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마지막 화. 옮겨지는 두 사람
옮겨지는 두 사람
희야가 유라 고모와 사촌 오빠들을 만나러 안산에 왔던 날, 호진은 D시에서 교회 목사님을 모시고 왔다. 밖은 이미 어두웠고 사람들은 얼어붙은 길을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호진은 중환자실로 들어가기 전에, 의자에 희야를 앉히면서 말했다.
“희야야, 너를 할머니 집에 데려다주고 오면 면회 시간이 끝나버려. 너는 어려서 중환자실에 못 들어간단다. 그러니 잠깐만 여기 의자에 앉아 있어. 아빠 금방 나올 거야.” 호진은 의자에 희야를 혼자 남겨두고 목사님과 중환자실 안으로 들어갔다.
중환자실이 있는 이층 복도에는 불이 거의 꺼져 있었다. 희미한 불빛만 복도 끝에서 희야 있는 곳을 비추고 있었다.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복도 의자에 희야는 홀로 앉아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게 늘어졌다. 희야는 어두움을 무서워했다. 어두운 곳에서는 어디선가 누가 희야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희야는 그렇게 컴컴한 병원 복도에서 혼자 있어 본 적이 없었다. 차가운 공기가 피부에 스며들 듯 공포가 마음을 파고들었다. 양손을 꼭 쥐고 눈앞에 있는 중환자실 안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했다. 그러고 있으면 숨이 덜 가빠졌다. 그래도 등을 타고 식은 기운이 흘렀다.
어른들은 모두 중요한 일을 하고 희야는 왜 혼자 남겨졌는지 몰랐다. ‘왜 아빠는 나를 여기로 데려온 거지?’ 그 생각이 반복되었지만, 희야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선유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날의 복도는 희야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았다. 아무리 할아버지 때문에 경황이 없었더라도 자신을 거기에 혼자 내버려 두다니. 호진은 그날 일을 두고 여러 번 희야에게 사과했지만,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 그 복도의 공기였다. 그 후로 희야는 병원만 가면 그 어두운 복도가 떠올랐다. 하지만 호진이 목사님과 함께 나왔을 때, 희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손을 놓지 않았다.
희야가 오고 이틀째 되던 날, 호진과 어머니, 유라는 강심제를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했다. 그날 오후 환자의 혈압이 급속히 떨어지더니 기계는 심장이 멈춰 섰음을 알렸다. 호진이 중환자실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아버지는 숨을 거두고 난 뒤였다. 호진은 아버지의 두 발을 감쌌다. 차가운 발끝에서 한때 따뜻했던 그 사람의 온기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마음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빠져나가는 듯했다. ‘더 이상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없다...’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는 아버지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이 발끝에서부터 차오르는 것 같았다. 호진의 넓은 어깨가 들썩였고,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하더니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호진의 곁에서 유라는 울음 섞인 소리로 “아빠, 아빠...”를 부르며, 아버지의 온몸을 쓰다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는 더 이상 아버지가 누워 있을 자리가 없었다.
장례식이 치러지는 동안, 희야는 시어머니 댁에서 지운과 영운이 사이에서 끼어 지냈다. 선유는 운명이 참 얄궂다고 생각했다. 소망원을 떠나자마자 희야는 선유와 호진을 못 보고 며칠을 지내야만 했다. 정훈과 결혼할 예비 외숙모가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어서 그나마 안심이었다. 장례 절차를 모두 마친 뒤에도 집에 정착할 수 없었다. 할머니가 혼자 계시지 않게 하느라, 온 가족이 두 달 동안 주말마다 집과 할머니 댁을 오갔다. 선유는 이런 상황이 속상했고, 더 크게는 희야에게 미안했다. 입양되자마자 이런 일을 겪는 아이가 있을까 싶었다. 그때 선유에게는 시아버지를 잃은 뒤의 시어머니를 돌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희야를 위한 시간은 나중에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아직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희야가 느꼈을 감정의 파고를, 선유는 끝내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다.
새해 첫날이었다. 가벼운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하늘은 온통 회색빛이었다. 호진은 희야에게 여기가 현충원이라고 했다. 호진은 할아버지가 군인으로 오래 일하셔서 여기에 계실 수 있다고 했다. 희야는 어제 처음 ‘화장’이라는 말을 들었다. ‘화장’ 후, 호진은 둥글고 커다랗고 매끄러운 흰색 항아리를 들고 왔다. 그 안에 할아버지의 부순 뼈가 들어있다고 했다. 사람 뼈가 어떻게 저런 항아리에 들어갈 수 있는지 희야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항아리를 할아버지가 쓰시던 방에 두고 돌아왔다는 게 다행이었다. 할아버지네 집에 있었으면 희야는 무서워서 한숨도 못 잤을 것이다.
