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지는 아이

29화 쓰러진 할아버지

by 별지킴이


쓰러진 할아버지


선유는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전날 쌓인 그릇을 설거지하고 있었다. 부엌 창문 밖으로 잎을 떨군 나무들이 장승처럼 늘어서 있었다. 날씨와 마음의 온도 차가 이리도 다를 수 있다니. 곧 끝날 동화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기분을 느낀 선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행복의 절정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것이리라.

갑자기 폰이 울리며 호진의 이름이 떴다. 아직 학교에 도착하기 전인데, 이 시간에 호진이 전화를 거는 일은 거의 없었다. 선유는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는 예감이 들었다. 선유는 고무장갑을 벗은 후 조심스럽게 폰을 집어 들었다.

“지금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는데.”

평소보다 다급한 호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야?”

“아버지가 아침 식사를 하시다가, 음식이 기도로 넘어가서 의식을 잃으셨대. 지금 중환자실에 계신대. 빨리 가야 해.”

호진은 거의 울먹거리고 있었다.

“정말? 그럼 빨리 기차 시간 확인해봐.”

선유는 올 것이 드디어 왔다는 생각에 머리가 멍해졌다. 호진은 중간 지점에서 만나자며 기차 시간을 문자로 알려왔다. 선유는 곧바로 표를 예매한 후 기차역으로 향했다. 4년 전, 아버지가 췌장암으로 한 달밖에 살 수 없다는 전화를 받았던 날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선유는 시아버지가 회복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얼마 전에 희야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기도해주던 시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조금 더 희야를 보실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몇 개월이라도 더 사신다면. 하필 이때라니, 이것이 정말 우연일까. 그러나 아버지의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선유는 이미 다가올 일에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호진은 달랐다. 중간역에서 멈춰 선 기차의 문을 열고 들어선 호진의 얼굴은 비장할 정도로 굳어 있었다. 호진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우리 아버지 어떡하냐? 돌아가시면 안 되는데...”

호진의 떨리는 목소리에는 간신히 참고 있는 울음이 배어 있었다.

“여보, 마음 단단히 먹어.”

선유는 호진의 큰 손을 꼭 잡아주었다. 호진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가 있었다. 선유가 여러 번 마음을 준비하라고 말해왔지만, 호진은 늘 흘려들었다. 호진은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리는 것조차 피하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버지, 깨어나시겠지?”

호진은 마치 어린 소년이 된 것처럼, 선유의 눈을 바라보며 긍정의 답을 찾는 듯 보였다. 선유는 말없이 호진의 손등을 감싸 쥐었다. 아버지를 먼저 보내본 선유는, 이번에는 호진의 힘이 되어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중환자실 창가 쪽 가운데 놓인 병상에 아버지가 누워 있었다. 목에 호흡기를 단 채 의식을 완전히 잃고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

호진은 아버지의 부어오른 손과 발을 어루만지며 울먹였다. 아버지의 표정에는 어떤 고통의 흔적도 없었다. 어머니 말로는 아버지가 식사 중 갑자기 음식이 기도에 막혀 손써볼 틈도 없이 의식을 잃었다고 했다. 119가 도착해 병원으로 이송되자마자 기도를 뚫는 시술을 했다고 했다. 호진의 눈에 석고상처럼 굳은 아버지의 몸은 다시 움직일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지금 자가호흡을 못 하셔서 며칠 더 지켜봐야겠지만 회복되시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안경을 낀 젊은 의사가 호진에게 유감스럽다는 표정으로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자리를 떴다. 호진은 추운 바깥 날씨보다 더한 냉기가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선고와 같았다. 그러나 호진은 믿고 싶지 않았다. 전날 왜 아버지와 통화하지 못했는지,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죄책감과 아쉬움이 썰물처럼 밀려들었다. 정말 다시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대화를 나눌 수 없을까. 호진은 무엇보다 그것이 슬펐다.

“아버지 돌아가시면 안 돼요. 살려주세요.”

호진은 입술을 끊임없이 움직이며 작은 목소리로 기도했다.

