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지는 아이

22화 또 다른 난관

by 별지킴이

또 다른 난관

여름까지 희야의 입양에 소극적이었던 호진은 선유의 결정이 확고하니 이미 결론이 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선유의 확신이 꺾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그러나 호진은 최종 결정은 가장인 자신이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선유가 종종 이렇게 말해왔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가장이니까 결정에 대한 최종 책임은 당신이 지는 거야. 당신은 결정이 느리지만, 한번 결정하면 후회하는 법이 없잖아. 그래서 내가 기다리는 거야.”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호진은 명치가 살짝 조여드는 듯한 감각을 느끼곤 했다. ‘쉬운 결정은 자기가 다 하고 어려운 일만 나에게 떠넘기려는 건가?’라는 생각은 한 번도 떠오른 적이 없었다.

“희야가 아빠를 많이 닮았어요. 희야가 진짜 딸 같은 느낌이 드세요?”

사람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꺼냈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정말 그런가?’ 계속 듣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희야가 당신을 묘하게 닮았어. 특히 당신의 약간 뭉툭한 콧날과 넓은 턱, 그리고 사슴같이 선량해 보이는 눈이 희야와 닮았어. 내가 당신 그 눈에 반했잖아? 나랑 다니면 사람들이 아무도 엄마라고 생각 안 할 걸. 근데 당신하고 있으면 누가 봐도 아빠하고 딸이야. 참 신기하지? 다른 입양 가정도 아이가 엄마든 아빠든 한쪽을 닮았더라고.”

선유도 이런 논리가 입양할 결심할 수밖에 없는 근거라고 여기는 듯했다.

조금씩 희야에게 마음이 열려가던 호진에게 여름 여행은 결정적인 계기였다. 바닷물과 파도 풀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던 활발한 희야의 매력이 호진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뭔가가 여전히 부족했다. 호진은 자신감이 없었다. 아빠가 된 모습이 도무지 그려지지 않았다. 어떤 아빠가 되고 싶은지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대로 덜컥 희야를 입양해도 될까?’ 호진은 부모가 되는 일이 얼마나 큰 책임인지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 책임감이 점점 무게를 더해갔다. 결정적인 계기가 필요했다.

9월의 어느 아침이었다. 호진은 출근 준비를 마치고 구운 토스트에 치즈를 얹어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토스트가 구워진 고소한 향이 부엌에 은은히 퍼졌다. 선유는 언제나처럼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아침잠이 많은 선유는 호진의 출근길을 배웅한 적이 거의 없었다. 호진이 토스트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머릿속에 성경 구절 하나가 떠올랐다.

“마리야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이런 일은 호진에게 가끔 일어나곤 했다. 아무런 준비도 없는데 갑자기 툭 하고 성경 구절이 의식 위로 떠오르는 일이었다. 그런 현상을 호진은 성령이 말씀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호진은 토스트를 내려놓고 거실의 책장에서 성경책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마태복음 1장 20절을 찾아 눈으로 읽어 내려갔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호진에게는 그 음성이 마치 천둥처럼 들려오는 듯했다. “호진아, 희야를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 아이는 내게 네게 맡기는 내 딸이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호진의 마음에서 의심의 안개가 순식간에 걷힌 것이다. ‘주님이 희야를 데려오라고 하시는 거야. 내 딸이라고 하셔.’ 지금까지 과연 잘 키울 수 있을까, 입양하는 게 하나님의 뜻일까 하던 망설임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오랫동안 가지 위에 가만히 앉아 있던 새가 포르르 날아올라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그날 저녁 호진의 말을 들은 선유는 “드디어 답 온 거야? 와, 이제 됐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 말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어?”

“확 풀렸지. 이제 고민 끝난 거잖아.”

“이제 진짜 아무 걱정도 없어?”

“응. 생각해보니까 내가 괜히 겁먹고 있었던 거였어. 이제 안 무서워.”

“너무 잘됐다 여보. 이제 서류 준비하자.”

선유는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양손을 마주 잡으면서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해요”를 반복했다. 호진은 그런 선유가 이제는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선유의 전화를 받은 임 소장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층 밝아졌다.

