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무기력에 대하여

by Lucerne

몇 년 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누구나 좋아하는 유명한 영화를 선호하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독립영화임에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끌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은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성실함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든 현실 속에서 점점 극단적으로 내몰리는 주인공을 보며, 나와 비슷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내가 가지고 싶은 걸 왜 가질 수 없는 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성장할수록 집안사정은 점점 더 기울어지기만 하고, 나는 내가 집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뒤늦게 합격한 4년제 입학을 포기하고, 2년제 야간 대학을 갔던 것은 일하면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4년제를 간다고 해도 등록금 걱정이 앞섰던 때였다. 내 생활비라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아빠는 내가 이름도 모르는 학교에 갔다며 창피해했다. 나는 나름의 배려를 했는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창피해하는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마치 내가 간 대학으로 나를 평가하는 듯했다. 그때 어떻게든 잘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누가 봐도 좋은 대학을 나오고 스펙을 쌓아서 큰 기업에 가면 나를 인정해 줄까?


편입을 위해서는 등록금부터 벌어야 했다. 집안 문제로 신용불량자였던 나는 빚부터 갚기 위해 일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학 졸업장만 있을 뿐 아무 스펙도 없는 내가 입사하기는 쉽지 않았다. 1년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부터는 면접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하면서 돈을 모으기 시작했지만, 빚을 갚아야만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내 이름으로 되어있는 빚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빚이 더 추가되었다. 돈을 모으고, 빚을 갚은 후에는 0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열심히 사는 나에게 상황이 잘 따라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파견직을 하면서 등록금을 모으고, 학사편입을 위해 학점은행제로 학사를 취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칠 만도 했다. 회사는 1시간 반 거리였고, 늘 공부할 것들을 가지고 다녔다. 강의도 듣고 과제도 해야 했으므로 항상 바빴다. 거기다 돈을 더 벌어야 한다며, 퇴근 후 프리랜서 알바까지 했다.


빚을 갚고 등록금을 어느 정도 벌었다고 생각한 뒤에는 퇴사하고 편입학원을 다녔다. 27살이었으니 그렇게 어린 나이도 아니었다. 남들보다 늦었지만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무조건 열심히 했다. 수업이 아침 7시부터였으므로 새벽 5시 반이면 일어나서 6시에 집을 나왔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무언가에 꽂혀서 열심히 하고 있다는 자체가 좋았다. 학생 때는 그렇게 공부하기가 싫었는데, 나중에서야 공부에 재미가 들렸다. 아마도 억지로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하는 내 모습이 좋았던 것 같다.


학교 입학 후 원래 전공과는 다른 분야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원래 일하던 분야에는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불편한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그런 환경에 맞지 않다는 생각을 했고, 늘 감정노동을 해야 했으므로 다른 전공을 희망했다.


최종 목표는 교사였다. 하지만 내가 교사가 되기에는 앞으로 더 힘든 순간을 많이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원을 가야 했고, 임용도 봐야 했다. 학교에는 나보다 훨씬 실력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공부를 더 하고 싶었지만, 집에서는 반기지 않았다. 내 열정으로 공부만 하기에는 이미 많이 지쳐있었다. 학자금대출로 또다시 빚을 지게 된 내가 할 수 있는 건 취업뿐이었다.


운 좋게 대기업에 취업을 했지만, 나는 그동안 겪은 일들을 또다시 반복적으로 겪어야 했다. 내가 버티던 이유는 하나였다. 가족들이 드디어 내 존재를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늘 익숙했던 무시와 비웃음을 견디며, 그래도 내가 이 상황을 버티기만 하면 앞으로는 잘 될 수 있는 희망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를 도와주려던 상사도 나를 비웃던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뭐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상사가 시키는 일에 대답만 할 뿐,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잘해도 욕을 먹고, 못해도 욕을 먹었으므로 해서 뭐 하냐는 알 수 없는 물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나를 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나는 뭔가를 성취함으로써 이겨내는 사람이었다. 생각이 많고 힘들 때마다 책을 읽거나, 새로운 것들을 배우면서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달랐다. 사람들이 나에게 뭐라고 얘기하든, 좋은 의미로 하든 다 잔소리로 들렸고, 나도 모르는 내 소문에 내가 변명을 해야 한다는 것에 화가 났다. 내가 뭘 하든 나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는 듯 훈수를 두는 것이 지겨워서 나에 대해서 그냥 알아서 생각하라며 더 이상 말하기를 포기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그 사람의 판단이므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내가 그 많은 사람들을 쫓아다니면서 해명을 하고, 아닌 걸 증명해야 하는 이유도 찾지 못했다. 아무리 내가 아니라는 걸 이야기한다고 해도 이미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을 뿐이었다.


