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떠남
떠남
“이제 희야는 입양됐어. 모레 집으로 갈 거야.”
크리스마스 날, 선유와 호진은 케이크와 과자, 오리 방과 펭귄 방 아이들에게 나눠 줄 선물을 들고 소망원에 왔다. 희야가 떠나기 전 마지막 방문이었는데, 희야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아침부터 슬픔이 옅은 안개처럼 선유의 마음 밑바닥에 낮게 깔려 있었다. ‘내가 이런데 희야는 정말 괜찮은 걸까.’ 그날 희야에게서 어떤 감정의 흔들림이라도 포착하려던 선유의 시도는 번번이 빗나갔다. 희야는 마치 영원히 소망원에 머물 아이처럼 아이들 속에 섞여 놀고 있었다.
“입양이 뭐예요?”
호기심이 많은 영은 언니가 물었다.
“응. 입양은 말이야. 아줌마가 희야를 낳지는 않았지만, 진짜 가족이 되는 거야.”
“나도 입양되고 싶어요.”
영은이가 하얀 얼굴을 선유의 어깨에 기대면서 어리광 부리는 투로 말했다.
“나도 희야 집에 가서 살고 싶어요.”
펭귄 방 남자아이들이 동그랗게 둘러앉아 말하는 모습은 먹이를 달라고 입을 벌리고 있는 새끼 새들 같았다. 선유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처해져 그저 “으음...”하며 말끝을 흐렸다. 아이들 틈에서 희야만 데려가는 사람처럼 느껴져, 선유는 미안한 마음에 평소처럼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했다.
아이들은 이틀 뒤 희야와 헤어진다는 사실을 알고도, 별다른 아쉬움을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신나는 일이 생긴 듯 들뜬 분위기였다. 은아가 미국으로 떠날 때, 소망이가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 누구도 미리 정확히 알려 준 어른이 없었다고 선유는 들었다. 떠나는 날이 되어서야 아이들은 은아와 소망이에게 갑작스러운 작별 인사를 했다고 했다. 선유는 희야만큼은 그렇게 예고도 없이 사라지지는 않게 할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희야야, 모레 아빠, 엄마가 데리러 올 거야. 그럼, 집에 가는 거야.”
희야는 잠시 선유를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선유는 이제 희야가 떠날 마음의 준비가 되었나보다고 안심했다.
희정 이모에게 희야의 짐을 미리 챙겨달라고 부탁하고, 선유와 호진은 수십 번은 드나들었을 소망원 정문을 나섰다.
“아홉 달이 참 길었지. 당신은 어때?”
만감이 교차하는 선유는 호진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길었던 것 같네. 이제 끝난 거지.”
무슨 감정 표현을 기대했던 걸까. 선유는 예상했다는 듯 더 이상 호진에게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호진의 관심은 여전히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아버지에게 가 있는 듯 보였다. 선유는 처음 소망원을 방문했던 날을 떠올리며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천천히 스쳐 가는 논바닥은 짧게 깎은 아이의 머리 같았다. 논은 딱딱하게 몸을 움츠려 모진 겨울을 견뎌낼 준비를 마쳤다. 할 일을 마치고 한해의 모든 시름을 비워낸 듯 평화로워 보였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입양을 결정할 때는 고민이 잠을 앗아갔다면, 이번에는 흥분이 잠을 쫓아냈다. 아침부터 선유는 속이 더부룩했고, 위장이 둔하게 굳어 있었다. 너무 기뻐도 소화에 탈이 나는 모양이었다.
“여보, 여보. 오늘 너무 바빠. 내가 먼저 가서 아이들한테 뭐 좀 주문해 먹이고 있을 테니까 당신이 택시 잡아서 와.”
선유는 평소보다 훨씬 빠른 동작으로 말을 쏟아냈다.
“알았어.”
“기차 시간이 몇 시지?”
“일곱 시야.”
“시간이 너무 없어. 서둘러야 해.”
시아버지의 심장은 그날 당장 멎어도 이상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희야는 집이 아닌 안산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첫날부터 집이 아니라 시댁이라니.’ 하지만 이런 상황을 누가 예상했겠는가. 커서 희야가 이날을 어떻게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었다.
소망원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희야를 처음 만났던 첫날이 되살아났다. 입양할 수 있을지 망설이며 집으로 돌아가던 날들이 책장 넘기듯 스쳐 갔다. ‘드디어 이날이 왔어.’ 깊이 심호흡을 한 후, 한동안 와보지 못할 소망원 정경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싱그러웠던 봄의 초록은 어느새 칙칙한 겨울의 잿빛으로 바뀌어있었다. ‘꼭 다시 찾아올게. 조금만 기다려.’
