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친구들
친구들
“이제부터 매주 희야를 집에 데려오려고 해요. 희야가 솔이랑 같이 온다고 하던데, 아이들을 번갈아 데려오는 건 어떨까요?”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희야가 정을 붙이기 어려울 수 있어요. 그냥 희야 혼자 데려가세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국장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차분하지만 단호했다. 선유는 국장의 말을 따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국장 외에는 상의할 사람도, 구체적인 조언을 구할 사람도 없었다. 국장이 친구를 사귀게 해주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맞다. 니나가 있었지!’ 퍼뜩 머리에 떠오른 니나. 키르기즈스탄에서 온 나디라의 딸 니나가 마침 일곱 살이었다. ‘왜 여태 생각하지 못했지?’ 선유가 처음 희야 얘기를 꺼냈을 때, 니나와 친구가 되게 해주자던 나디라의 말을 선유는 그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좋아요, 소냐! (러시아권 여성들 사이에서 선유는 소냐로 불렸다.) 니나도 혼자라 늘 심심해해요. 우리 토요일에 물놀이 같이 갈까요?”
평소 입양에 관심이 많던 나디라는 흥분한 듯 큰 소리로 말했다.
며칠 후 금요일. 선유는 청소를 깔끔히 마치고 소파에 앉아 시계를 연신 올려다보았다. 현관 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나더니 문이 벌컥 열리며 두 여자아이가 뛰어 들어왔다. 희야와 소망이었다.
“앗, 소망이가 왔네! 어떻게 된 거야?”
“희야가 혼자 오지 않겠다고 했어. 소망이가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국장님이 보내셨어.”
호진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희야보다 소망이가 먼저 다람쥐처럼 날쌔게 거실로 뛰어들었다. 희야와 동갑인 소망이는 항상 선유에게 “업어주세요”라고 했다. 희야보다 몸집과 얼굴이 작은 귀여운 아이였다. 늘 생글거리는 소망이는 애교스럽고 장난기도 많아서 오리 방의 마스코트였다.
소망이 때문인지 희야의 얼굴이 기대로 상기되어 있었다. 아직 저녁 식사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선유와 호진은 아파트 안의 놀이터로 두 아이를 데리고 갔다. 그 시간이면 언제나 놀이터는 네 살부터 열 살 정도 아이들로 북적댔다. 소망이는 작은 몸을 날쌔게 움직이며 그네와 시이소오, 정글짐을 자유롭게 탐험했다. ‘희야가 소망이처럼 밝은 아이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이 선유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날은 희야도 소망이와 달라붙어서 깔깔거리며 놀이터를 휘젓고 돌아다녔다. 놀이터의 그네는 소망원 그네에 비하면 훨씬 낮았다. 아무리 높이 올라 봐야 남자 어른 키 정도였다. 그런데도 희야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자 구경하던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네 위에서 희야는 엷은 미소를 띠며 전에 소망원에서 불렀던 노래를 흥얼거렸다. 희야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노래의 멜로디는 구슬펐다. 선유는 귀를 기울여 가사를 들어보았다.
“아침마다 모여서 재미있게 지내던 사랑하는 유치원을 떠나가게 되었네. 우리, 우리 유치원...”
유치원을 졸업할 때 부르는 노래였다. 희야는 그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다. 선유는 희야가 다가올 이별을 예감하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어쩌면 희야는 아무 생각 없이 불렀을지도 모르지만, 선유는 그 노래에 상실의 의미를 부여했다. ‘희야에게 이별이 슬픈 일로 남지 않았으면. 행복한 미래에 대한 기대가 그 슬픔을 넘어섰으면.’ 선유는 그 순간 입양 후 희야가 행복해하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그네에서 내려온 희야와 소망이가 철봉 쪽으로 달려갔다. 두 아이는 제 키보다 훨씬 높은 철봉의 지지대를 붙잡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팔을 뻗쳐 더 위쪽을 잡으면 곧 두 다리가 따라갔다. 원숭이가 나무를 오르듯이 아이들의 움직임은 날렵했다. 이내 두 다리를 철봉 위에 걸치고 대롱대롱 흔들리며 킥킥댔다. 둘 갈래로 묶은 소망이의 머리카락이 아래로 쳐졌다. 말괄량이 삐삐를 연상시키는 소망이의 모습에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선유는 아이들의 귀여운 몸짓을 찍기에 바빴다. ‘아, 행복하다, 정말 행복해! 아이들과 함께 산다는 게 이런 걸까.’ 선유가 처음 소망원에 갔던 날, 벅차올랐던 순간이 몇 달 만에 되돌아왔다.
