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지는 아이

20화 새로운 임무

by 별지킴이

새로운 임무

“여름에 희야와 어떻게 지낼 계획이세요?”

7월 중순, 찌는듯한 더위가 이어지던 어느 날 국장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글쎄요. 지금처럼 매주 한 번씩 만나는 것 말고는 별다른 계획이 없어요.”

선유는 무슨 특별한 계획을 세워야 했을까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대답했다.

“그럼, 열흘 정도 집에서 함께 지내보는 건 어떠세요?”

“열흘이나요? 지금껏 길어야 이삼일밖에 함께 지낸 적이 없는데 희야가 열흘씩이나 저희와 있으려고 할까요?”

“이번 여름에 희야 마음을 꼭 잡으셔야 해요. 여행도 가고 친구들도 만나게 해주세요. 집에 정이 붙도록 만들어야죠.”

“네...한번 해 볼게요.”

새로운 과제가 떨어졌다. 국장은 선유가 예상하지 못한 임무를 내리며 그녀를 또 한 번 앞으로 밀어냈다. 그 지시를 방향타 삼아, 선유는 가본 적 없는 목적지를 향해 지도도 없이 항해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국장을 믿고 한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열흘이라니. 선유는 걱정이 앞섰고 두려움이 뒤따랐다. 열흘 동안 희야와 지낼 생각을 하니 마음의 평형추 한쪽에는 부담감이, 다른 한쪽에는 설렘이 얹혔다. 어느 쪽 추가 더 무거운지는 구별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희야와 정말 가까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열흘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일단 여행을 가보는 게 어때? 한 이틀, 삼일 정도.”

호진과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거제도 어때? 희야가 물놀이를 좋아하잖아. 바다에서도, 실내 물놀이장에서도 신나게 놀 수 있을 거야.”

“좋네. 그럼 남은 시간에는 뭐할까?”

별다른 아이디어가 없는 호진은 선유의 계획이라면 무엇이든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니나랑 자주 만나게 하자. 이번 기회에 더 친해지게. 그리고 거제도엔 비카랑 성준이도 데려가면 어때? 성준이가 있으면 희야가 훨씬 편안해할 거야.”

“좋은 생각이네.”

호진은 선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소망이가 함께 와서 희야가 잘 지냈던 모습이 기억났다.

“여보, 이번 기회에 당신 결정을 해야 해요.”

선유는 의미심장한 어조로 말했다.

“으응...”

호진이 낮게 대답했다.

부랴트 출신인 비카는 최근 이혼 후, 다섯 살 아들 성준을 혼자 키우고 있었다.

“좋아요, 소냐 이모!”

열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도 선유를 ‘이모’라고 부르던 비카는 흔쾌히 승낙했다. 마치 큰 행사를 준비하듯, 선유는 종이에 날짜를 적고 식단과 일정을 꼼꼼히 계획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제도로 떠가기 전까지의 시간을 일기장에 기록했다.


첫째 날 금요일.

아침부터 공기가 끈적였다. 오늘은 조금 특별하게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분주했다. 하루 종일 샐러드, 잡채, 불고기, 해파리냉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요리를 총동원해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희야를 소개하고 싶어 몇 가정을 초대했기 때문이다. 손님들은 먼저 도착해 이야기꽃을 피웠고, 나는 희야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주고, 편하게 대해 달라고 부탁했다.

희야가 거실에 들어서자 “아유, 희야 왔네!” 하며 환한 웃음이 터졌다. 다행히 희야는 크게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그런데 내 옆에 앉자마자,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소망원 이야기를 큰 목소리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손님들은 그저 귀엽다는 듯 미소를 지었지만, 나는 잠시 얼어붙었다. 작년 심리검사 결과에 적혀 있던 ‘주변 분위기 파악이 서툼’이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아,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었을까. 그래도 낯선 자리에서 위축되지 않은 게 다행이라 여겼다. 어쩌면 어색함을 감추기 위한 희야만의 방식일지도 몰랐다.

희야가 예상 밖의 행동을 할 때마다 나는 나름의 이유를 찾아내려 애쓴다. 일곱 해 동안 소망원에서 지내며 쌓인 희야의 세계를 나는 아직 다 알지 못한다. 그저 함께 지내며 조금씩 알아가면 된다고 스스로 달랜다. 사람들은 말한다. ‘커서 입양된 아이는 어렵다’고. 하지만 정작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힘든 건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나는 그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도, 눈앞의 작고 반짝이는 행복의 신기루에 자꾸 마음을 빼앗긴다.

