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효정 Oct 20. 2021

딜레마 빠진 '망 중립성'...오히려 넷플릭스로 탈출?

망 중립성은 딜레마에 빠져있습니다. 최근 넷플릭스와 오징어게임 흥행으로 더욱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오징어게임으로 전세계에서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지만, 정작 국내서는 망 이용료를 내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버티는 근거는 망 중립성입니다.


망중립성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등 인터넷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통신망 제공사업자(ISP)는 모든 콘텐츠를 동등하고 차별 없이 다뤄야 한다는 원칙이 망 중립성입니다. 오늘날 인터넷과 모바일 기반의 혁신 서비스와 플랫폼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기반을 만들어준 인터넷 생태계의 운영 규범이었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혁신 스타트업이 등장하고 있기에, 망 중립성의 기본 원칙은 훼손되면 안 될 소중한 가치입니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통신사업자(ISP)가 구축한 네트워크의 수용 능력으로 감당하기가 힘들 정도로 엄청난 트래픽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트래픽 유발 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공룡기업으로 성장한 인터넷 기업들이고요. 누구나 콘텐츠를 차별없이 제공하고, 이를 차별없이 받아서 이용해야 하는데 발생하는 데이터량이 너무나 많아진 것입니다. ISP는 원활한 망 인프라를 제공하기 위해 상당한 투자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터넷 망 접속은 유료지만, 배달은 무료라는 망 중립성의 원칙은 사실상 지켜지기 힘든 구조가 됐습니다. 망 중립성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인터넷 정신이지만, 이를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기존의 인터넷 기업들의 기름진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의구심이 듭니다.


그 고고한 인터넷 정신을 십분 활용해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도, 망 이용료는 못 내겠다는 것인가.


사실 접속료 이외의 추가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원칙은 모든 CP(콘넨츠 제공자)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돼야 그 가치가 빛이 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하지 않죠. 넷플릭스와 유튜브, 페이스북 등 주요 CP들이 망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국내 망 트래픽의 30%가 해외 CP들로 인한 것들입니다. (물론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대형 CP들의 트래픽도 크지만, 상당한 망 이용료를 내고 있습니다) 


이들의 잘못은 아닙니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많은 사용자들이 몰렸을 뿐이죠. 독과점적인 시장 지배력이 생겨 난 것입니다. 원했건, 원치 않았건 발생한 시장 지배력은 남용될 수 있기에 각 국 정부는 이를 규제합니다.


망 중립성도 이와 유사하다면 유사한 개념이 적용돼야 하지 않을까요? 비대해진 CP들이 망 중립성 원칙에 따라, 최소한의 접속료만 내고 망을 독차지해 버린다면 새롭게 피어나길 원하는 스타트업이나 후발주자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이들 CP들은 엄청난 트래픽을 발생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의 콘텐츠 소비는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와 유튜브 등 영상과 사진 위주로 바뀌었기 때문이죠. ISP는 돈을 투자해 망을 확장해야 하고, 대형 CP들이 일으키는 과도한 트래픽 탓에 소비자들이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CP는 망 이용료를 지불하게 됐고, 시간이 흐르면서 ISP는 망 사용료를 올리고 있습니다. 시장 논리에 따라 망 중립성 원칙은 이미 오래 전부터 희석되고 있는 것이죠. 산업적·시대적 상황에 따라, 각국 정부의 승인 하에 망 이용료는 사실상 증가돼 왔습니다. 중소 CP(스타트업)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발(發) '망 무임승차' 논란...거세져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넷플릭스 발(發) '망 무임승차' 논란이 한창입니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오징어게임 흥행으로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의 망 이용료 분쟁이 뜨거운 이슈입니다.