저녁 식사 후 선유는 욕조에 물을 가득 채웠다. 아이들이 물속에서 첨벙거리고 물을 튀기며 노느라 까르륵, 히히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선유는 거실에 앉아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희야가 오 분이 멀다 하고 “엄마!”하고 부르면, 소망이도 덩달아 “엄마!”를 찾았다. 희야가 그렇게 선유를 ‘엄마’라 부르며 호출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희야와 소망이는 ‘이거 봐요’, ‘뭐 갖다주세요’ 등 별일도 아닌 일로 계속 선유를 불러댔다. 선유에게 이런저런 일을 시키는 게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물놀이를 마친 희야와 소망이는 금세 곯아떨어졌다.
“아이들하고 지내보니 어때? 행복해?”
선유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호진에게 물었다.
“응, 희야에게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아.”
호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다음 날 아침 선유는 소망이가 화장실에 간 사이 희야에게 물었다.
“희야, 보육원 생각 나?”
“아니요.”
희야가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다음에는 혼자서 올 수 있어?”
“네.”
“혼자 와도 울지 않을 거야?”
“네.”
선유는 그 말에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밝아진 희야의 얼굴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보았다.
아침을 먹을 때 희야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은아가 미국으로 떠났어요.”
“맞아요. 은아가 갔어요.”
소망이도 말을 거들었다.
“언제?”
선유는 놀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미국에서 아빠가 와서 데려갔어요.”
“그랬구나...가기 전에 인사하고 싶었는데.”
빠진 앞니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던 은아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입양 간 집 주소라도 알아서 나중에 희야와 연락하길 바랐지만, 소망원에서는 그런 정보를 알려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아기였을 때부터 함께 자랐는데 이렇게 헤어지고 다시는 만날 수 없다니.’ 선유는 이런 현실이 기막혔다. 입양 대상 아이를 결정하는 일, 위탁 가정으로 보내는 일, 떠나는 날짜를 정하는 일 등 모든 것이 시설장의 권한이었다. 아이들은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짐을 챙겨 평생 지냈던 소망원을 하루아침에 떠나야 했다. 슬픔과 분노, 무력감이 선유의 명치께를 압박했다.
“은아가 떠나서 괜찮아?”
“네. 나도...은아처럼 떠나는 거예요?”
“으응.”
선유는 희야의 표정에서 불안이나 두려움을 읽지는 못했지만, 마음이 착잡해졌다. 한 생명의 뿌리를 뽑아 전혀 다른 토양에 옮겨심는 일, 그것이 아이에게 과연 어떤 의미일까. 그 어마어마한 사건을 조만간 맞이할지도 모르는데 희야의 겉모습은 평온해 보였다. 희야의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희야에게 소망이는 익숙한 세계의 일부였다. 은아와 마찬가지로 아기 때부터 줄곧 같은 방에서 지냈다. 소망이가 곁에 있으니 희야는 쓸쓸하지도, 낯설지도 않았다. 희야가 혼자 올 수 있다고 한 건 그저 신나는 기분 탓이었다. 소망이도 곧 아버지가 데려간다고 했다. 소망원에 맡겨두고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는 아버지였다. 희야는 은아와 소망이가 떠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별로 아쉽지도 않았다. 그것이 희야가 아는 삶이었다. 자신이 떠난다는 것은 너무 막연하고 모호한 일이었다. 언제 일어날지도 알 수 없는,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는, 아직은 현실 밖의 일이었다.
7월의 더위는 맹렬했다. 물놀이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쨍쨍 찌는 날씨였다. 작은 파도 풀장은 이미 아이들로 바글바글했다. 작은 파도가 철썩대는 소리,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고함으로 귀가 따가웠다. 파란색과 노란색 원피스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희야와 소망이가 튜브를 들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선유와 호진은 타일이 깔린 바닥에 큰 타올을 펼치고 앉아, 둘이 노는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희야는 낯선 사람들 틈에서 소망이 손을 꼭 잡고 다녔다.
