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연방법원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애플의 인앱결제 강제가 반경쟁 행위라고 판결했습니다. 인기 게임 '포트나이트' 개발사인 에픽게임즈와의 소송에서 애플 앱스토어의 인앱결제 강제 정책이 된서리를 맞은 것이죠.
그러나 애플은 에픽게임즈가 '애플 앱스토어 운영이 반독점법 위반'이라며 소송한 핵심 내용에 있어서는 웃음을 지었습니다. 법원이 에픽게임즈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법원은 애플이 시장에서 혁신을 저해하지 않았고, 진입장벽을 세우는 등 독점적 행위를 한 요소를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애플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판결을 내린 이본 곤잘레스 로저스 판사는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반독점법에 비춰봤을 때 애플이 독점기업이라고 결론 내릴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그는 “성공은 불법이 아니다”고 덧붙였습니다.
성공은 불법이 아니다…그러나 돈 앞에 사악해 지는 혁신기업으로 '낙인'
판사가 설명한 것처럼 애플이 승소한 이유는 애플이 앱스토어 관련 사업을 진행하면서 위법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실제로 애플은 '아이폰'이라는 스마트폰을 만들어 냈고, 애플 발(發) 스마트폰 혁신은 세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지금의 모바일 시대는 애플이 그 틀을 닦아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앱스토어 또한 앱 개발사의 유통 혁신에서 비롯된 현재의 앱 생태계를 만들어 낸 기반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재의 모든 것을 가능케 한 애플의 성공은 불법이 아니며, 성공에 대한 막대한 이익 창출 또한 응당한 기업 활동의 결과물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공은 불법이 아닙니다.
애플은 아이폰과 iOS를 통해 스마트폰 시대(모바일 시대)를 열었고, 앱스토어를 통해 앱마켓 생태계를 구축했습니다. 그 이후 구글이 안드로이드폰 진영을 구축해 시장의 파이를 키웠고, 혁신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앱마켓 시장 초기에는, 앱 개발사들이 자사 앱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데 있어 애플과 구글 앱마켓 수수료 30%를 적절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심지어 효과 대비 저렴하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오기도 했었죠.
그러나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중소 개발사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앱마켓 수수료 30%는 너무 비싼 '통행료'가 됐습니다. 소비자와 개발사의 성토가 이어지면서 애플과 구글의 앱스토어 정책은 반독점 이슈의 중심에 섰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31일 한국이 세계 최초로 애플과 구글의 인앱결제 강제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어서 애플의 본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도 인앱결제 강제에 한해서, 이것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리기에 이르렀습니다.
미국 법원은 애플의 인앱결제 강제가 반경쟁 행위라고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향후 90일 내 애플이 외부 결제용 링크를 앱 내에 포함하는 것을 허용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애플은 이번 결정으로 막대한 재정적 손실을 입게 됐습니다. (애플 관련 판결에 따라 구글 역시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되겠죠.)
앱스토어 내 결제가 아닌 외부 링크 결제를 소비자가 이용할 경우, 애플의 수수료 수익이 줄어듭니다.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상당한 수준이 될 것입니다. 지난해 기준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발생한 인앱결제 금액 규모는 무려 853억달러(약 100조원)입니다. 앱 개발사들은 자체 결제 시스템을 통해 앱마켓 보다 저렴한 가격정책을 내놓을 것이며, 이에 대해 애플과 구글 역시 수수료를 줄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게 됩니다.
소송에서는 애플이 이겼지만, 인앱결제 관련 판결로 막대한 돈을 잃게 됐습니다. 기업에 대한 인식 또한 돈 밖에 모르는 '수전노'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이죠.
이와 관련해서 법원은 판결문에서 "애플의 외부 결제 차단은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정보를 숨기고 불법적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억압하는 것"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아직 애플과 에픽게임즈의 소송전이 결말이 난 것은 아닙니다. 재판 후에 애플과 에픽게임즈 모두 항소의 뜻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에픽게임즈가 항소한 것은 법원 판결에서 애플과의 계약 위반으로 자체적으로 벌어들인 수익의 일부 400만달러를 손해 배상하라는 판결에 반박해서 입니다. 또한 애플이 반독점법 위반이라는 자사(에픽게임즈)의 주장을 굽힐 생각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애플의 항소는 기업 비즈니스 논리에서는 당연한 수순이지만, 적어도 소비자들에게는 '사악한 기업'이라 이미지를 인식시키키에 충분했습니다. 한국을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애플과 구글에 대해 '불공정하고 불합리하다'라는 지적이 거센 상황에서도 이익만을 쫓고 있다는 이미지를 굳힌 것이죠. 아이러니하게도 애플과 구글이 강공책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사실상의 독점적 서비스'이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합니다.
한국서 '애플 AS 겨냥한 소비자 수리권 보장법 발의...애플에 또 일침
이러한 가운데, 한국에서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 외에 애플의 '반 소비자 친화적인' 정책에 제동을 건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바로 악명이 높기로 유명한 애플 AS 정책과 관련된 법안입니다.
국회 김상희 부의장이 국내 휴대폰 수리권을 보장하는 일명 ‘소비자 수리권 보장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13일 발의했습니다. 애플의 AS 제한 관행이 전세계적으로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국회가 애플의 AS에 대해 법적인 제재를 또 한번 앞서서 추진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발의된 법안은 휴대폰 제조사가 ▲합리적 이유 없이 휴대폰 수리에 필요한 부품, 장비 등의 공급·판매를 거절하거나 지연하는 행위 ▲휴대폰 수리를 제한하는 소프트웨어 등을 설치·운용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국내의 경우, 이 법안에 적용되는 사업자는 애플 밖에 없는 상황이라 '애플을 겨냥한 규제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해당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 처럼 글로벌 파급력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이와 같은 입법 움직임이 진행 중이기도 하죠.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애플의 폐쇄적인 AS 정책에 제동을 걸은 바 있습니다. 미국의 소비자가 자가 수리 또는 제3자를 통해 수리하는 경우 제조업자가 소비자에게 AS 제공을 거부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미국 경제의 경쟁 촉진을 위한 행정명령'을 발표했습니다.
애플은 조만간 차세대 스마트폰인 '아이폰13' 발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스마트폰이자, 여전히 글로벌 빅테크의 방향성을 좌지우지하는 애플의 차세대 전략폰이 출시되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아이폰13은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겠죠.
그러나 애플이 그동안의 큰 성공에 눈이 멀어서 반소비자 친화적인 정책들로 소비자를 외면한다면 언젠가는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혁신을 거듭하고 있는 빅테크 시장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기 때문이죠. 애플의 성공은 불법이 아니지만, 성공에 눈이 멀어 소비자에게 인심을 잃는 행위의 반복은 결국 소비자의 외면을 부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