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에 대하여
5년만이었다.
알게 된지는 십년도 더 지난 회사 동기에게 오랜만에 말을 걸었다.
"잘지냈어? 나를 기억하려나"
메신저에 추가한 건 며칠 되었지만,
나는 말을 걸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느라 시간만 보내는 중이었다.
결국 며칠이 지난 뒤에야 용기를 냈다.
안 좋은 사이는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나에게 솔직했고 나보다 동생이었지만 성숙했던 그 친구가 생각이 났다.
5년 전 내가 믿었던 사람들이 나와는 다른 생각을 했다는 걸 알게 됐을즈음, 나는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끊었었다. 내가 가장 믿었던 누군가는 내가 그때서야 사람들과 연락을 끊은 걸 알게 된다면, 그걸 이제 알았냐며 무관심한듯 툭하고 그 말을 뱉어낼 것이었다.
사실 누가 나에게 적이고, 누가 내 편이었는지 늘 헷갈렸다. 나를 걱정하는 것 같으면서도 이유없이 화를 내는 사람들의 시선이 항상 불편했지만 그냥 그 자리에서 견디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말을 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답이 왔다.
"언냐~!!!!"
반가워하는 그녀의 말에 답장이 안올까봐 조마조마하고 있던 소심한 긴장이 슥하고 풀렸다. 먼저 말을 건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긴장할 수가 있는건가? 그녀와 근황토크를 이어가던 중 나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물어보고싶은 게 있었어."
"물어봐바"
"예전에 우리집에 왔을 때 나한테 하려던 말이 뭐였어?"
"세상에..뭐지?"
십년도 더 지난 시간의 일들을 나는 이제서야 물어보고 있었다. 사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 물어본다고 해서 혹은 내가 원하는 답을 듣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다.
정리를 하고 싶었다.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던 그 일이 무엇이었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그 말들이 뭐였는지.
심증은 가지만 확신할 수 없었던 그 일들에 대해서.
"최주임.. 세상엔 말할 수 없는 일들도 있는거야."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야기를 안해줘서 답답하다는 내게 회사 상사는 이렇게 말했었다.
'내 일인데 내가 몰라야 하는게 말이 되는건가?'
'그냥 말하면 되는데 왜 말을 안해?'
나는 한참을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그 소문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도 못한 채
나를 소문의 중심에 올려놓은 그 친구들과도 계속 연락하며 지냈다. 나는 내 눈으로 혹은 내 귀로 직접 보거나 듣지 않으면 어떤 말도 확신하지 못했다. 확신이 있어야만 믿었던 사람들을 놓을 수 있었다.
"혹시 그 회사 다닐때 내 소문들은 거 없어?"
"응? 없었는데?"
얘기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연락해서 이런 얘길 한다는 게 미안했다.
사실 그런 소문이 없었다는 그녀의 말은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라고 해도, 그렇다고 해도 나는 믿지 않을 것이었다. 도대체 나는 무슨 생각으로 물어본 걸까?
"고마워 얘기해줘서. 입장이 곤란할까봐 말하기가 애매했어."
'정말 내가 알면 안되는 일이었구나.'
'사람들이 말을 못한 이유가 그거였구나'
사실 그녀의 말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지만, 지금까지도 말할 수 없는 일이라면 이제는 내가 몰라도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때 내가 이런 일을 겪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나한테 그렇게 했던 것 같다.'
라는 건 흐릿하기만 한 내 기억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확인하고 싶었다. 나에게 정말 그런 말도 안되는 일들이 일어난 게 맞는지. 하지만 결국엔 내 기억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그녀의 말이 맞다면 다행인거고, 그게 아니라면
'그래 그런일이 나한테 있었지'
하고 넘겨야 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안해주는 이유가 내가 말을 함부로 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말도 해주지 않았던 내 옆의 사람들을 탓하기만 했다. 모두가 10년이 넘은 오랜 친구들이었다.
아무도 나에게 솔직하게 말을 안해준다는 것은 나를 공격하는 좋은 이유가 되어주었다. 내가 평소에 얼마나 못되게 굴었으면 친구들이 옆에 있으면서도 어떻게 아무도 말을 안할수가 있냐는 그 말들은 내 깊은 죄책감을 건드렸다. 내가 잘못해서 그런거라는 사람들의 말들을 믿으면서도 아니라고 하는 또 다른 나와 부딪히면서 늘 혼란스럽기만 했다.
"넌 평생 모르고 살아"
늘 내편이 되어주던 사람이었지만, 나에게 많이 실망한 듯 그 사람도 그렇게 멀어졌다. 나는 그 말대로 되지 않기 위해서 무던히도 노력했다. 기억나지 않는 걸 기억해내느라 많은 에너지를 써왔다. 정말 내가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될까봐. 나는 그게 내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말해주려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늘 어긋나기만 했다. 그 때의 나는 마치 그 얘기를 들을 준비가 안되있다는 듯이 막상 그 상황이 오면 두려웠고, 그렇게 피하기만 했다. 그 또한 내 잘못이라며, 더 이상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외면했던 감정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 늦었다는 말. 그리고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는 말이 왠지 모르게 아플 뿐이었다.
하지만 확신이 없더라도, 내가 모든 걸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인생은 그냥 그런 채로 흘러갈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참 빨리도 알았네'
내가 모든 걸 다 알아야만 한다는 그 생각이 집착하듯 나를 그렇게 잡아두고 있던 건 아닐까.
나는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십년도 더 지난 그 일들을 생각하기에는 지금의 내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
앞으로의 내가 그 때의 내 모습과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확신은 할 수 없다. 살면서 문득문득 기억이 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이었다. 더 이상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