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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킴이 Aug 17. 2024

성 안토니우스의 가르침

제 1장 편지와 말씀

71. 온유한 자는 온전하며 하느님을 닮습니다. 그는 기쁨에 넘치며 성령께서 그의 안에 함께 하십니다. 마치 불씨를 잡지 않으면 더 많은 숲을 태우듯이, 마음에 악의를 허용하면 그것이 여러분의 영혼을 죽이고 몸을 더럽히며 불의한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악의는 또한 싸움과 불화와 소문, 질투, 미움 그리고 몸을 괴롭히고 병을 일으키는 악한 정욕을 일깨웁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받아들이시고 여러분 각자가 “온유함으로 인해 나를 받으시고, 주 앞에서 영원히 부활하게 하셨다,” 라고 기쁘게 말할 수 있도록 거룩한 이들의 온유함과 순전함을 서둘러 갖추도록 하십시오.      

72. 하느님께서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굽어보는 사람은 억눌려 그 마음이 찢어지고 나의 말을 송구스럽게 받는 사람이다”(이사 66:2). 우리 주님께서는 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9). 그러므로 겸손을 갖추고 마귀의 특징인 거만을 마음에 품고 다니지 마십시오. 마음에 거만함을 품고 다니는 사람은 마귀에게 경배하는 자입니다. 마음이 교만한 자는 모든 이의 미움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랑을 일삼기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그는 많은 죄악에 빠집니다. 모든 죄가 하느님 앞에 가증스럽지만 마음의 거만이 모든 죄보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거만한 자에게 충고하거나 조언하는 자는 구멍 난 그릇에 물을 붓거나 날아가는 새에게 연설하는 자와 같습니다. 마음이 거만한 사람은 하느님 앞에  멸시를 받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음이 겸손하고 애통해하는 자를 낮추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당신께서 친히 높은 곳에서 우리에게로 내려오셨으며 마지막 단계까지 겸손해지셨습니다. “내 겸손과 내 노고를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잊으소서”라고 소리 높일 수 있도록 겸손을 사랑합시다.      

73. 눈에 보이는 정욕을 좇아 살지 말고 마음을 약하게 먹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악한 정욕은 마음을 부패하게 하고 정신을 어둡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정욕을 멀리하면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노여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생명을 마칠 때까지 정결함에 이르고 숨겨진 정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도록 노력합시다. 이를 위해 여자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이 미워하시는 정결치 못한 정욕과 파렴치한 정욕의 종이 되지 맙시다. “너희들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전이며 거룩한 성령께서 거하시는 곳이다.(1코린 6:16)”라는 말씀이 여러분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도록 하느님의 이름을 여러분 마음의 눈앞에 새겨 놓으십시오. 정결치 못한 정욕에 빠진 자는 시편 말씀처럼 멸망하는 짐승과 같습니다(시편 49:12). 그러므로 음란한 눈을 미워하며 정결함을 추구합시다. 정결함이야말로 하느님의 천사들이 가지고 있는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사탄의 꼬임으로 넘어진다면, 회개를 통해 다시 일어나서 죄 가운데 있던 양을 찾으러 오신 그분께로 나아갑시다(루카 15:4).     

74. 자기 입술과 혀를 보존할 수 없는 자는 말을 적게 하도록 애써 노력하십시오(욥기 11:3).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혀를 통제하여 죄를 짓지 않도록 많은 말을 하지 마십시오. 손가락으로 여러분의 입을 막고 여러분의 혀에 재갈을 물리십시오. 왜냐하면 말이 많은 사람은 자신 안에 성령께 내어 줄 자리를 남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직 초심자인 어떤 사람이 여러분과 얘기하면서 영혼을 위해 무엇이 유익한지 묻는다면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만일 유익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듣지 못하는 이나 말하지 못하는 이가 되십시오.”     

75. 나쁜 말은 독약보다 해로우므로 그 누구에 대해서도 나쁜 말을 하지 않도록 자기 입술에 든든한 파수꾼을 세웁시다. 모든 상처는 치유되지만, 말로 인해 받은 상처에는 치료약이 없습니다. 사탄에 의해 내뱉게 된 비방자의 부주의한 말은 뱀의 혀보다 더 독성이 강합니다. 왜냐하면 그 말은 형제들 가운데 다툼과 쓰라린 반목을 일으키고 평화로운 이들 가운데 분란과 사악함을 심고 많은 사람의 모임을 흩어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것을 피하고 침묵하십시오. 침묵하기를 좋아하는 이의 자리는 하느님과 천사들 옆 높은 곳에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 스스로 자기 입술을 지킬 때 여러분의 길을 보호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잠언 13:3).      

