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지는 아이

28화 입양 허가

by 별지킴이

입양 허가


계절은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 11월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었다. 발밑에서는 낙엽이 바스락거리며 경쾌한 리듬을 만들었고, 은행 열매 냄새가 코를 찔렀다. 떨어진 단풍잎들이 바람을 타고 제멋대로 흩날렸다. 선유는 거의 매주 사람을 만나며 희야를 소개했다. 희야는 태어나서 처음 서울에도 가봤다. 덕수궁에서 노란 은행잎이 얇은 담요처럼 깔린 길을 걷다, 갑자기 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그들은 커다란 검은 우산 아래로 함께 들어갔다. 우산을 든 호진의 어깨 위로 빗물이 흘렀다. 희야를 가운데 세운 채, 선유까지 젖지 않게 하려는 듯 호진은 다른 손으로 선유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선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들처럼 어린아이를 데리고 걷고 있는 젊은 부부들이 많았다. 덕수궁을 산책하고 있는 다른 가족들과 그들은 다르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평범한 세 식구의 모습이었다. ‘이게 바로 내가 꿈꾸었던 모습이야.’ 선유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있었다. 빗물이 스타킹을 적셔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선유는 먼 훗날에도 이날이 기억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란 같은 시간의 결 안에서 추억을 함께 호흡하는 사람들이었다.


“이제 희야 곧 오는 거야?”

전화기 너머 은수의 목소리가 한껏 들떠 있었다. 은수는 희야의 사진은 보았지만, 아직 희야를 본 적은 없었다.

“글쎄, 연말 전에는 올 수 있을 것 같아. 법원에서 이제 연락이 올 때가 됐어.”

선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연락이 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때? 희야랑 친해진 것 같아?”

은수가 되물었다. 그녀는 그동안 희야가 선유의 애를 태운 이야기를 다 알고 있었다.

“친해진 것 같기도 하고...아직 잘 모르겠어. 주말에 자연휴양림을 다녀왔는데, 니나라는 희야 친구가 우리 등에 올라타고 목에 매달리기도 했거든. 남들이 보면 니나가 딸인 줄 알았을 거야. 희야는 속을 알 수 없는 무표정이었어.”

“그래서 또 심란했겠구나.”

은수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야. 이제는...나도 조금 익숙해진 것 같아. 곧 집에 올 텐데 저런 모습도 곧 사라지지 않을까? 아직은 가족이라는 게 뭔지, 헷갈리는 시기인 것 같아.”

선유는 주말에 찍은 사진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될 거야. 지금은 집과 보육원을 오고 가면서 희야가 혼란스럽겠지. 집에 오면 이제 여기가 내 집이구나 하고 마음이 안정될 거야.”

“그렇겠지?”

“그럼. 그래서 기분이 어때? 희야가 곧 올 생각하면?”

은수의 질문에 선유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너무 설레. 사실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는 것 같아 힘들었거든. 뿌리째 뽑아 옮기는 일 같아서. 그런데 올봄 아파트 앞 화단에 옮겨심은 소나무를 보니 희야가 떠올랐어. 저렇게 해마다 자라겠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더라고. 내년 이맘때는 얼마나 변해있을까? 빨리 왔으면 좋겠어.”

“자신감이 많이 생긴 것 같네. 이제 겁나지 않아?”

은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 이제는 그렇게 겁이 나지 않아. 희야가 어떻게 변할까, 우리 생활이 어떻게 달라질까, 그런 기대만 가득해.”

선유의 목소리는 한껏 들떠 있었다.

“뭐가 제일 기대 돼?”

은수는 상담사라도 된 듯 선유의 마음을 탐색하는 듯했다. 선유는 말을 실컷 할 수 있어서 오히려 그런 질문이 반가웠다.

“음, 제일 기대되는 건, 희야가 “엄마!”하고 나를 부르며 들어오는 순간이야. 그 상상만 하면 왜 그렇게 벅찬지 모르겠어. 나를 매일 ‘엄마’라고 부르는 존재가 생긴다는 게 너무 신기해. 그리고 조용하던 집이 달라질 것 같다는 것도, 희야가 조잘조잘 떠들고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기대가 돼. 셋이 여기저기 다니는 거. 그리고 희야가 학교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듣다 보니 나도 부럽다. 딸이 생겨서 좋겠다, 선유야.”

은수가 조용히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도 입양해. 같이 입양해서 키우자.”

은수의 말에 선유는 평소에 하고 싶었던 얘기를 꺼냈다.

“난 못해. 여러 번 얘기했듯이. 애가 크면서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지 조마조마해서 못 해. 애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아마 불안해서 내가 먼저 쓰러질걸. 조카 아플 때도 죽을 것같이 힘들었는데, 자식한테 그런 일이 생기면 어휴, 상상만 해도 끔찍해.”

선유는 더 권하고 싶지 않았다. 입양은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희야는 너희 같은 엄마, 아빠 만나서 정말 복 받은 거야.”

은수는 느닷없이 다른 주제를 꺼냈다.

“그럴까?”

선유는 망설이면서 물었다.

“당연하지! 희야에게는 큰 축복이지.”

선유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갔다.