아버지는 삼 주 동안 중환자실에서 홀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호진과 선유는 매주 집과 안산의 병원을 오고 갔다. 그 와중에도 주말에는 희야를 데려와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호진은 곧 집에 올 희야를 떠올리려 해도 마음은 늘 중환자실에 묶여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보호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별로 없었다. 하루에 두 번, 십 분 정도 들어가 “괜찮으세요? 저희 왔어요.”라거나 “아버지, 사랑해요. 빨리 깨어나세요.”라는 말을 건네고, 손과 발을 쓰다듬는 게 전부였다. 호진은 매번 혈압과 맥박수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확인하며, 아직은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꺼져가는 생명 옆에서 자리를 지키기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애통했다. 4년 전 장인이 돌아가실 때, 병실에서 곁을 지켰던 선유가 부러웠다. 사십이 넘은 나이에도 호진에게 든든한 기둥과 같이 의지가 되었던 아버지. 그 기둥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쉽게 돌아가시지 않을 거야’라고 위안하면서도, 호진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선유는 국장과 희정, 윤지 이모가 아이들과의 이별을 잘 준비해줄 거라고 믿었다. 그래도 희야가 오는 날만은 특별하게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희야가 집에 오는 날 간단하게라도 환송식을 해주면 어떨까요?”

선유의 제안을 국장은 딱 잘라 거절했다.

“그냥 조용히 데려가시는 게 좋아요. 다른 아이들도 생각해야 하니까요.”

선유는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했다. ‘남겨질 아이들도 배려하라는 소리구나. 내 생각이 너무 짧았어.’

그래도 칠 년 동안 살았던 집을 떠나는 날이었다. 아기 때부터 한방에서 분유를 먹고 함께 자고 놀며 시간을 보낸 친구와 언니들이었다. 그들과 특별한 의식도 없이 헤어지라는 말이 야속하게 들렸다. ‘그게 정말 나은 걸까. 너무 가혹한 건 아닐까.’ 선유는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지만 더 이상 부탁하지 않았다. 우연히 한 곳에서 만나 자란 아이들에게 이별은 너무나 가벼웠다. 어른들의 판단이 다 옳은 것일까. 선유가 내내 고민했던 질문은 끝내 해소되지 않았다.

그래도 어른들 맘대로 가위로 자르듯 아이들의 인연을 싹둑 끊어버리는 건 못 할 짓 같았다.

“그럼, 희야가 입양되고 나서 다시 방문해도 될까요?”

“한 일 년은 오지 마세요. 여기 잊어버리고 가정에 적응하는 데 집중하세요. 자꾸 여기를 오가면 희야가 정착하는 데 방해가 될 겁니다. 일 년쯤 지나고 나서 다시 방문하시는 건 괜찮아요.” ‘왜 꼭 일 년씩이나 기다려야 할까. 그동안 희야가 아이들을 보고 싶다고 하면 어떡하지?’ 선유는 선뜻 동의할 수 없었지만, 국장을 설득할 어떤 논리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아이들을 많이 입양시켜 본 시설장의 말이니 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려니 했다. 아예 찾아오지 말라고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죽음과 싸우고 있는 시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희야와 곧 가족이 된다는 기대 사이에서 선유는 정신없이 삼 주를 보냈다. 그 사이 미국에 사는 시누이와 조카들이 도착했다. 중환자실에 들어갈 때마다 호진은 시아버지의 귀에 대고 “아버지, 곧 유라가 와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지운이와 영운이도 올 거예요.”라고 속삭였다. 선유가 보기에 시아버지는 정말 딸과 두 손주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마지막 힘을 내는 것 같았다. 혈압이 불안정하게 오르내리는 데도 끈질긴 생명은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었다.

짐을 풀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달려간 유라는 목에 호흡기를 달고 생명의 기척이고는 자취를 감춘 아버지를 보자 왈칵 눈물을 쏟았다.

“아버지, 왜 이러고 있어? 빨리 일어나야지.”

유라가 자기 말이 그저 가망 없는 투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손에 힘을 꾹꾹 주어 아버지의 팔다리를 마사지하고 얼굴을 쓰다듬는 동안, 호진과 선유는 병상 끄트머리에서 슬픔에 잠긴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희야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말에 어리둥절했다. 할아버지는 얼마 전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죽음이라는 게 무얼까. 희야에게 죽음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섬뜩하기도 하고 뭔가 중요해 보였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 뿐이었다. 희야는 무서워서 “죽는 게 뭐예요?”라는 질문도 하지 못했다.