“결국 결정하셨네요! 축하드려요. 사실 못하실 줄 알고 저도 걱정 많이 했거든요.”

임 소장도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이제 서류 준비를 시작하셔야 해요. 할 일이 꽤 많거든요. 먼저 입양 에세이부터 쓰세요.”

“입양 에세이가 정확히 뭐예요?”

선유는 호기심과 긴장이 뒤섞인 말투로 물었다.

“왜 입양하려는지, 아이를 어떻게 키울 계획인지, 지금까지 진행한 절차는 어땠는지 쓰는 거예요. 희야랑 지낸 일들도 자세히 적으면 도움이 되고, 사진도 있으면 다 첨부하세요.”

임 소장은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했다. 마치 당황하지 말라고 선유의 손을 붙잡아주듯이.

“네. 알겠습니다.”

선유는 문제없다는 듯 힘있게 대답했다.

선유와 호진은 일주일이 넘도록 입양 에세이를 쓰느라 정신없이 매달렸다. 4월부터 8월까지 다섯 달 동안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첫 만남에서 보인 그리움으로 가득한 눈빛, 홈플러스에서 갑자기 “엄마!”라고 불러 놀랐던 순간, 집에 처음 와서 흘렸던 눈물, 캠프에서 주눅 든 모습, 다른 부부가 나타나 마음이 흔들렸던 일, 그리고 희야가 보여준 넘치는 에너지까지...에세이를 쓰다 문득 선유는 생각했다. 희야를 입양하는 일이 어쩌면 희야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선유는 생후 이틀 만에 생모에게서 떨어져 7년 동안 가정의 품 밖에서 자라야 했던 희야를 떠올리며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우리에게 올 아이였는데, 우리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구나...’ 7년이나 홀로 살아온 아이를 이제는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선유는 서둘러 가정의 울타리 안에 희야를 들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아이들에게서 희야를 떼어 옮기는 일에 대한 고민도 점점 옅어졌다. 어쩌면 그것은 희야가 더 튼튼한 뿌리를 내리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일지도 몰랐다.

선유는 법적으로 입양이 확정되는 순간부터 희야의 행복이 시작될 거라는 생각에 조금도 의심이 없었다. 그동안 희야에게 부족했던 사랑을 폭포수처럼 부어주리라고 굳게 마음먹었다. 선유는 입양 후 벌어질 일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했다.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설사 누군가 진실을 말해주었더라도 장밋빛 환상에 빠진 선유의 귀에는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때는 몰랐다. 입양이 결혼처럼 현실이라는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희야같은 큰아이의 입양이 행복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큰 환상인지도.

선유와 호진은 에세이와 함께 다른 서류들을 준비해 법원에 제출했다. 소득증명서, 범죄 관련 증명서, 심지어 마약을 한 적이 없다는 증명서까지 준비해야 할 서류가 엄청나게 많았다. 서류를 모두 제출한 뒤, 임 소장은 말했다.

“최소 몇 달은 걸릴 거예요.”

선유는 희야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법원 허가가 날 것이라고 믿었다. 이제는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될 거라고도.

그러던 어느 날, 임 소장에게 뜻밖의 전화가 걸려 왔다.

“희야 엄마, 문제가 생겼어요.”

이제 임 소장은 선유를 자연스럽게 ‘희야 엄마’라고 불렀다. 선유는 ‘또 무슨 일이야?’ 싶어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데요?”

“지난번에 했던 심리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소장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지난 6월에 진행했던 그 심리검사였다.

“희야 아빠는 괜찮은데, 희야 엄마가 히스테리와 우울 지수가 높게 나왔어요. 이 상태라면 입양이 어려울 수 있어요.”

“네?”

선유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데 우울이라니, 히스테리라니. 그리고 입양이 어려울 수 있다니?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이 다시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하죠? 심리검사 결과 하나로 입양이 안 될 수도 있단 말인가요?”

선유는 처음으로 임 소장에게 항의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진정하세요, 희야 엄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상담소를 하나 연결해 드릴 테니 심리상담을 받으세요. 상담사분이 소견서를 써 주면 그걸 서류와 함께 법원에 제출할 겁니다. 소견서가 중요하니 상담은 성실히 받으셔야 하고요.”