현충원에서의 하루는 희야에게 너무나 지루했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고모부와 두 오빠가 미국으로 떠나서 아이는 희야 뿐이었다. 바닥이 온통 붉은색 천으로 깔려 있고 앞에 커다란 태극기가 걸려있는, 아주 넓은 방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모두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호진도 검은 양복을 입었고, 할머니와 선유, 유라 고모도 검은색으로 된 한복을 입었다. ‘이런 날에는 검은색 옷을 입나 보다’하고 생각했다. 희야만 할아버지를 만난 날 입었던, 분홍 원피스에 흰 스타킹, 분홍색 패딩 점퍼를 입었다. 왜 자기만 검은색 옷을 입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물어보기도 이상해서 가만히 있었다. 혼자만 분홍색인 게 계속 신경 쓰였다.
사람들은 노래를 불렀고 앞쪽에 있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다. 호진도 한번 단 위에 올라가서 뭔가를 했는데, 희야는 무엇을 하는 건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선유 옆에서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기만 했다. 이런 일은 희야에게 익숙했지만, 그날따라 유독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다 끝나고 방을 나갈 때, 호진과 유라 고모가 많이 울었다. 뒤따라가는 선유도 손수건을 눈에 자주 갖다 댔다. 희야는 호진과 선유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슬픈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어떤 느낌인지는 잘 몰랐다. 희야는 슬프지 않았지만, 왠지 침울해져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가족이 있으면 이런 날도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도 이런 일을 많이 겪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은근히 희야에게 스며들었다.
현충원이란 곳은 엄청 넓었다. 희야의 눈이 닿는 곳마다 네모난 회색 돌이 끝없이 줄지어 서 있었고, 그 앞에 형형색색의 꽃들이 놓여 있었다. 군데군데 사람들이 돌 주위에 모여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뼈가 들어있는 항아리를 호진이 들고 버스에 올랐다.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돌아 더 높은 곳에 올라가서야 내렸다. 그곳에는 돌들이 거의 없었다. 새로 갈아놓은 땅이 논처럼 펼쳐져 있었다. 군데군데 눈이 엷게 덮인 데가 있었다. 매서운 바람이 불어서 희야는 장갑을 낀 손이 시렸다. 이미 몇 사람이 와서 땅을 파고 있었다. 땅이 얼었는지 삽질하는 사람들은 땀을 흘리며 매우 힘들어 보였다. 사람들은 파고 있는 구덩이 주위로 모여 둥그렇게 원을 만들었다. 할머니와 호진, 선유, 유라 고모, 희야가 맨 앞줄에 섰고, 그 뒤로 사람들이 몇 겹으로 원을 만들었다.
목사님이 성경책을 펴서 무슨 말인가 한참 하셨다.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듣고 있었다. 유라 고모는 계속 훌쩍거리며 울었고, 호진과 선유도 가끔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노래를 부르고 기도하는 시간도 한없이 길었다. 이 모든 게 언제나 끝날까. 물어볼 사람 하나 없어 희야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을 다문 채 서 있기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가 아팠다. 목사님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이 구덩이에 항아리를 내려놓았다. 호진은 희야 몸의 절반이 되는 가방을, 선유는 핸드백을 희야에게 들고 있으라고 맡겼다. 그리고 차례대로 삽을 들어 흙을 조금 담더니, 구덩이 안으로 던져넣었다. 호진이 항아리 위에 흙을 덮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 장면을 찍었다. 구덩이를 팠던 사람들이 땅을 평평하게 삽으로 다지고 나서야 모든 일이 끝났다. 사람들은 할머니와 호진에게 다가와서 인사를 하고 흩어진 후, 차를 타고 떠났다. 눈발은 거의 그치고 하늘도 엷은 푸른색을 드러냈다.
