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거제도 여행
거제도 여행
희야는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섬도 처음이었다. 선유가 “우리 거제도에 여행 갈 거야.”라고 말했을 때, 희야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호진이 큼직한 책을 하나 가져와서 “이게 우리나라 지도야. 거제도는 여기 있어.”라며 책 위에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가 우리가 사는 D 시고, 여기가 희야가 사는 C 시야. 그리고 여기가 부산이고, 그 옆에 거제도가 있지.”
희야는 사람이 사는 곳이 책 위에 표시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유치원 교실의 구석에 둥글게 생긴 지구본이 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에는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호진의 설명을 대충 흘려듣던 희야는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거기까지 멀어요? 뭘 타고 가요? 언제 돌아올 거예요?”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일은 희야에게 설렘보다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더 크게 불러일으켰다.
“멀어. 기차랑 차를 여러 번 갈아타야 해.”
호진과 희야의 대화를 듣던 선유가 눈썹을 찡그리며 끼어들었다.
“미안해, 희야야. 우리가 차가 없어서. 부산까지는 KTX라는 기차를 타고 가야 하고, 부산에서 버스를 타고 거제도로 가야 해. 꽤 멀어. 그래도 괜찮아?”
“네!”
괜찮다는 대답 대신 다른 말은 할 수 없었다. 얼마나 먼지 감이 잡히지도 않았다. 소망원에서 시키는 대로 따르는 데 익숙했던 희야는 그저 무사히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호진과 선유는 이제 믿고 따라갈 수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희야는 거제도에 가면 바다가 있다는 말에만 관심이 갔다. 얼마 전에 파도 풀에서 놀았던 일, 소망원에서 계곡에 가서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신나게 물장구를 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계곡에서 준우 오빠가 혼자 깊은 곳으로 들어가 놀다가 빠져 죽는 일이 있었다. 선생님들과 오빠들이 준우 오빠를 건져 올렸고, 희야는 축 늘어진 준우 오빠를 멀리서만 바라보았다. 장례식은 급하게 치러졌고, 아이들은 아무도 가지 않았다. 며칠 동안 소망원은 침울했지만, 곧 평소처럼 일상을 되찾았다.
희야가 준우 오빠 이야기를 선유에게 건넸을 때, 선유는 눈을 크게 뜨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믿을 수가 없는 일이야.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선유의 눈에 눈물이 맺혔지만, 희야는 그저 멀뚱멀뚱 바라볼 뿐이었다. 준우 오빠가 어느 날 보이지 않게 된 건, 소망원을 떠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던 희야에게 큰 사건이 아니었다. 그저 사라진 사람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기차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성준이가 칭얼대기 시작했다. 비카 아줌마는 서툰 한국어로 성준이를 달랬다. “성준이 왜 이렇게 울어요? 금방 도착할 거예요. 울지 마요.” 그 목소리는 울먹이듯 자주 갈라졌다. 남자처럼 짧게 자른 머리와 화장기 하나 없는 비카 아줌마는 성준이가 울 때마다 어쩔 줄 몰라 했다. 선유는 안쓰럽다는 듯 “어떡해? 미안해서”라고 말했다. 비카 아줌마는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괜찮아요, 소냐 이모. 우리 섬에 가면 신나요.” 희야는 성준이가 왜 그렇게 자주 이유 없이 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와 자식의 관계는 희야에게는 결코 짐작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소망원에서 가져온 진한 분홍색 티와 짧은 빨간색 치마를 입은 희야는 처음 타 보는 KTX에 신기해했다. 주말마다 호진과 함께 타던 느릿느릿하고 이상한 냄새가 나는 기차와는 달랐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이 너무나 빨라 사진을 찍을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들뜬 기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 기차 안을 연신 두리번거리며 늘 그랬듯 다른 좌석에 앉아 있는 아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물컵 안의 침전물이 가라앉듯 흥분이 사라지고 심심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기차 안에서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기에.
“언제 내려요?...얼마 남았어요?”
희야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고, 선유는 난감한 표정으로 “응, 더 가야 돼...이제 조금 있으면 내려. 심심해?”라고 답했다. 다행히 희야의 인내심이 바닥나기 전에 기차가 도착했다.
부산역 안의 분식집에서 점심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성준이는 다시 찡찡대었고 희야는 계단을 내려갔다 올라가는 것이 귀찮아졌다.
“얼마나 남았어요?”
참지 못한 희야는 또 질문을 던졌다.
“이제 지하철 내리면 버스 타면 거제도로 바로 갈 거야.”
선유는 희야의 궁금증에 답해주었다. 희야는 왠지 온몸이 뒤틀리는 듯한 기분이었지만 힘들어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선유와 호진이 아직 희야에게는 편안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버스는 긴 터널을 지나, 바다 위로 난 다리 위를 달렸다.