이후에도 무기력은 더 깊어지기만 했다. 어느 순간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서 천장만 보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내가 겪었던 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한편으로는 애써 회피했던 기억들을 떠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억상실에 걸린 사람처럼 몇 년간의 기억을 통째로 잃어버렸고, 방금 한 이야기가 뭐였는지조차 잊어버렸던 나였다.


하지만 나는 누가 어떤 상황에서 무슨 말을 했었고, 나에게 어떻게 했었는지를 전부 다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기억을 못 한 게 아니라 나에게 끔찍했던 순간들은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회피하고, 좋았던 순간들만 남겨둔 것이었다. 그 기억들이 떠올랐다는 건 떠올려도 될 만큼 괜찮아졌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무기력은 나에게 쉬어야 한다는 일종의 경고였다. 그럼에도 나는 쉬지 않고, 뭐든 해야 한다며 애를 많이 썼다. 어쨌든 나는 인정받아야 했으니까. 우울증과 무기력이 나를 덮어버린 그 시기에도 나는 공무원을 하겠다고 공무원 시험에도 여러 번 도전했지만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공부에 집중이 될 수가 없는데도 꾸역꾸역 해내야 한다고 했었다.


그랬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안 좋은 말을 들으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했던 내 모습이 필름처럼 겹쳐졌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대로 알아서 해주지 않으면 "쟤는 아무것도 안 하는 애"라며 언니와 비교하고, 나를 비난하기만 했다. 어차피 잘 보이려고 해 봤자 안 좋은 얘기만 들을 게 뻔하다며, 어른들을 피했던 것처럼 내가 성장한 이후의 학교생활도, 회사생활도 비슷한 패턴이었다. 누군가 나를 비난하는 말에 속없이 약해지기만 했다.


비난이나 칭찬은 사실 나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감정표현일 뿐이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내 감정은 좋기도 하고, 주눅 들기도 했었다. 나를 칭찬하는 사람에게는 별 얘기도 아닌데 너무 고마워서 선물을 주기까지 하고, 나를 비난하는 사람은 무조건 피하기만 했다. 내가 아픈 건 내가 만난 사람들 때문이라며, 그 사람들을 탓했다. 많이 부족한 사람들임은 확실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겪었다고 해서 무기력이 온 것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의 속성이 복잡한 것처럼 내가 아픔을 겪은 이유 또한 굉장히 복잡한 가운데에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이해하기로 했다. 결국은 내가 나를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있는 문제였다. 내가 나를 멍청하다고 생각하면 정말 멍청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내가 비웃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정말 누가 비웃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직도 생각하면 화가 나는 일들이 많지만, 감정은 늘 그때뿐이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면 감정이 많이 풀리기도 하고, 무뎌질 만큼 시간이 많이 흐르기도 했다. 사람들의 말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말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그때도 지금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만큼이나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돌아보면 그 노력에 후회가 없다. 이제는 그렇게 열심히 살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그 이유를 성공이 아닌 나 자신에게 두기로 했다. 몸과 마음이 온전치 못한 나를 좀 더 건강하게 지켜주는 것이 나를 위한 삶이라는 걸 늦게나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쉼 없이 달려오던 내게 무기력은 오히려 멈추는 법, 쉬는 법, 나를 아끼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건 내가 한없이 나약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충분히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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