둘째 날 토요일.

식사 후 우리는 니나 아파트 단지 안 분수대로 향했다. 아이들은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서 물보라를 흩날리며 뛰어다녔다. 아이들은 여름 한복판의 자유로운 물고기 같았다. 그 속에서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양쪽으로 묶은 희야만이 섬처럼 서 있었다. 소망원에서 물총 싸움을 하던 때처럼, 온몸으로 물을 맞으면서도 자리에 못 박혀 있었다.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나도 저기 들어가고 싶은데’ 하는 마음이 비치는 듯했다. 낯선 환경에 놓일 때마다 주눅이 들고, 어깨가 오므라드는 아이. 언젠가는 저 아이들처럼 당당하게, 아무 걱정 없이 뛰어놀 수 있을까. 나는 희야가 그들 속으로 달려 들어가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을 상상했다. 희야는 몇 번이나 나를 돌아보며 눈을 맞췄다. 나는 “같이 놀아!” 하고 손짓을 보내며 미소 지었다. 마음이 저릿했다. 혼자 지내온 세월의 무게가 너무 큰 것일까. 하루빨리 든든한 엄마가 되어, 그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다.

셋째 날 일요일.

희야와 두 번째로 교회에 갔다. 사람들이 다가와 “아유, 예쁘다.”, “매력 만점이네.”, “반가워.” 하며 말을 건넸지만, 그 말들이 희야에게는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몸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어깨를 딱딱하게 굳힌 채 눈을 내리깔았다. 아마 이렇게 많은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적은 없었을 것이다. 식사 시간에도 희야는 조용히 수저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족끼리 둘러앉아 식사하는 풍경이 아직은 낯설고 어색한 듯했다. 그 작은 얼굴 위로 ‘나는 누구와 함께 있는 거지?’라는 물음이 스쳤다.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홈플러스에 들러 전에 약속했던 네 발 자전거를 샀다. ‘희야가 자기 자전거를 가지면, 집에 오는 게 조금은 더 즐거워질지도 몰라.’ 그런 마음으로 고른 빨간색 자전거는 희야에게 꼭 어울렸다. 희야는 곧장 자전거에 올라 공원 옆 도로를 달렸다. 작은 바퀴가 어둑해진 도로 위를 그리며 굴러갈 때, 나는 괜스레 가슴이 벅차올랐다. 벌써 내 딸이라도 된 듯한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자 소파에 앉은 희야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내가 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희야야, 기분이 안 좋아?”

“졸려요. 빨리 잘래요.”

짧게 대답하는 희야의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희야, 울고 있니?”

“아니요. 그냥 졸려요.”

“혹시… 친구들 보고 싶어?”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희야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목이 메어 울음이 터져 나오자, 나는 가만히 희야를 끌어안았다. 그 조그만 가슴이 들썩이며 뜨거운 눈물이 내 손등 위에서 흘러내렸다.

“소망원에 보내주세요… 가고 싶어요.”

“그래…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까, 내일 갔다가 수요일에 다시 오자. 응?”

나는 애써 다정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희야의 울음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있자니 마음이 흔들렸다. 희야의 삶을 바꿀 권리가 과연 나에게 있을까. 이 아이가 감당해야 할 상실의 무게와 입양으로 얻을 수 있는 새 삶, 그 둘 사이에서 나는 끝없이 저울질했다. 하지만 결국 마음을 다잡았다. 희야에게 단 하나라도 좋은 변화가 생긴다면, 그 대가로 감당해야 할 상실쯤은 언젠가 시간이 덮어줄 거라 믿고 싶었다. 남편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의 마음에도 변화의 바람이 스치고 있었다. 다만 걱정되는 건 희야를 소망원에 다시 보냈을 때, 과연 다시 집으로 돌아와 줄까 하는 것이다.


넷째 날 월요일.

아침에 국장님께 전화를 걸어 어젯밤의 일을 말씀드렸다.

“희야, 바꿔주세요. 제가 얘기해 볼게요.”

구원투수처럼 나서주는 국장님의 목소리가 든든했다.

“여보세요.”

희야가 낮고 약간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스피커 너머로 국장님의 차분한 말이 들려왔다.

