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다시 시작!
다시 시작!
국장은 매일 희야를 찾아오는 젊은 부부와 희야를 먼저 만난 선유와 호진 중 누가 더 적합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희야의 나이를 고려하면 아이가 없는 선유, 호진이 나을 것 같았다. 갓 돌이 지난 아들이 있는 젊은 부부가 희야같이 큰아이를 감당할 정신적인 에너지가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선유, 호진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젊은 부부가 먼저 결정하면 희야를 그 집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열성적이던 젊은 부부가 돌연 태도를 바꿨다. 어느 날 젊은 엄마는 머뭇거리며 “희야를 입양하지 않고 위탁하면 안 될까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국장은 저절로 눈살을 찌푸렸다.
“위탁이라고요? 아직 다른 분들이 결정도 하지 않으셨는데, 희야를 위탁 보낼 순 없습니다. 저희는 희야를 입양할 가정을 찾고 있어요.”
국장은 그들이 희야를 입양하려고 했던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스러워졌다. 혹시 아들을 돌봐줄 누나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그게 조금 꺼림직했지만, 희야에게 동생이 생기는 것도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해서 만나게 한 것이었다. 그런데 희야 마음을 다 흔들어 놓고 이제 와 위탁이라니. 그들을 믿을 수 없었다. 흐릿하게 얽힌 상황을 빨리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선유는 한 달 동안 갑갑함과 슬픔을 가눌 길이 없었다. 가끔 일기에 심정을 토로하는 걸로 마음을 달랬다.
그 부부는 왜 망설이는 걸까. 우리와 같은 이유일까. 그 부부는 무엇 때문에 희야를 입양하고 싶은 거지? 혹시 아이의 누나가 필요해서는 아닐까? 그건 안 될 일이다. 희야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희야만을 위해 입양할 가정은 우리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다음에 가서 우리에게 기회를 달라고 말해봐야겠다. 자신이 없지만 난 희야의 엄마가 되고 싶다. 남편을 좀 더 압박해야겠다. 결정할 기한을 정하든지 해서라도.
한여름으로 접어 들어가는 어느 토요일. 마당에는 뙤약볕이 내리꽂히고 있었다. 아이들은 더위를 피해 방으로 들어가 사방이 고요했다. 선유와 호진은 소망원을 찾아온 첫날처럼 국장과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지나가던 남자아이가 두 사람을 발견하고 “희야 후원자님이다!”라고 소리쳤다. 마당에서 키우는 닭 이 우는 소리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개들이 짖는 소리가 적막을 깨고 들려왔다. 국장은 부드러운 눈길로 선유를 응시한 채 말문을 열었다.
“벌써 희야를 만나신 지 세 달이 되어가네요.”
“그러네요.”
선유가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오늘은 우리에게 기회를 달라고 말해봐야지.’ 선유는 적당한 기회를 찾고 있었다.
“좋은 소식이 있어요.”
“뭐지요?”
선유의 두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엉덩이가 살짝 의자 위에서 들썩거렸다.
“희야를 입양하고 싶다던 분들이 포기했어요.”
“진짜요?”
선유의 동그래진 눈 속에 기쁨이 출렁댔다.
“그분들이 입양은 자신이 없고 희야를 위탁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입양이 아니면 희야를 보낼 수 없다고 했더니 포기하시더군요. 애초에 입양이 절박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위탁이라고요? 그건 안 될 말이죠...”
선유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을 그토록 애를 태웠단 말인가. 마치 갓 연애를 시작한 연인 사이에 방해꾼이 나타나 두 사람을 혼란 속에 몰아넣었다가 아니다 싶으니 내뺀 형국이었다. 역시 그 부부는 아니었던 거야. 선유는 부글부글 화가 들끓었지만, 동시에 무거운 돌덩이가 빠져나간 듯 속이 후련해졌다.
“그런데 희야가 좀 상실감이 있는 듯해요. 매일 찾아오던 후원자가 발길을 끊었으니까요. 이제 희야를 자주 집에 데리고 가셔서 시간을 더 많이 보내세요.”
“네...그런데 지난번처럼 또 울면 어떡하죠?”
“음. 친구를 한 명 만들어주세요. 그러면 희야 마음이 더 빨리 열릴 거예요.”
“친구요?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선유는 머릿속으로 누가 희야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궁리하면서 오리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선유와 호진이 오리방으로 들어서자, 희야는 배시시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달라진 희야의 모습에 선유는 잠시 놀랐다. 젊은 부부가 발길을 끊은 후라 희야가 그들을 반가워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선유와 호진도 찾아오지 않을까 봐 두려워한다는 것도.