망 이용료는 CP가 ISP에게 인터넷 망을 이용한 대가로 내는 요금입니다. CP는 소비자에게까지 이어지는 자체적인 인터넷 망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망 이용료 가격은 9달러/Mbps 정도로 알려졌는데, 아시아 국가 중에는 저렴한 편이나 영미권에 비하면 비싼 수준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유럽에 비해서는 8배 수준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용료가 비싸서 일까요. 넷플릭스는 우리나라에서 적정한 수준의 망 이용료를 못 내겠다며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논리는 망 중립성에 기반합니다. 넷플릭스는 국내 ISP가 이미 소비자에게 망 이용료를 받고 있으니, 자사와 같은 CP에게 망 이용료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넷플릭스의 주장은 또 있습니다. 자체 구축한 광케이블을 이용해 아시아권까지 트래픽을 직접 가져오고, 국내 서비스에만 망을 이용하기 때문에 망 접속료만 내면 된다는 것입니다. 국내 ISP는 해외 망 이용료를 내지 않으니, 넷플릭스와 ISP가 서로 윈윈한다는 논리입니다.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와 이를 두고 2년째 소송 중이다.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에 내는 망 이용료는 '0원'입니다.

SK브로드밴드가 넷플릭스에 대한 맞소송(반소)을 제기했다. 지난달 30일 SK브로드밴드 법률 대리인이 서울고등법원에 반소장을 제출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넷플릭스가 주장하는 망 중립성 원칙을 따르자니 형평성 문제가 생깁니다. "물론 남들도 내니 너(넷플릭스)도 내라"는 식의 막무가내 주장은 아닙니다. 막대한 트래픽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투자에 따른 이용료 이자, 전체 CP 및 소비자를 위해 필요한 비용이라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반전이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펼치는 넷플릭스가 다른 나라에서는 망 이용료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4년 2월 넷플릭스는 미국 통신사 컴캐스트와 망 이용료 지급 계약을 맺었는데, 당시 언론은 '인터넷 역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대서특필하기도 했습니다. 이 뿐 아니라 버라이즌, AT&T, 프랑스 오렌지 등 미국과 프랑스 통신사에 망 이용 대가를 내고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어느 곳에도 망 이용료 지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넷플릭스가 이렇게 쎄게 나올 수 있는 이유는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ISP들은 넷플릭스를 잡아야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결국 양사의 관계에서 CP인 넷플릭스가 ISP 보다 우위에 선 협상력을 쥐고 있는 것이죠. (얼마 전 국내 시장에 진입한 디즈니플러스의 경우 망 이용료를 지불할 것이라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망 이용료 법제화 분위기 솔솔...역차별 문제도 해소 기대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정부와 국회에서도 망 이용료 지급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나섰습니다. 국회에서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 대한 망 이용료 부담 입법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으며,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섰습니다. 


19일 문 대통령은 전날 김부겸 국무총리와의 청와대 주례 회동에서 "글로벌 플랫폼은 그 규모에 걸맞게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다"면서 "합리적인 망 사용료 부과 문제와 함께 플랫폼 제작업체간 공정한 계약 등에 대해서 총리가 챙겨봐달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앞서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과방위 국정감사에서 "망 사용료는 사업자간 자율 협상이 우선이지만, 전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는 법률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국내 ISP가 너무 많은 망 이용료를 받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 중소 CP 관계자는 "국내 통신사의 망 이용료는 너무 비싸다. 우회적으로 AWS를 사용해 글로벌 기업의 협상력에 의존하는 일이 벌어질 정도"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글로벌 플랫폼 및 대형 CP는 국내 ISP에 대한 협상력이 커서 할인된 비용을 내지만 중소 CP에 대한 가격은 비싸기 때문에 이러한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글로벌 플랫폼 CP에 비해, 국내 규제를 준수하는 네이버 등 토종 CP들은 "해외 기업에 비해 막대한 망 이용료를 내고 있다"며 '역차별'을 해소해 달라는 호소를 끊임없이 해오고 있습니다. 망 이용료 논란은 현재 넷플릭스만 논란이 거센 것처럼 보이지만, 구글 여타 글로벌 CP 역시 국내 기업에 비해 낮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근의 넷플릭스 논란으로 국회에서는 망 이용료 지불에 대한 법제화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법제화가 이뤄진다면 이러한 역차별 문제와 중소 CP들의 부담도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