“희야야, 지금 소망원에 옴이 퍼졌대. 언니, 오빠들이 병원에 갔어. 네가 오면 옮을 수도 있어서, 이번엔 안 가는 게 좋겠어. 알았지?”

“네...”

“엄마, 아빠랑 재미있게 놀다 와.”

“네...”

통화가 끝나자, 희야의 표정에 약간 두려운 빛이 떠올랐다. ‘옴’이라는 단어가 아이의 머릿속에서 무겁게 자리 잡은 듯했다.

“옴이 뭐야?”

내가 묻자, 희야는 금세 표정을 굳혔다.

“되게 아픈 거예요. 작년에도 옴이 퍼져서 언니들이 병원에 갔어요. 등이랑 얼굴에 물집이 생기고, 밤마다 가렵다고 울었어요. 너무 징그러워요.”

그 기억이 얼마나 생생한지,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그 말을 끝으로 소망원 이야기는 쑥 들어갔다. 아이들에게는 괴로운 병이겠지만 오늘만큼은 그 ‘옴’이 고마웠다. 또 한 번의 위기를 그렇게 넘어갔다.

오후에 비카가 성준이를 데리고 왔다. 일주일 동안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기로 했다. 그래야 희야가 쓸쓸해하지 않을 것 같았다. 희야에게는 곁에서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아이가 필요했다. 성준이는 볼살이며 배까지 동글동글한, 귀여운 다섯 살 남자아이였다. 성격은 조금 예민했지만,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오후에는 희야, 성준이, 그리고 니나와 함께 ‘방방이’라 불리는 트램펄린 놀이장에 갔다. 생전 처음 가본 곳이었다. 넓은 실내에 노랑, 파랑, 초록의 매트가 층층이 깔려 있고, 벽면 스크린에서는 신나는 동요가 흘러나왔다. 그곳엔 우리밖에 없어서, 공간이 온통 세 아이의 세상이었다. 희야는 단연 압도적이었다. 니나도, 성준이도 희야의 에너지를 따라가지 못했다. 희야가 솟구칠 때마다 공기가 한순간 멈추는 듯했다. 물방울

무늬 원피스 자락이 휙휙 날리고, 탄탄한 종아리가 허공을 가를 때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희야야, 조금만 쉬자.”

내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지만, 희야는 웃으며 다시 뛰어올랐다. 한 시간 넘게 쉬지 않고 뛰어오르는 아이를 보며 나는 벅차서 눈물이 날 뻔했다. 그제의 눈물 많던 아이는 사라지고, 이제는 생기와 웃음으로 가득한 얼굴만 남았다. 저 아이가 정말 우리 딸이 될지도 모른다. 믿기지 않을 만큼 꿈같은 순간이었다.


다섯째 날 화요일.

희야와 성준이를 데리고 실내 스케이트장에 갔다. 희야는 스케이트를 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벽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내딛더니, 몇 바퀴를 돌고 나서는 손을 떼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넘어지지 않으려 살금살금 걷는 두 다리가 참 귀여웠다. 거위처럼 뒤뚱거리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희야는 운동신경이 타고난 아이 같다. 스케이트든 수영이든, 뭐든 배우면 금세 익힐 것 같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상상이 커졌다. ‘운동선수를 시켜볼까?’ 피겨나 테니스는 형편상 어렵겠지만, 그래도 무언가 한 가지는 끝까지 배우게 해주고 싶다. 김연아의 엄마처럼 열성적으로 뒷바라지해줄 자신은 없지만. 희야가 무대 위에서 반짝이는 모습을 상상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이게 바로 부모의 마음일까.’ 자식이 무언가를 해내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이렇게 가슴이 벅찰지 몰랐다.

남편은 희야의 손을 잡고 함께 얼음 위를 돌았다. 나는 스케이트를 탈 줄 몰라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누가 보아도 아빠와 딸이었다. 앞서가는 희야를 뒤에서 천천히 따라가는 남편의 모습에 앞으로 우리가 함께할 평범한 일상이 겹쳐 보였다.

지난 며칠은 꿈처럼 행복했다. 하루하루가 충만했다. 이 아이가 없는 미래는 상상하기조차 싫다. 희야의 웃음 하나하나가 내 세상의 중심을 바꿔놓았다. 내일은 드디어 거제도로 떠난다. 설레면서도 조금 두렵다. 부디 무사히 다녀오기를. 희야의 눈물이 터지지 않기를. 성준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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