“또 닭싸움할래요.”
남자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말했다.
“그럴까?”
아이들은 지난번 닭싸움의 기억이 선명히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한바탕 닭싸움이 끝난 다음 아이들은 마당으로 몰려 나가 물놀이를 시작했다. 지난번에는 망부석처럼 서서 물을 맞기만 했던 희야는 물총을 가지고 와서 장난을 치느라 여념이 없었다. 첨벙거리는 물소리, 히히, 하하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희야의 천진한 웃음도 녹아드는 듯했다. 선유의 가슴에는 다시 가는 희망의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책 읽어주세요!”
물놀이로 젖은 몸을 닦아낸 후 옷을 갈아입은 아이들이 호진에게 몰려들었다. 호진은 성우처럼 목소리 톤을 바꿔가며 책을 읽어주었다. “어흥!” 호랑이 소리를 흉내 내자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자지러지듯 웃었다. 키가 제일 큰 곱슬머리 민우는 아예 배꼽을 잡고 방바닥에 누워 키득댔다.
책 읽기가 끝나자 아이들이 호진의 다리에 매달려 업어 달라고 성화였다. 호진은 아이들을 한 명씩 가로로 등에 태우고 비행기처럼 몸을 빙글빙글 돌렸다.
“와! 재밌다!”
“또 해주세요. 또요!”
아이들이 또르르 줄을 섰다. 어느새 희야도 슬그머니 호진 옆으로 가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뭘 해 달라고 한 적이 없던 희야였다. 희야가 “나도 태워주세요.”라고 말하자, 호진은 희야를 가뿐히 등에 태우고 빠르게 오른쪽으로 회전했다. 희야의 몸이 공중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희야는 입을 벌리고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선유는 그런 희야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두요, 저두요!”
아이들의 재촉에 호진은 할 수 없이 희야를 내려놓았다. 아쉬웠던지 희야가 선유에게 다가와 “업어주세요.”라고 말했다. 선유는 믿어지지 않아 눈을 둥그렇게 떴다.
“엄마 잘 못 업는데...자, 이리 와 업혀 봐.”
선유는 아이를 업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희야는 그리 무겁지 않았지만, 일곱 살이나 되는 희야를 업는 게 여전히 어색했다. ‘더 어릴 때 만났으면 많이 업어줬을 텐데. 입양하면 힘들어도 업어줘야지.’ 선유는 속으로 다짐했다.
저녁 시간이 되어 아이들이 우르르 식당 건물로 몰려갔다. 슬리퍼로 갈아신고 들어가야 했지만, 아이들은 신발을 어지럽게 벗어두고 맨발로 들어갔다. 식당 바닥은 누런 장판지가 깔려 있었고 식탁이 두 줄로 놓여 있었다. 식당 안은 방이 두 개로 나뉘어 있었고, 한쪽이 살짝 높아 보였다. 선유는 60명이 넘는 아이들과 직원들이 함께 식사하는 풍경이 언제봐도 북적대고 정겹게 느껴졌다.
국 냄새와 반찬 냄새가 솔솔 풍겼다. 갓 지은 밥에서 흰 연기가 피어났다. 아이들이 식판을 가지고 줄을 서자, 매일 식당으로 출퇴근하는 아주머니들이 “많이 먹어”라며 밥과 국, 반찬을 담아주었다. 반찬은 늘 다섯 가지 정도로 풍성했지만, 아이들은 늘 한두 가지 반찬만 담았다. 밥도 절반만 담았고 국은 아예 받지 않았다. 그조차 다 먹지 않는 아이가 많았다. 희야도 숟가락을 들기가 무섭게 금세 내려놓았다.
유치원 아이들 옆에는 선생님이 앉아 “골고루 먹어야지.”라며 반찬을 숟가락에 얹어주고 직접 먹여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억지로 밥과 반찬을 입안에 쑤셔 넣고 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자리에서 금세 일어났다. 식사 시간이 채 5분이 되지 않았다. 식당은 소망원에 있는 아이들을 한꺼번에 다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 중학생들, 심지어 고등학생들도 있었다. 중고등학교 아이들은 선생님들과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 남자아이 중 눈빛이 사납고 서늘한 몇 아이가 선유의 눈에 들어왔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그 아이들의 가슴에 박힌 상처가 보이는 것만 같아 선유는 늘 마음이 아렸다.
