 학교 위(Wee) 클래스 교직생활(센터 갔다 왔으니 이제는 5년 주기 가능) 시작하거나 출산과 육아 가능성 있어 육아휴직을 하게 될수도 있는 시점
2027-2034 두번째 위(Wee) 클래스 교직생활 5년 시작 후 휴직/ 휴직 후 5년 시작
2035-2039 세번째 위(Wee) 클래스 교직생활 5년
그 뒤 정년...까지 갈 수 있을까..잘 모르겠지만..계속 한다고 하면...
2040-2044 네번째 위(Wee) 클래스 교직생활 5년
2045-2049 다섯번째 위(Wee) 클래스 교직생활 5년
2050-2054 여섯번째 위(Wee) 클래스 교직생활 5년
2055-2059 일곱번째 위(Wee) 클래스 교직생활 5년
중간에 추가 휴직가능성(연수휴직 최대3년, 육아휴직 아이당 최대 3년, 자율연수휴직 최대 1년-10년 이상의 재직기간 등등)이 있으니까, 대충 정년까지 일한다고 할 때 최대 7개학교(어쩌면 6개학교)를 돌게 될 가능성이 있음. 하나 갔으니 6(5)개 더 남았다...ㅋㅋㅋ(막막)
쓰면서 인생을 그려보니 정말 인생은 어쩌면 빨리 지나갈 것이고 짧다면 짧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그램 제목처럼 '어쩌다 어른'이 되었지만, 이제는 어른으로서 책임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 삶이 앞에 펼쳐져 있다. 자기 전에 유튜브 숏츠를 보다가 요즘 어린이들이 다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한다는 내용을 보고 마음이 좀 아련해졌다. 내가 어렸을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요!"라고 외쳤던 것 같은데, 지금의 아이들에게 내가 이십대 중반에서부터 느꼈던 그런 두려움과 무기력감이 왜 벌써 드리워지게 된 것인지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괜시리 씁쓸해졌다. 학교에서도 "평생 학생이고 싶어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어른이 되면 책임질 일만 남았고 그 어깨가 너무 무겁고 힘들 것 같아요. 앞으로 더 힘들어지면 힘들어졌지 좋아질 것 같지가 않아요"라는 아이의 말에 확신을 가지고 "무조건 더 좋아질거야!"라고 말해줄 수가 없었다. 그저 "지금보다 더 책임질 일도 많아지고 삶의 무게가 무거워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감당할 가치가 있게 해주는 행복과 감사의 순간들이 있을거야. 그리고 그만큼 너도 더 성장해있을거야."라고 말해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에게 말해주면서 동시에 그 말은 나의 귀에도 들려왔고 한동안은 마음에 남았다. 버라이어티하고 다이나믹하고 선택의 연속이었던 십대와 이십대를 지나고 나면 남은 어른으로서의 인생은 단조로울지라도 책임지고 감당하고 인내하며 삶의 무게를 견뎌내는 것이고, 만족스러운 인생이라 함은 그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잃지 않고 기억하고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생하기 싫고 힘들기 싫고 무섭고 겁이 나는 마음은 나 역시도 여전하지만, 결혼하고 부부가 되어 아이를 낳아 가족을 꾸리고 싶은 사람이라는 마음만큼은 확실해졌기에 그렇다면 뒤로 숨지 말고 내가 결정의 주체가 되어 결혼이든 출산이든 결정하고 힘든 과정과 결과를 기꺼이 책임져야 하겠다는 강한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힘든 과정 속에서 서로에게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를 자주 속삭여주고 안아줄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 함께 헤쳐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덧붙여서 내가 나일 수 있게 숨 쉴 틈이 되어주는 취미 또는 소일거리(?)를 만들어가면 그로써 충분히 좋은 삶(good enough life)이 되지 않을까. 끝날 것같지 않게 고통스럽고 혼란스럽던 나의 이십대가 저물어가고 있고, 수많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선 상에서 불안했던 시기 역시 지나가고 있다. 내가 썼던 이 글을 언제 다시 읽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이 힘든 시기라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마음에 간직한 채 잘 견뎌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예전에 해본 TCI 검사 결과의 '성격'부분에서 나는 자율성 점수가 중간(평균보다 약간 아래?) 정도이고 연대감 점수가 매우 높은 정도(95점)로 나왔었다. 자율성의 하위척도들을 살펴보았을 때 책임감과 목적의식 척도가 평균보다 낮은 편이었는데 해석해주시는 상담선생님께서 내게 "선생님은 누구보다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또 결과를 성취해내며 잘하고 인정받아온 사람인데 이 부분은 왜 그렇다고 생각하시나요?"라고 되려 물어보셨던 질문이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내 마음 안에 잔잔히 맴돌아왔었다. 