“희야야, 저기 바다에 떠 있는 커다란 화물선 봐. 저 멀리 섬들이 보이지? 예쁘지?”
선유가 창밖으로 손짓하며 말했다. 하지만 차를 갈아타고 걷느라 지친 희야와 성준이는 곧 잠에 빠져들었다. 희야는 이제 여행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희야야, 다 왔어. 일어나.”
두 아이는 선유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터미널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드디어 리조트에 도착했다. 희야는 나중에 이런 여행이 선유와 호진의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희야 자신은 오래 걷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여행보다는 호텔 같은 곳에서 죽치고 앉아 편히 쉬는 여행을 더 좋아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선유와 호진은 여전히 자신들의 방식을 고수하며 “어른이 되면 네 식대로 해.”라고 말하곤 했다. 여행에 관한 한, 그들은 양보라는 게 없었다.
리조트에서 짐을 풀자, 희야와 성준이의 방전됐던 에너지가 되살아났다. 그들은 곧장 리조트에서 가장 가까운 해수욕장으로 직행했다. 빨간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희야는 지친 기색도 없이 허리에 꼭 맞는 튜브를 낀 채 바다에 뛰어들었다. 머리 위로 따가운 햇볕이 쨍쨍 쏟아지고 등에 땀이 줄줄 흘렀지만, 시원한 바닷물에 몸을 담그자마자 상쾌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바다는 잔잔한 물결만이 일렁였다. 희야는 비카 아줌마가 성준이와 해변 근처의 얕은 물에서 놀고 있을 때, 조금 더 바다 쪽으로 나가 둥둥 떠다녔다. 해수욕을 처음 해 본 희야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느낌이 너무 좋아, 선유와 호진의 존재조차 잊어버렸다. 바닷물이 철썩거리는 소리, 아이들이 떠들고 웃는 소리, 해수욕장의 안내방송 소리 때문에 선유가 희야를 불러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선유의 눈은 시계추처럼 바쁘게 희야와 성준이 쪽을 번갈아 가며 움직였다.
“여보, 사람이 너무 많아. 희야 놓치면 큰일 나. 당신 수영할 줄 알잖아? 희야 옆에서 같이 놀아줘.”
선유가 호진의 수영복을 꺼내 건넸다. 호진은 “됐어.”라고 손을 내젓고는 반바지를 높게 걷어 올린 후. 천천히 큰 보폭으로 물살을 가르고 희야 쪽으로 다가갔다. 바닷물을 싫어하는 호진은 옷을 다시 갈아입는 것이 귀찮은 모양이었다.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선유는 얕은 바다에도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리 힘이 약해서 균형을 잃고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겁쟁이 선유는 바다에서 희야와 해수욕을 즐기고 싶었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선유는 모래사장에 앉아 눈을 가늘게 뜬 채, 사정없이 쬐는 햇빛을 한 손으로 가렸다. 수박처럼 동그란 수영 모자를 쓴 채 둥둥 떠 있는 희야의 뒷모습, 그 옆에서 튜브를 이리저리 끌어주고 있는 호진을 보며, 선유는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몽상에 빠져들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디를 가나 우리 둘뿐이었는데. 갑자기 일곱 살 여자아이가 나타나 함께 시간을 보내다니. 실감이 나지 않아. 빨간 수영복을 입은 모습이 어쩌면 저리 잘 어울릴까. 깜찍하고 사랑스러워. 우리가 진짜 가족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 될 수 있겠지?’ 선유는 이제 조금씩 꿈을 믿기 시작했다. 저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내 딸이 되다니. 내가 한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그런 자격이 있을까. 선유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가는 눈으로 먼 수평선에 질문을 건넸다.
다음 날 리조트 안에 있는 오션베이는 희야만의 놀이터가 되었다. 호진과 선유는 아랑곳없이,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혼자 뛰어다니거나, 성준의 손을 잡고 놀면서 하루 종일 물놀이를 즐겼다. 호진은 선유의 지시를 따라 희야를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끌까지 따라다니는 게 일이었다. 전날에는 얌전했던 희야가 긴장이 풀린 탓일까. 평소와 다르게 까불거리기 시작했다. 파도 풀에서 한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희야는 호진에게 “아빠, 이리 와.”, “저리 가.” 심지어 “싫어.”라고 말했다. 호진은 당황스러웠다. 작은 여자아이가 자기에게 지시하는 모습이 조금 함부로 구는 것 같이 느껴져 불쾌하기도 했다. 희야가 앞으로 자주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여보, 희야가 나한테 이러라, 저러라 명령하네. 너무 어색하고 기분도 안 좋아.”