밥을 대충 마친 희야는 선유와 호진을 내버려 두고 계단을 올라 옆 방으로 갔다. 그리고 어떤 남자 선생님 앞에 가더니 한쪽 다리를 척 들어 올려 식탁 위에 올려놓는 것이 아닌가! 그 선생님과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지 평소에 볼 수 없었던 함박웃음까지 지으면서. 대담하고 거침없는 희야의 자세를 지그시 지켜보면서 선유는 ‘까도 까도 알 수 없는 매력이 넘치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희야가 딸이 되어서 저렇게 천진한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그려져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시끌벅적했던 식사 시간이 끝나고 선유가 희야에게 “엄마 아빠 바래다줄래?”라고 말을 건넸다. 희야가 몸을 일으키니 아이들이 덩달아 일어나 따라나섰다. 전에는 현관까지만 나왔던 아이들이 앞다투어 신을 신었다.
“어디까지 가요?”
“정문까지.”
아이들이 손을 맞잡고 선유와 호진을 둘러싸고 걸었다. 폴짝거리며 뛰다시피 정문까지 도착했을 때, 희야는 “차 타는 데까지 갈래요.”라고 말했다. 선유는 놀란 듯 어깨를 움찔했다.
“고마워, 희야야. 근데 거긴 너무 머니까 여기까지만 와도 돼.”
선유는 무릎을 굽히고 희야를 꼭 껴안았다. 희야는 선유 품에 들어가자 담요처럼 포근하게 감싸였다. 희야가 선유의 품에 안겨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희야는 영 어색했지만, 왠지 싫지는 않았다. 따뜻함과 아련한 설렘이 속에서 차올랐다.
“당신도 안아줘요.”
선유의 말에 호진이 희야를 안았다. 희야는 온몸이 간질거렸지만 차마 몸을 빼지는 못하고, 얼굴을 옆으로 돌리며 목을 길게 쑥 뺐다. 희야는 선유와 호진이 실망해서 다시 오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남은 후원자는 그들뿐이었다. 그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희야야, 다음에 아빠, 엄마 집에 올 거야?”
“네. 솔이 언니랑 갈 거예요.”
초등학교 2학년인 솔이 언니는 희야에게 든든한 존재였다. 기가 센 영은이 언니나 다연이와 싸움이 붙으면 늘 희야 편을 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정문에서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준 후, 선유와 호진은 초록색 벼가 병사들처럼 곧게 늘어선 논길로 들어섰다. 아쉬운지 선유는 뒤를 돌아보았다. 호진도 함께 희야의 뒷모습을 찾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벌써 저만치 뛰어가 있을 줄 알았던 희야가 달리다 말고 뒤를 돌아보더니 손을 흔드는 게 아닌가! 선유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섰다. 희야는 몇 번을 반복해서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여보, 이게 뭔 일이야! 희야가 돌아보다니! 나 기분이 너무 이상해. 뱃속에서 뭔가가 출렁대는 것 같아. 이제 희야의 마음이 열리고 있는 걸까?”
“글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호진은 한 달 동안 심란해하던 선유가 들떠 있는 모습이 못내 반가웠다. 그런데 갑자기 선유가 웃음기를 거두더니 움직이지 않은 채 호진의 눈을 또렷이 응시했다.
“여보, 우리 이제 결정을 해야 해. 난 희야 입양하고 싶어. 당신만 마음을 정하면 돼. 무엇을 망설이는 거야?”
선유의 목소리에는 오늘 결판을 내겠다는 결연함이 담겨 있었다.
“아직은 확신이 없어...”
“무슨 확신? 희야가 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안 들어?”
“들긴 해.”
호진은 희야를 등에 태우고 비행기를 태워줄 때의 짜릿한 기분을 떠올렸다.
“그런데?”
“내가 아빠 역할을 잘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희야한테 우리 가정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런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언제까지 주저만 할 거야? 일단 부딪혀봐야지. 난 그러기로 했어.”
선유는 여느 때와는 달리 강한 어조로 말했다. 호진은 순간 강요당하는 듯한 압박감을 느껴 가슴이 답답해졌다.
“기도하고 있으니까 조금 더 기다려줘. 확실한 응답이 주어지면, 결정할 테니까.”
선유는 난처해하는 호진의 표정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당신은 망설이다가도 일단 결정하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니까. 대신 너무 오래 기다릴 순 없어. 늦어도 여름이 끝나기 전에는 결정해야 해. 그건 약속할 수 있어?”
“그러도록 노력해볼게.”
선유는 원망스럽다는 듯 살짝 눈을 흘긴 후 손을 내젓고는 발걸음을 떼었다. 호진은 선유의 뒤를 바짝 따라붙으며 그녀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
“미안해, 빨리 결정 못해서.”
“당신 맘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
선유는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호진도 따라 고개를 들었다. 가는 새털구름 바다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