이번 기회에 이렇게 나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어렴풋이나마 '직면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두려움'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모든 선택과 결정에는 기회비용이 발생하고, 모든 결정은 양날의 검이자 양면의 종이라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한다. 그것이 삶의 진리이자 원리인 것인데, 이십대의 나는 완벽히 좋은 결정을 내리는 완벽하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검의 한 날과 종이의 한 면만을 취사선택해서 취하고 싶은 욕심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계속 고민하면서 결정의 순간에는 자꾸만 숨어버리고 싶고 피하고 싶은 불안함이 발동한다는 것을, 나에게 그런 부분과 모습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마주하게 되었다. 직업을 결정하는 순간에서도, 내가 내린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불안해하고 전전긍긍하면서 따져보고 고민하면서도 결정의 순간을 미루고 피하고 애써 모른 척하다가 끝끝내 결정시일이 다가왔을 때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사회초년생이 되어 겪는 첫 교직생활에서 오는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 받아들이기가 참으로 힘들었던 것 같다. 자꾸만 외부로 귀인을 돌려서, 내가 원해서 한 게 아니야, 어쩔 수 없이 이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 하면서 원망하고 탓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다스리기가 참 힘들었다. 그래서 위(Wee) 센터로의 전보 결정 역시도 쉽지 않았지만, 이 결정 이후로는 내가 나서서 결정하고 감당하는 경험을 많이 해나가야 더 성숙해질 수 있겠구나 하고 느끼고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야 안 그래도 많지 않은 나의 에너지와 활력이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내적 갈등으로 소모되는 부분을 줄일 수 있을테고, 선택과 결정에 따른 자연적 결과를 편안히 수용하고 용기있게 직면하며 나아가서 내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테니까. 아이들에게 TCI검사 결과를 설명할 때에 기질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고 성격은 후천적으로 형성되어가는 것이라서 지금도 성격은 개선하고 보완해갈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나에게 적용해보니까 또 새삼스럽게 맞는 말이네 하면서 웃음이 났다. 내가 하는 말들을 전부 제대로 나한테 적용할 수만 있어도 훨씬 나아질텐데 중이 제머리 못깎는다고 그것이 참으로 쉽지 않다. 아 성숙한 인간이 되는 길은 이다지도 험난하단 말인가. 생각해보면,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은 남좋자고 보다도, 나 좋자고도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성숙해지면 내 마음이 평온한 것이니, 내가 제일 좋은 것 아닌가! 그러나 그 과정은 참으로 어렵고 지난하고도 지치는 것 같다. 인생은 수행이고 고통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ㅎㅎ
최근에 읽고 있는 책에 나온 구절 중 마음에 와 닿은 부분을 나누면서 이번 글은 마무리해보려고 한다.
[...] 그러니 더 이상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당당해지고 싶다면 '어쩔 수 없어'라는 말을 너무 쉽게 내뱉지 마라. 어쩔 수 없이 살게 되면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고 우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정말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란 극히 드물다. 정말 하기 싫으면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은, 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 직장을 그만두지 않은 것은 모두 내가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든 내가 선택했다고 생각하면 삶의 통제권을 내가 갖는 것이 된다. 내가 그렇게 하도록 허락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너무 많은 어른들을 위한 심리학(김혜남 저, 메이븐) pp.75-76.
앞으로는 슬기로운 위(Wee) 센터 생활을 해나가면서 떠오르는 생각도 올려볼 수 있도록 노력해볼 마음이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