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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미 Oct 02. 2023

운전으로 동네를 벗어 나다

초보운전 6년만에 동네 벗어 나기

     

임시 공휴일로 지정된 오늘, 추석 지나고 좀 더 쉬고 싶어서 9일에 보강하기로 하고 오늘은 쉬었다, 아이들 학교도 쉬는 날이다. 학교는 쉬어도 시험 기간이라 큰딸은 학원에 가야 했다. 아침 10시부터 수업이라 8시 30분에 깨워 아침을 먹이고, 학원으로 데려다줄 참이었다. 아침 8시부터 휴대전화 진동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친정 형제끼리 모여 있는 카톡 단톡방에서 오빠가 메시지를 올렸다.


‘오늘 엄마 전화기 바꾸러 갈 수 있는 사람?’


추석에 친정 식구들이 잠시 모였을 때 엄마 전화기가 말썽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며칠 사이에 엄마의 전화기는 먹통이 되고 말았다. 엄마의 휴대전화가 고장이면 엄마와 연락할 방법이 없다. 당장 고쳐야 한다고 오빠가 성화였다. 오빠는 하루에 세 번씩 엄마에게 전화한다. 엄마가 재작년에 다리 수술을 3번이나 하고, 11월에 또 수술이 잡혀있다. 엄마에게 늘 각별했던 오빠는 엄마를 살뜰히 챙긴다. 일주일에 한 번은 엄마를 찾아가 말동무도 해드리고 식사도 함께 하고 온다. 큰언니도 엄마에게 자주 전화하고 엄마를 잘 챙긴다. 작은 언니와 나는 오빠가 한 번씩 이렇게 단톡에 문자를 남기면 응하는 편이다.      


오빠의 물음에 모두 직장에 나가서 불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오늘 쉰다. 결국 엄마 휴대전화를 바꾸러 갈 사람은 나 뿐이다. 엄마에게 가는 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내가 운전을 잘 못한다는 거다. 동네 운전만 6년 차가 되었다. 갈 수 있는 곳은 정해져 있다. 지금 사는 동네와 예전에 사는 동네 정도다.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대형마트는 일 년에 한두 번 갈까 말까다. 교대 근무라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운 남편이 시내로 나갈 때는 늘 동행했기에 딱히 운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아침에 아이들 학교 데려다 주는 일은 동네 안에서 가능하니 동네 운전만 하는 나에겐 큰 불편이 없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시골이라 차가 없으면 이동이 번거로워서 억지로 운전을 배운 셈이다.      

남편은 오늘 야간 근무였다, 아침에 퇴근한 남편에게 말했더니 한숨 자고 오후 1시쯤 같이 나가보자고 했다. 남편은 9시쯤 자러 방으로 들어가고, 큰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러 나갔다. 그런데 문득, 나온 김에 바로 엄마한테 가볼까? 라는 용기가 생겼다. 명절 때 남편과 근무가 맞지 않아 함께 가지 못할 때 큰언니 집까지는 운전하고 나갔으니 괜찮지 않을까 했다. 엄마가 사는 곳은 언니 집에서도 15분은 더 가야 했다. 엄마한테 갈 때마다 남편과 동행하지 않으면 가지 못하는 게 늘 아쉬웠다. 이번 기회에 도전해 보기로 큰 마음을 먹었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때 살던 동네에 계시니 찾아가는 길은 안다. 도로 사정이 예전보다 많이 바뀌어서 살짝 걱정되긴 했다. 곳곳에 카메라가 많이 설치되었고, 제한 속도도 예전보다 많이 적게 책정 되어서 조심해야 했다. 동네 운전만 했더니 네비게이션 볼 일도 없어서 네비를 켜고 가도 뭐라고 하는지 헷갈리기만 했다.      

이왕 마음을 먹었으니 한 번 해보기로 했다. 몇 번 당황한 상황이 있긴 했는데 어찌어찌 엄마 집에 도착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엄마가 깜짝 놀란다. 전화가 되지 않으니 연락도 없이 간 거다. 곧 내 뒤를 살핀다. 당연히 남편과 함께 온 줄 알았는데 혼자 왔다고 하니 엄마가 더 놀랐다. 겁보가 웬일이냐며 또 걱정하신다. 



엄마를 모시고 엄마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대형마트에 가서 휴대전화를 샀다. 오늘이 2일이라 요금제 변경하는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전화기가 개통되었다. 전화기를 개통하고 엄마와 함께 식당가에서 돌솥 비빔밥을 먹었다. 엄마와 단둘이 밥 먹는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내 차에 엄마를 태워 밥 한번 먹으러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운전으로 동네를 벗어날 용기를 내지 못해 6년 만에 그 꿈을 이루었다. 나의 가장 큰 장애물은 늘 운전이었다. 해보니 별 게 아닌 건 아니었다. 계속 긴장해야 했고, 다리에 힘을 많이 줘서 다리도 아파왔다. 하지만 도전해 볼 만했다. 이제 운전해서 엄마에게 혼자 갈 수 있게 되었다. 운전은 남들에겐 별일 아닌 것이 나에게는 늘 큰 돌덩이였다. 오늘 그 돌덩이를 살짝 내려놓게 된 기분이다. 절대 할 수 없는 일은 없다. 마음먹기가 힘든 거다. 뛰어넘지 못할 일도 매일 조금씩 쌓이면 언젠가 넘을 수 있게 돼 있는 것 같다. 나는 사실 운전을 매일 한다. 6년 동안 하루도 빠지는 날이 없다. 매일 하는데 나 스스로 그 한계점을 찍으며 살았던 것 같다. 운전은 무서운 거다. 목숨과 연관돼 있으니 용기만으로 하기엔 버겁다. 하지만 또 안 할 수는 없다. 매일 쌓아 왔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운전 ‘그까이꺼’ 가지고 오버하고 있지만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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