76. 성경은 두 가지의 수치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줍니다. 어떤 수치로부터는 죄가 생겨나게 되고 또 다른 수치로부터는 영광과 은혜를 얻게 됩니다(집회   4:23-25). 죄를 지은 후 느끼는 수치심은 진실하고 유익한 수치입니다. 그러나 죄를 짓게 만드는 수치는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방해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말고 진리를 행할 때 숨지 마십시오. 주님의 가르침이나 지혜의 말씀 선포하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죄를 영적 아버지들에게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77. 우리 영혼에 대한 긍휼로 마음이 움직이신 주님께서는 요한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들아, 너희는 서로 영광을 주고받으면서도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광은 바라지 않는구나”(루카 6:26, 요한 5:44). 그러므로 “사람들이 너희들에 대해 선한 말을 하고 너희를 영화롭게 하며 너희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때에 너희에게 화가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허영과 그 싹을 잘라내도록 죽기까지 노력합시다. 허영을 피하십시오. 많은 사람이 이 때문에 멸망했습니다. 허영은 많은 노력, 금식, 기도, 여러 번 올리는 밤 기도, 사람들 앞에서 베푸는 자선, 그와 비슷한 수많은 일을 하도록 사람들을 부추깁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으로 수치와 조롱을 얻는 것 외에 그 무엇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허영의 마귀는 극도로 많습니다. 그러므로 허영으로 말미암아 멸망하거나 길을 헤매지 않도록 자신 속에 있는 무언가 특별히 위대한 것을 내세우려고 노력하지 맙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라고 하신 하느님의 칭찬을 얻기 위해서 성인들의 가난을 본받고 그들의 영광도 얻을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노력합시다.      

7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서에서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 것이다”(루카 21: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24:13)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천국에서 우리에게 준비된 것을 얻기 위하여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참아야 할까요? 그러므로 피를 흘리는 데까지 이르기 전에는 자랑하지 맙시다. 왜냐하면 어떤 예술가도 완성하기 전까지는 자기 작품을 자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내로 승리를 얻은 자를 복된 자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때가 이르면 그는 라자로처럼 높은 곳에서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79. 시편 기자는 “당신의 약속은 말부터가 혀에 달아 내 입에는 꿀보다도 더 답니다”(시편 119:103) 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금보다, 순금덩이보다 더 좋고(시편 19: 10-11)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알아가는 동안 깨어서 그의 계명을 지켜 “그 아심이 놀라와 내 힘이 미치지 않습니다”(시편 139:6)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진실로 복된 자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그분이 여러분에게 노하시지 않도록 신실치 못한 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십시오. 신실치 못한 자에게 진리를 전파하거나 훈계하거나 가르치는 자는 깊은 바다에 진주를 던지는 자와 같습니다. 반면에 믿는 자의 마음속에는 마치 경사진 땅을 따라 물이 아래로 쏜살같이 내달려 흘러가듯이 주님의 말씀이 스며듭니다.      

80. 태만하고 게으르다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깨어서 이성의 집 안에 있는 선한 열성을 끊임없이 일깨우도록 합시다. 정욕은 깨어서 열성을 다해 수행하는 이를 결코 다스릴 수 없습니다. 혹시 유혹자의 간계로 인해 넘어질 때도 열성을 다하는 것과 깨어있음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에 열성을 다하지 않으며 태만하고 나태한 자는 마귀의 유혹에 빠져도 자신이 지은 죄를 미처 깨닫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심장은 돌처럼 굳어져서 길들이고 재갈 물린 노새와 같이 되어 아무나 그 위에 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가 그를 사로잡는 동안 마귀는 그러한 사람 속에서 온갖 정욕을 일으켜 타락시키고 그를 원하는 대로 끌고 갈 것이고, 결국 그는 신음하고 애통하다 죽게 될 것입니다. 태만한 자는 무너져서 주인에게 버림받은 집과 같습니다. 그 집은 그 누구에게도 가치가 없고 도리어 저주받은 것처럼 독사나 거미, 짐승의 소굴처럼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이 됩니다. 무너지고 황폐해진 집처럼 그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태만한 자의 상태는 그러한 것입니다. 원수의 손아귀에 떨어지지 않도록 열심을 품고 애쓰며 결코 그 열심을 거두지 마십시오. 사람 안에 이러한 아름다운 열성과 돌아봄이 있을 때, 이것이 그에게 온갖 타락과 상처에 대해 미리 경고해줍니다. 마침내 그러한 사람은 성령이 평안히 거하시는 처소가 되고, 자신의 길을 행복하게 완주한 후에 이 세계에서도 거룩한 이들의 평안에 다다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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