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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킴이 Aug 23. 2024

성 안토니우스의 가르침

제 1장 편지와 말씀. 선한 행동과 거룩한 삶에 대한 교훈

81. 동정(童貞)에 관한 이야기에 이르렀을 때 사도 성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지시하신 바가 없습니다”(1코린 7:25). 그가 지시받지 못한 이유는 아무나 그 어려운 멍에를 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멍에는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평생 동정으로 있는 사람 중 그 누구도 그것을 자랑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하느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동정으로 지내는 것은 여자에 대한 관심, 육체적인 생각, 마음의 자만심, 세속적인 모든 것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동정으로 지내는 것은 또한 참을성 없는 불평, 사람에 대한 미움, 세상적인 영광을 자신에게서 쫓아냅니다. 그것은 예배에 힘쓰게 하고, 혀를 억제하고, 배를 금식으로 단련시킵니다. 동정이 이 모든 것으로 인하여 아름답게 될 때, 흠결 없는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동정을 지키는 마음을 지닌 여러분이 호화로운 식사에 신경을 쓰고 자만하는 마음으로 자화자찬하면서 자기 일에만 신경을 쓴다면, 여러분은 모든 일에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자신의 혀를 지키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평생토록 공허할 것이며, 쓸데없이 큰 수고를 한 셈이 될 것입니다.      

82. “행복하여라, 그 길이 온전한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걷는 이들!(시편 119:1)”이라고 기록된 바와 같이 성인들이 걸었던 그 길을 따라 의롭게 걷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몸이 정결하고, 말이 정결하고, 눈이 정결하고, 손이 정결하고, 귀가 정결하고, 발이 정결하고, 하느님 앞에서 생각이 올바르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마음이 정결한 가운데 걸어갑시다.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새로 지어 주시고 꿋꿋한 뜻을 새로 세워 주소서(시편 51:10)라고 기도하듯이 말입니다.      


2. 170장으로 구성된 선한 행실과 거룩한 삶에 대한 교훈    

       

1. 사람들이 보통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할 때, 이 말을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고대 현자들의 연설과 글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 선한지, 무엇이 악한지 판단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사람입니다. 악하고 영혼에 해를 끼치는 이들을 멀리하고 선하고 영혼을 이롭게 하는 이들을 지혜롭게 배려할 줄 알며, 하느님께 크게 감사하면서 행하는 이야말로 진실로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불려야 마땅합니다.      

2. 진실로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다해 하느님께 순종하며 모든 일에서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고자 하는 한 가지 관심만 가지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삶에서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간에, 하느님의 선하신 계획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지 그 한 가지만을 자신의 영혼에 가르칩니다. 의사가 쓰고 달갑지 않은 약을 준다고 해서 몸을 회복하게 해준 의사에게 감사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하느님의 계획이고 우리를 유익하게 해주시기 위한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단지 우리들을 기쁘게 해주시지 않는다고 해서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는 것은 온당치 못합니다. 이것을 이해하고 하느님을 믿을 때 영혼의 구원과 평안이 있습니다.     

3. 절제, 온순, 정결, 확고함 등과 같은 위대한 덕은 우리가 만나게 되는 슬픔에 맞서 싸우며 우리를 돕도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전투 능력과 같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힘을 단련시켜서 이 힘이 항상 우리 안에 준비되어 있다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어떤 일도 비참하다거나, 과도하거나 파멸을 불러오거나,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우리 안에 있는 덕으로 말미암아 극복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지혜롭지 못한 자에게는 이러한 것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미덕을 빛나게 하기 위한 것이고, 우리가 이것으로 인해 상 받을 것임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4. 만일 여러분이 부(富)와 그것으로 얻는 많은 즐거움이 한 순간의 헛된 망상이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부(富)보다) 선을 행하고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이 낫다는 것을 안다면,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확신 가운데 견고히 서서 그것을 기억 속에 간직하게 될 것입니다. 즉, 여러분이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 달변이나, 학식이나, 부로 인해 영광을 얻는 것을 보더라도 탄식하거나, 불평하거나, 누군가에게 불만을 말하지 않고 모든 것으로 대해서 하느님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진리에 무지하고 만족을 모르면서 부와 쾌락에 대한 욕심, 명예욕, 허영을 갖는 것은 가장 악한 정욕입니다.  


5.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살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자신에게 이로운지, 무엇이 그의 영혼에 잘 맞고 구원에 도움이 되는지, 무엇이 그 영혼에 맞지 않고 해로운 것인지 압니다. 그러므로 그는 영혼에 맞지 않고 해로운 것을 피합니다.      

6. 절제하는 삶을 사는 사람일수록 더 평온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많은 일 즉, 노예나 고용한 일꾼, 가축을 사고파는 일에 대해 근심 걱정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일에 집착하면 그로 인해 슬픈 일이 생길 때 하느님께 불평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제멋대로인 많은 정욕이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고,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된 삶의 어둠 가운데 헤매게 됩니다.      

7. 선을 행하며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리 쉬운 일도 아닙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선을 행하는 삶에 참여하는 사람은 경건하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지혜를 가진 자입니다. 일반적인 보통의 지혜는 세상적이고 변덕스럽습니다. 그것은 변질될 수 있는 물질적인 것으로서 선한 생각도 주고, 악한 생각도 줍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지혜는 제멋대로 행하는 부주의 때문에 사람 안에 생겨나는 악을 징벌합니다.      

8. 교육받지 못한 자와 무지한 사람은 학문을 우스운 일로 치부하고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학문으로 인해 그들의 무지가 탄로 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기를 바랍니다. 또한 삶과 성품에 있어서 참을성이 없는 사람도 자신이 저지른 많은 악한 행위로 비난받을까 봐 염려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못하기를 바랍니다. 이 악은 음란, 자만, 탐욕, 분노, 무례, 광포함, 살인, 수군거림, 질투, 사기, 약탈, 조급함, 거짓말, 정욕, 게으름, 슬픔, 겁냄, 미움, 정죄, 나태, 오해, 무지, 속임 등이 그 안에 복잡하게 뒤섞여 있고, 이 죄스러운 악 때문에 영혼이 파멸하고 타락하게 됩니다.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영혼은 이와 같은 것들로 인해 영혼이 파괴됩니다.      

9. 사람이 과연 진실로 수행하며 선을 행하는 훌륭한 삶을 사는지는 거짓으로 꾸민 성품이나, 거짓된 삶의 모습으로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물을 피하듯 모든 쾌락에서 돌아서서 숙련된 성상화 화가나 조각가처럼 선을 행하며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진실된 것입니다.      

10. 온전한 사고를 하는 사람의 눈에는 부유하고 좋은 집안 출신이라 하더라도 영적인 교육이나 미덕이 결여된 삶을 사는 사람이 불쌍하게 보입니다. 형편없이 가난하고 종의 신분을 가진 자라도 그가 교육이나 미덕으로 자신을 단장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정욕에 빠져서 선한 삶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나그네가 길을 잃고 죽음에 이르듯이 파멸에 이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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