“희야야, 크리스마스 지나고 두 밤 자고 나서 집에 오는 거야. 알았지?”

어느 날, 선유가 달력을 보여주면서 27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응.”

희야는 대답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날짜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희야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처음 만난 날, 미국에 사는 고모, 고모부, 지운 오빠, 영운 오빠와 영상통화로 인사를 나눴다. 그때도 희야가 한 말이라고는 들릴 듯 말 듯 한 “네.”가 전부였다. 얼굴이 까맣고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고모부의 첫 말은 “와, 희야 예쁘게 생겼다.”였다. 희야는 왜 다들 자기를 보고 예쁘다고 하는지 이상했다. 소망원에 살 때는 예쁘다고 말해준 사람이 없어서, 희야는 자기가 예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호진과 선유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은 저마다 희야를 예쁘다고 했다. 희야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밖에 나와서 만나는 어른들은 다 여자아이에게 예쁘다고 말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사촌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건 희야에게 너무 어려웠다.

“아빠한테 여동생이 있잖아.”

선유는 다시 종이를 가져다가 희야에게 사촌의 뜻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여동생이 네 고모야. 유라 고모. 유라 고모한테 아들이 둘 있어. 그 아이들이 너랑 사촌이 되는 거야. 어려워?”

“응.”

선유가 가족 관계를 설명할 때마다 희야의 머릿속은 고장 난 것처럼 멍해졌다. 왜 그런 복잡한 말들이 있는 걸까.

“그래. 지금은 잘 몰라도 돼. 차차 알게 될 거야.”

선유는 설명을 멈추고 희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희야는 할머니 집에서 지운이와 영운 오빠를 만났다. 오빠들은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랐다는데 한국 사람하고 똑같이 생겼다. 그런데 왜 그런지 우리나라 말을 잘 못했다. 희야를 보고 “안녕”하고 씩 웃은 다음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붙이지 않았다. 두 오빠가 하는 얘기는 처음 들어보는 낯선 말이었다. 아침에 어른들이 모두 병원으로 간 후, 희야는 오빠들과 그저 말없이 블록 쌓기 놀이에만 열중했다. 오빠들은 서로 몸을 부딪치고 장난을 치면서 가끔은 소리를 높여 싸우기도 했다. 희야는 은아가 입양될 때 미국이라는 말을 들은 적은 있었지만, 미국에서 온 사람을 실제로 만난 건 처음이었다. 똑같은 피부와 얼굴 생김새를 가진 오빠들이 왜 미국에 살고 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저 오빠들은 왜 미국에 살지? 우리는 무슨 사이지? 사촌이 도대체 뭘까? 가까운 사이일까?’ 희야는 뚝 떨어진 섬에 혼자 있는 기분이었다. 오빠들은 희야에게 친절하게 블록 쌓는 방법을 도와주기도 했지만, 희야의 어깨는 자꾸 움츠러들었다.


오후에 집으로 돌아온 유라는 희야가 아들들과 노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더 좋은 기회에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유라는 못내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선유 역시 희야가 지운이, 영운이와 함께 잘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보아오지 않았으니 지금부터 인연을 쌓기란 쉽지 않을 거야. 외사촌들하고도 거리감이 생기겠지.’ 선유는 형제, 자매 없이 홀로 자라야 하는 희야에게 벌써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첫째를 입양한 후에 둘째, 셋째를 이어서 입양하는 가족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선유는 생각했다. 앞으로 더 이상의 입양은 무리라고. 한 가정이 감당할 수 있는 몫은 다 다르다는 현실을 몇 개월 동안 깨우쳤기 때문이었다.

호진과 선유에게는 희야가 유일한 자식이 될 것이다. 희야가 결혼해 가정을 꾸릴 때까지, 희야에게는 호진과 선유가 전부일 것 같았다. 선유는 이제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준비가 되었다. 그 세계로 들어가는 커튼이 이제 곧 젖혀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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