희야는 선유가 얼마 전에 사다 준 파란색 패딩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날 아침 희정 이모는 “오늘 희야 집에 가는 날이지?”라며 희야의 앨범 두 개와 유치원 파일, 옷 몇 벌을 챙겨 놓았다. 희야는 이틀 전 선유와 호진이 다녀갔을 때조차, 정말 소망원을 떠나는 날이 왔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아침에 희정 이모의 말을 듣는 순간, ‘오늘?’이라는 단어가 번개처럼 스쳤다.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밀려왔다. 말로는 붙잡을 수 없는 감각이었다. 9개월 동안 선유와 호진이 정기적으로 희야를 만나러 왔고, 집에도 여러 번 데려갔다. 함께 여행도 했고 제법 많은 추억을 쌓아왔다. 그런데도 지금의 희야는, 어디론가 알 수 없는 먼 나라로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희야는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두려움이 희야의 몸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었다. 이제 무슨 일이 생기는 걸까? 나는 안전한 곳으로 가는 걸까? 부모님이 될 분들이 정말 나를 보호해 줄까? 나중에 다시 소망원으로 데려다 놓지는 않을까? 나는 이제 어디에 속하는 거지?
희야가 챙길 장난감이나 인형은 하나도 없었다. 희야의 것이라고 부를만한 물건은 거의 없었다. 희야는 6월에 만났던 부부가 사 주었던 분홍색 드레스를 가방에 넣었다. 그것만은 유일한 희야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희야는 그때 알지 못했다. 입던 옷 하나, 오래 손에 익은 물건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얘들아, 뭐 먹고 싶어?”
선유가 묻자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대답했다.
“피자요.”
“치킨이요.”
“아이스크림이요.”
아이들은 떠들썩하게 웃고 있었다. 아무도 희야와의 이별을 특별히 아쉬워하는 것 같지 같았다. 늘 이런 장면이 있었다. 그래서 이상하지 않았다. 전에는 희야도 그 아이 중 하나였다. 이제는 희야가 떠나는 당사자가 되어 버렸다. 희야도 딱히 누구를 그리워할 것 같지는 않았다. 희야의 관심은 오직, 이제 자기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에만 가 있었다.
아이들이 주문한 피자, 치킨,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웃고 떠드는 동안, 선유의 마음은 점점 가라앉았다. 커서 입양되는 아이는 이런 식의 이별을 겪어야 했다. 수백 번 떠올렸던 일이 막상 눈앞에 닥치자, 애잔한 슬픔이 차올랐다.
“희야네 집은 커요?”
남자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아니, 별로 크지 않아.”
“희야 집에 놀러 가고 싶어요. 그래도 돼요?”
느닷없는 질문에 선유는 잠시 말을 고르다 곧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럼. 대신 조금 기다려야 해. 큰엄마가 일 년쯤 있다가 오라고 하셨어.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지?”
“네!!”
아이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희야 방 있어요?”
아이들의 질문은 이어졌다.
“응. 노란색 방이란다.”
“와, 보고 싶다.”
“나중에 와서 봐.”
“학교는 어디서 다녀요?”
“집에서 길만 건너면 바로 학교가 있어.”
“걸어서 가요?”
“응.”
“우리는 학교에서 차가 와서 데리고 가요.”
“그렇구나.”
아이들은 희야가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가정에서 지내는 삶이란 어떤 걸까, 희야에게 가족의 개념이 흐릿하듯, 다른 아이들에게도 가정은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을 것이다.
호진이 택시를 타고 도착했다.
“택시 오래 기다리게 할 수 없어. 서둘러 가야 해.”
호진이 선유를 재촉했다. 차를 가져 와 집으로 갔다면 조금은 여유가 있었을 텐데. 중요한 순간이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부산스러워, 선유는 속이 상했다.
“다들 잘 지내야 해. 다음에 만나러 올 때까지.”
“네!! 꼭 다시 오셔야 해요.”
아이들은 합창하듯이 말했다.
“그럼, 물론이지!”
마지막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우르르 방을 나섰다. 선유는 줄곧 희야의 표정을 살폈다. 무덤덤했고, 조금 얼떨떨해 보이기도 했다. 입양하는 이와 입양 당하는 이. 가족이 될 운명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마치 지구 반대편에 떨어진 듯 서로 멀리 있었다.
“희야야, 잘 가.”
“희야야, 잘 가.”