“나랑 당신이 그때 무슨 생각으로 희야한테 가방을 맡겼는지 몰라.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도 되었을 텐데. 아무리 정신이 없었다고 해도.”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우연히 그날 찍은 사진을 본 선유는 눈살을 찌푸리며 호진에게 말했다. 희야는 침울한 표정으로 무거운 가방을 들지 못한 채, 끈만 붙잡고 거의 땅에 끌다시피 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시아버지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동안, 희야를 제대로 돌아본 사람은 없었다. 컴컴한 병원 복도에서, 시어머니 댁에서, 현충원에서. 희야보다 늘 먼저 챙겨야 하는 일이 있었다. 선유는 이런 일이 입양 초기에 흔하다는 말을, 한참 뒤에야 들었다. 그때의 선유와 호진은 세심하지 못했고, 다른 일들에 관심이 빼앗겨 있었다. 희야를 데려왔으니 이제 괜찮을 거라고, 자기 혼자 지레 안심해 버린 탓이었다. 그 첫 며칠이 아이에게 얼마나 또렷하게 남을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선유는 누구나 미숙한 부모로 출발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보았다. 그래도 그 말이 크게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그날 손님 중에는 멀리 광주에서 올라온 은수도 있었다. 은수가 장례식이 아닌 봉안식에 참석한 데에는, 희야를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토록 선유에게 많이 전해 듣고 사진을 봤어도, 희야를 처음 본 은수는 신기하기만 했다. 저런 아이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다니. 호진과 선유를 닮아서가 아니었다. 호진을 조금 닮은 데도
있었지만, 선유와는 너무 달라서 누가 보아도 엄마라고 믿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은수의 눈에는 희야가 야무지고 똘똘해 보였다. 눈빛이 유난히 초롱초롱했다. 호진과 선유 부부만 보아오던 자리 한 가운데에, 어느 날 갑자기 일곱 살 희야가 끼어든 것처럼 보였다. ‘선유 부부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 아이야. 저들이 앞으로 어떻게 가족을 만들어 나갈까?’ 친구인 만큼, 선유에게 벅찬 일이 되지는 않을지 늘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은수는 선유에게서 지금까지 본 적이 없던 표정을 읽었다. 전보다 당당해진 듯했고, 지켜야 할 것이 생긴 사람처럼 표정이 단단해져 있었다. ‘저것이 엄마가 된 사람의 얼굴인 걸까?’ 은수는 잘 잡히지 않는 미묘한 선유의 변화를 알아내려고 선유와 희야를 번갈아 몇 번이나 쳐다보았다. ‘어떤 과정을 겪을지는 모르지만, 선유는 잘해 낼 거야. 엄마가 된 것이 선유한테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작은 몸집의 선유에게 착 달라붙어 있는 희야의 행동이 우습기도 해서 은수는 절로 미소를 짓곤 했다. ‘나는 나대로, 선유는 선유대로 이제 각자 전혀 다른 경험을 하며 살겠구나.’ 아이 없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잠시 생각해 보다가 은수는 피식 웃음을 짓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늘은 아침에 비해 맑아져 있었고 바람도 잦아들었다. 한복의 벌어진 틈 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고 있었다. 하지만 선유는 추위를 체감하지 못했다. 지난 며칠 동안 몰아쳤던 폭풍이 이제 막 잠잠해졌다. 선유는 아버지의 죽음에서 느꼈던 감동을 다시 한번 경험한 것 같았다. 시아버지는 삼 주의 시간을 신음 하나 내지 않고 묵묵히 견뎌냈다. 인간이 끝까지 견디는 인내에는 뭔가 숭고한 힘이 깃든 듯하다고 느꼈다.
시아버지의 유골함이 봉인될 때, 선유는 하나의 옮겨짐을 목격하는 느낌이었다. 선유의 눈앞에서 시아버지의 영혼과 육체는 각자의 길을 떠났다. 수십 년의 고단한 삶을 마친 영혼은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대로 저 너머로, 육체는 재로 되돌아가며, 세상과 저 너머 사이에서 분명한 옮겨짐이 이루어졌다.
그 순간 선유에게는 문득 톨스토이의 소설『안나 카레니나』의 결말이 떠올랐다. 레빈의 형인 니콜라이가 죽고 나서, 그의 아내 키티가 생명을 출산했다. 선유의 삶에서도 한 사람이 떠나고, 한 사람이 가족 안으로 들어오는 소설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버님의 영혼은 어디론가 옮겨갔고, 희야는 여기로 왔어.’ 선유는 이 연결이 우연이 아님을 직감했다. 선유는 설명할 수 없는 연결감을 느꼈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들어왔으며 자신은 그 사이에 있었다. 삶과 죽음, 떠남과 들어옴이 서로 맞물려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무거웠던 어깨 위로 보이지 않는 날개가 돋는 듯했다. 그 순간 선유는 희야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곧 따라온 호진은 희야의 손을 굳게 잡았다. 희야의 작은 머리가 살랑 흔들리며 선유의 품에 기대었다. 그 따뜻한 느낌 속에서 선유는 문득 깨달았다. 그들은 함께 하는 여정을 이미 시작했음을. 선유에게 희야는 더 이상 동화, 아니면 판타지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반면, 희야에게 미스터리로 가득했던 한 해는 이미 끝나 있었다. 그 미스터리는 함께 풀어가야 할 두 사람의 이야기로 바뀌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