임 소장의 단호하면서도 차분한 설명을 듣고서야 선유는 뛰던 가슴을 겨우 진정시켰다. 상담을 받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어렵사리 희야의 입양을 결심한 만큼, 이 정도쯤이야 못할 게 없었다. 심리검사 때문에 입양을 못 할 수도 있다니 말도 안 돼. 선유는 상담에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게 마지막 난관일 거야. 스스로 다독였다. 여기서 모든 게 어그러질 수는 없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선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낮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남자 상담사는 마흔 중반쯤 되어 보였다. 그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부터 오른손으로 둥글고 작은 공을 느릿하게 굴리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낮았으며, 듣는 이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힘이 있었다. 상담사는 자신이 정신분석을 공부했으며, 앞으로 선유를 정신분석적 기법으로 상담할 것이라고 차분히 설명했다. 손안의 공을 굴리는 동작이 그의 분석 과정에 어떤 도움이 되는 듯해 보인다고, 선유는 어렴풋이 짐작했다.

“지금 무엇이 가장 힘드신가요?”

“음...”

선유의 눈가에 서서히 안개가 차올랐다. 뜨거운 무언가가 목울대를 밀어 올리며 얼굴 전체로 번져갔다.

“저희 부부가 입양을 준비 중인 아이가 있어요. 지난 4월부터 꾸준히 만나왔고, 최근에야 입양을 최종적으로 결정했죠. 그런데 심리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서 입양이 무산될 수도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상담받게 되었어요...정말 입양이 안 되면 어떻게 하나...”

말을 잇는 도중 터져 나온 눈물이 선유의 뺨을 타고 조용히 흘러내렸다.

“지금 흘리시는 눈물, 그 의미가 무엇이라고 느끼세요?”

상담사는 차분한 목소리를 유지한 채, 손안의 공을 천천히 굴리며 물었다.

“음...우리가 아이를 입양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아이는 가족을 얻지 못한 채 남게 되겠죠. 그런 생각을 하면 너무 슬퍼요.”

선유는 그 순간에도 자신 안에서 치밀어오르는 상실감과 슬픔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했다. 그녀의 머릿속을 채운 것은 오직 희야가 불행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뿐이었다. 희야는 마치 행복한 동화에서 비극의 주인공으로 내던져진 듯했다.

“이렇게 간절히 바라고 계시니 잘 되겠죠.”

“정말...그럴까요?”

상담사의 다독이는 말이 선유의 슬픔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상담사는 이어서 선유의 삶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더 건넸다. 선유는 어느새 중학교 1학년 때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일, 우울증 끝에 임신을 포기하고 입양을 꿈꾸게 된 과정, 희야를 만나며 겪었던 감정의 파고까지 마치 길게 읊조리는 독백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상담사는 고개를 약간 숙인 채 테이블을 응시하며, 오른손으로 공을 계속 굴리면서 선유의 짧은 인생사를 묵묵히 들었다.

몇 차례 상담을 이어가자 선유의 마음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몇 회기가 지나자, 상담의 초점은 입양 문제에서 점차 선유 자신의 불안을 탐색하는 쪽으로 옮겨갔다. 상담사는 정신분석가라서인지 자주 선유가 꾸는 꿈에 관해 물었다. 선유는 이번 기회에 자신을 오래 괴롭혀온 불안의 근원을 찾아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상담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공회전하는 자동차처럼 제자리만 맴돌았다.

상담을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임 소장의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희야 엄마. 이제 법원에 서류를 제출하려고 해요. 상담사분이 소견서를 잘 써 주셨어요. 이 정도면 충분할 거예요.”

“정말요? 아...다행이에요.”

선유는 ‘후...’하고 긴 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이제 얼마나 기다리면 될까요?”

“한두 달, 길면 두세 달.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아직 안심하긴 어려워요.”

“네, 알겠어요. 정말 감사해요.”

법원에 서류를 제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선유는 크게 안도했다. 이토록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온 만큼, 입양 허가가 나지 않을 리는 없다고 선유는 믿었다. 그녀는 이 모든 과정이 결국 희야와 가족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여겼다. 선유는 다시 희야의 손을 꼭 잡고 초등학교 입학식에 함께 서 있을 그날을 꿈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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