호진은 입을 삐죽 내밀며 투정을 부리듯 선유에게 말했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표정을 지을 때가 자주 있었다.
“그랬어? 신기하네. 그런 적은 없었는데. 당신이 편해진 것 같아. 오히려 좋은 신호 같기도 해. 희야가 그만큼 긴장을 풀었다는 뜻일 테니까.”
“그래도 나는 기분이 별로야.”
“어휴, 당신도 아이라서 그래. 그걸 못 봐줘?”
선유는 살짝 눈을 흘기며 호진의 등을 툭 쳤다. 호진은 선유의 기분이 좋았으니 다행이지, 아니라면 한참 동안 비난과 훈계가 이어질 것 같았다.
희야는 방전되지 않는 배터리처럼 하루 종일 오션베이를 휘젓고 다녔다. 혼자 놀아도 지루해하지 않았다. 가끔 선유가 옆에 가서 함께 파도 풀을 타기도 했다. 희야는 파도가 밀려 나오는 앞까지 갔다가 물벼락을 맞고는 다시 튀어나오기를 반복했다. 짜릿해하는 듯했다. 선유는 겁에 질린 얼굴로 “희야야, 거기까지 가지 마.”라고 손사래를 쳤다. 희야 옆에는 호진이 서 있었다. 혹시 희야가 물에 빠지더라도 바로 꺼낼 수 있게. 하지만 호진의 도움은 필요 없었다. 호진은 희야와 놀아주는 일이 그리 힘들지 않게 느껴졌다. ‘이 정도면 아빠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마침 선유의 생일이었다. 선유는 희야에게 넌지시 물었다. “엄마 생일이니까 카드 써 줄래?” 호진은 리조트에서 카드를 파는지 알아보려고 희야와 함께 지하 매점을 샅샅이 훑었다. 그러나 리조트 안에는 카드나 케이크, 생일을 축하할만한 물건은 전혀 없었다.
“그럼, 집에 돌아가서 카드 써줄래?”
“응.”
어느새 희야는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쓰고 있었다. 호진은 그런 희야가 조금 못마땅하게 느껴졌지만, 선유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틀 후 선유 몰래 호진과 희야는 집을 빠져나왔다. 케이크와 카드를 사기 위해서였다. 희야는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라고 노래하며 그 뒤로는 들릴 듯 말듯 얼버무렸다. 호진은 희야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엄마’라고 부르는 걸 들었다. 선유가 호호 불어 끈 초에서 가느다란 흰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갈 때, 희야가 불쑥 작은 흰 봉투를 내밀었다.
“카드구나!”
선유는 기대에 가득 찬 표정으로 봉투를 열었다. 카드 왼쪽 위에 까만 머리통을 가진 큰 남자가, 오른쪽에는 긴 빨간 머리를 묶은 여자가 그려져 있었다. 남자 위에는 ‘아빠’, 여자 위에는 ‘엄마’라는 글씨가 보였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엄마 생일 축하해요. 진심으로요. 그동안 우리 엄마 설거지했지요. 만희 힘들종?
검은 볼펜, 빨간 볼펜, 파란 볼펜으로 희야가 번갈아 쓴 글을 읽으며 선유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틀린 글자마저 귀엽네. 엄마 감동이야! 엄마가 설거지하는 게 힘들어 보였어?”
선유의 질문에 희야는 뺨을 붉히며 배시시 웃기만 했다.
“뽀뽀하고 싶지만, 엄마가 참는다.”
희야는 뽀뽀라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선유와 호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런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듯이. 호진은 그런 희야가 귀여워 보여 ‘허허’하고 웃었다.
소망원에 희야를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선유가 물었다.
“이제 우리, 한 가족이 된 것 같지 않아?”
“좀 그런 것 같기도 해.”
“난 이제 희야를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아. 희야가 조금씩 변해가니까 자신감이 생겨. 이제 희야가 흔들리더라도 난 흔들리지 않을 거야. 당신은 어때?”
“난 아직 뭔가 부족한 것 같아.”
“뭐가 부족한 것 같아?”
“아직 기도의 답을 받지 못했어.”
호진의 말에 선유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채 이해할 수 있다는 듯 끄덕였다.
“그럼, 조금 더 기다릴게. 분명히 곧 답이 올 거야. 이런 중요한 일에 당신이 신중한 게 좋아. 기다리는 게 좀 애가 타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 여행 좋았지?”
“응. 희야가 재미있는 구석이 많더라. 말수는 적은데...”
“그렇지? 당신도 똑같이 느꼈구나.”
선유의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곧 호진의 마음이 정해질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이. 호진도 무엇인가 결정적인 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예감에 전처럼 초조하지는 않았다. 선유의 작은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고, 힘차게 흔들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