택시에 얼마 되지도 않는 희야의 짐을 싣고 나서 아이들이 희야를 빙 둘러싸고 저마다 한마디씩 인사를 했다. 희야의 입에서는 “잘 있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색한 순간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듯했다. 얼이 빠진 듯 야릇한 미소를 지은 희야가, 가볍게 인사하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선유의 심장이 감전된 듯 저릿저릿했다. 한없이 슬픔이 밀려왔다. ‘탄이는 어디 있지?’ 선유는 불현듯 떠오른 탄이를 생각하며 마당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탄이는 희야의 부재를 알아차릴까? 이 순간에 왜 탄이가 떠오른 걸까. 그날 밤 선유의 다리에 매달려 보호를 청했던 희야가, 드디어 집으로 떠나는 순간에.
“이제 가자.”
택시 뒷문을 열고 희야가 막 올라타려는 순간이었다.
“희야야!”
누군가 희야의 이름을 부르며 건물 안에서 급히 달려 나왔다. 아이들이 물러서자 정옥 이모가 보였다. ‘아 정옥 이모를 잊고 있었네.’ 순간, 선유는 경황이 치여 인사하는 걸 깜빡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모가 부랴부랴 달려 나오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했는가. 정옥 이모가 가까이 다가오자, 이제껏 변화 없던 희야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곧 눈이 그렁그렁해지고, 눈물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정옥 이모는 아무 말 없이 희야를 품에 꼭 안았다. 몇 초 동안 희야는 정옥 이모의 품에서 석고상처럼 서 있었다. 뺨은 여전히 젖어있었다. 아이들은 뭔가 숙연해진 듯 조용해졌다.
“희야야, 잘 가. 아빠, 엄마하고 행복하게 살아.”
희야는 울음을 삼키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선유는 시큰거리는 눈시울로 그 순간을 꾹꾹 눌러 담았다. 맹숭맹숭할 줄 알았던 이별이, 드라마 속 슬픈 장면처럼 느껴졌다. 선유는 희야의 눈물에서 가슴이 쿡 찔리는 느낌을 받았다. 데인 듯이 아팠다. ‘입양은 역시 기쁜 일만은 아니야. 이런 가슴 아픈 작별을 해야 하니까. 우리 희야 많이 사랑해줘야지. 빨리 이겨낼 수 있게 도와줘야지.’ 희야의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주면서 선유는 마지막 다짐을 했다.
“선생님, 너무 감사했어요. 나중에 꼭 놀러 올게요.”
“네, 어머니. 희야 잘 부탁드려요.”
정옥 이모가 선유의 두 손을 꼭 잡고 살짝 힘을 주었다. 희야를 잘 부탁한다는 말이 낯설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부탁으로 무겁게 들렸다.
호진이 앞 좌석에 타고 선유와 희야가 뒷좌석에 오른 후, 오래 기다려 준 택시 기사가 시동을 걸었다. 택시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희야야, 안녕.”
“희야야, 안녕.”
어떤 아이들은 손을 흔들고 어떤 아이들은 차를 따라 몇 걸음 뛰어오기도 했다. 희야는 손을 흔들지 않고 한 번 뒤를 돌아본 후 곧 창밖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호진과 선유가 아이들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들었다. 정옥 이모는 한 아이의 손을 잡고,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정문을 통과한 후 소망원이 점점 등 뒤로 멀어져 갔다. 길옆 논에는 며칠 전 내린 눈이 살짝 흙을 덮고 있었다. 다시 저렇게 논이 굳어 있을 때, 소망원을 다시 찾으리라고 선유는 생각했다. 선유는 마지막으로 뒤를 다시 돌아보았다. 오십여 명의 아이들이 남은 소망원 건물이 먼발치서 떠나는 희야의 행복을 빌어주는 듯했다. 소망원 마당도, 정문도, 하늘 높이 솟은 나무들도 침묵 속에서 희야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희야야, 괜찮아?...친구들하고 헤어져서 슬프지 않아?”
“응.”
희야는 늘 그렇듯 짧게 대답했다.
“정옥 이모랑 헤어질 때는 슬펐어?”
“응.”
희야의 표정이 잠시 흐려졌다 원래대로 돌아왔다. 선유는 이 순간 누구도 희야의 마음을 가늠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희야 자신조차도. 선유는 희야의 손을 꼭 쥐었다. ‘이 손을 절대 놓지 않을게.’ 선유는 속으로 속삭였다.
다행히 희야의 표정에는 슬픔이 가셨다. 아직 어려서일까, 헤어짐에 익숙해서일까, 실감이 나지 않아서일까. 선유는 희야가 시무룩해하지 않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오히려 발그레한 희야의 뺨은, 마치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물든 듯 보였다. ‘희야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이곳을 그리워하게 될지 몰라. 그때까지 희야는 새롭게 펼쳐질 삶에 적응하느라 이곳을 잊고 지내겠지. 이제 집에 가자, 희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