정신없이 놀고 있는데 호진이 다가오더니 희야와 소망이를 불러냈다. 입구 쪽에서 어떤 아저씨와 아줌마, 그리고 희야 또래의 여자아이가 다가왔다.
“희야야, 인사해, 니나야. 엄마가 말해준 적 있지? 니나야, 앞으로 희야랑 친하게 지내 줘.”
니나는 동그란 고양이 눈을 하고 뺨이 통통한 균형 잡힌 체형의 아이였다. 희야의 눈에 똘똘하고 야무져 보였다. 친구가 생길 거라는 선유의 말에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막상 니나를 보자 희야는 순간적으로 몸과 얼굴이 굳어버렸다. 소망원과 유치원 밖에서 또래의 아이를 만나는 건 거의 없는 일이라 어색하기만 했다. 캠프에서 샛별이를 봤을 때도 그랬다. 새 친구를 억지로 사귀는 건 희야에게 너무 부담스러웠다. 어른들은 세 아이를 섞어 놓고 “재미있게 놀아”라며 풀장 밖으로 나갔다. 희야는 니나와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몰라 쭈뼛거렸다. 니나도 입을 샐쭉거리면서 희야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결국 니나의 아빠가 풀장으로 들어와 니나와 놀아주었다. 그제야 희야와 소망이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시 둘이 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씩씩했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 호진이 다가와 희야와 소망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희야는 파란색의 수영모를 눈길로 쫓으며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선유를 미처 볼 틈이 없었다. 희야는 니나와 친구가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물놀이가 끝나고 함께 식사할 때도 니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일요일이 되어 선유와 호진은 희야와 소망이를 교회에 데려갔다. 희야는 처음 보는 사람이 왜 모두 자기에게 인사를 하는지, 왜 사람들이 하나같이 “아유, 예쁘네”라고 하는지 어안이 벙벙하고 현기증이 났다. 하루 종일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러나 소망원이나 유치원에서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걸 희야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것이 희야에게 얼마나 큰 자제력을 요하는 일인지 선유는 알 턱이 없었다.
유 집사가 희야와 소망이를 차로 소망원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자청했다. 호진이 앞 좌석에 타고 희야와 소망이가 뒷좌석에 앉았다. 선유는 교회 주차장에서 아이들을 배웅했다. 꿈같이 흘러간 이틀이 그리워지고 허전함이 밀려왔다. 차가 천천히 출발해 출구로 빠져나가는 동안 선유는 뒷자리에 빼꼼 솟은 희야의 머리를 놓칠세라 계속 바라봤다. 그 작은 머리가 그리움과 아쉬움을 남기듯 시야를 스쳐 갔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그 머리가 뒤로 돌아서더니 희야의 두 눈이 차 뒷유리를 통해 선유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짧은 시선이 무언의 인사처럼 선유의 가슴에 박혔다. 순간 선유의 가슴에서 뭔가 뭉클한 것이 솟구쳤다. 이 작은 행동 변화에 선유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이제 희야의 마음에 자신이 자리하고 있는 거라고.
선유는 집에 돌아와 전날 찍은 폰 속 사진을 한참 동안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결혼사진이 걸린 바로 밑 소파에 호진이 흐뭇한 미소를 띠고 앉아 있다. 소망이가 호진 왼쪽 허벅지에 머리를 얹고 누워 있었다. 오른손으로 과자를 입에 넣고 장난스레 웃으며. 반 팔 티셔츠가 올라가 배꼽이 훤히 드러났다. 선유는 익살스러운 소망이의 자세에 피식 웃음이 났다. 희야는 호진의 오른쪽에 앉아 몸통을 기울여 얼굴과 등을 호진 오른쪽 가슴에 기댔다. 그리곤 왼팔을 호진 허벅지에 대고 손으로 턱을 괴었다. 호진은 오른손으로 희야의 오른팔을 감싸 안고 있었다. 희야의 표정에는 평소 볼 수 없었던 뭔가 당당한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누가 보아도 영락없는 아빠와 딸이었다. 선유는 한동안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렇게 우리는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입양이 현실이 되어 이런 일상이 정말 가능해질까. 깊은 심호흡을 하며 차에서 뒤를 돌아보았던 희야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