“정말 그럴까? 난 오히려 반대야. 희야를 못 만났다면 우리 부부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그저 둘이 일하고 여행 다니다 늙고, 누가 먼저 죽으면 외롭게 혼자 살겠지? 아이 키우는 즐거움도 모르고. 난 우리가 더 큰 선물을 받은 쪽 같아. 처음엔 입양이 아이에게 큰 수혜를 주는 거라고도 생각했어. 하지만 진짜 수혜를 입는 건 부모 같아. 그래서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고. 나 좋자고 입양하나 싶어서. 그런데 요즘은 조금 정리가 됐어. 그게 사실이라 해도, 입양이 희야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가져다줄 거라고 확신하지 못했다면, 난 하지 못했을 거야.”

“그러니까 너희 부부한테도, 희야한테도 입양이 복인 거야.”

은수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넘쳐있었다.

선유는 입양이 희야에게 최선이었을까, 삶을 더 나아지게 했을까 거듭 묻곤 했다. 해외입양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의구심이 커졌다. 그들의 입양은 행복보다 상실과 고통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희야와도 자주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그 마음은 여전히 깊은 바다 같았다.

가을도 손님처럼 다녀가고 겨울이 문을 두드렸다. 선유는 가슴에 난로가 켜진 듯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어느 날 아침, 빵과 커피로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들뜬 임 소장의 목소리가 폰 너머로 울려왔다.

“희야 엄마! 희야 입양 허가가 났어요. 축하해요!”

법원 갈 날만 기다리던 선유는 뜻밖의 소식에, 기쁨을 느낄 새도 없었다.

“네? 정말요? 법원에 가지도 않았는데요.”

선유는 어찌 된 영문인지 설명이 듣고 싶었다.

“법원에 가지 않아도 허가가 나는 경우가 있어요. 판사가 서류를 잘 봐준 덕분이죠. 정말 잘됐어요. 이렇게 기쁠 수가.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와, 진짜 믿기지 않아요.”

이제야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날만 기다렸는데, 이렇게 뜻밖의 일이 생기다니.

“이제 뭘 해야 해요?”

“허가는 났지만, 법적 절차가 완전히 끝나려면, 확정판결을 받아야 해요. 한 달 정도 걸릴 거예요. 그래야 진짜 법적인 가족이 되는 거예요.”

“그럼, 그 전에 희야를 집에 데려올 수는 있나요?”

선유가 가장 궁금했던 질문이었다.

“데려올 수 있어요. 언제 데려오실 생각이세요?”

선유는 미리 생각해 둔 대로 재빨리 답했다.

“유치원 방학하면 바로 데려와야겠어요. 이달 말쯤이요. 아, 정말 잘됐어요! 감사해요. 덕분이에요.”

선유는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리 쉽게 해결될 줄은 몰랐다.

“다 희야랑 인연이 있어서 그런 거예요. 희야 잘 키워봐요, 보란 듯이.”

임 소장의 마지막 말은 선유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온갖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봄부터 최근에 있었던 일까지 책장이 넘어가듯 선유의 기억 속에 펼쳐졌다. 마침내 희야가 법적인 딸로 엄연한 가족이 된다는 사실이 가능성에서 현실로 들어왔다.

선유는 곧바로 소망원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 소식을 알렸다.

“어머, 어떻게 그런 일이? 축하드려요. 어머니.”

국장도 예기치 않은 소식에 흥분한 듯했다.

“감사합니다. 도와주신 덕분이에요. 저...희야를 유치원 방학하면 바로 데려오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네, 그럼요. 빨리 데려가시는 게 좋죠.”

불과 한 달이 남았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우선 희야 방을 꾸며야 했다. 여유가 없던 터라, 급히 짐을 빼고 벽지를 바꾸기로 했다. 가구는 입학 전까지 천천히 들여놓으면 될 것이다.


“희야야, 판사님이 희야 입양 허락해 주셨어. 우리 이제 진짜 가족이 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희야는 머리를 끄덕거렸지만, 정확히 무슨 말인지 이해되진 않았다. 마음이 망치로 맞은 것도 같고, 떨림이 느껴지기도 했다. 뭔지는 몰랐지만, 큰 변화가 다가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 섞이는 기분이었다.

“크리스마스 지나고 유치원 방학하면 희야 집으로 올 거야. 괜찮아?”

선유가 희야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희야는 눈을 깜빡이며 잠시 생각했다. 심장이 살짝 뛰었다.

“응.”

말은 작게 나왔지만, 마음속에는 기대와 긴장이 섞여 있었다.

“이제 소망원을 아주 떠나는 거야. 은아처럼. 희야, 마음 준비됐어?”

선유는 다시 한번 물었다.

“응.”

희야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몰랐다. 가방을 챙기는 건가, 마음을 준비한다는 건 뭐지? 모든 것이 막연하기만 했다. 설레기도 하고 약간 슬픈 느낌도 들었다. 은아가 떠나던 날, 아무도 모르고 있다가 얼떨결에 배웅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도 그렇게 가는 걸까. 희야는 언젠가 소망원을 떠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니, 빨리 지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선유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건 조금 귀찮기도 했지만, 동시에 궁금하고 두근거리기도 했다.

선유는 집에 오는 날이 언제인지 몇 번 반복해 희야에게 말해줬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짧아서였을까. 희야는 집에 오는 날이 언제인지 정확히 몰랐다. 만날 때마다 말해주었지만, 희야에게는 말들이 오래 남지 않았다. 그날이 언제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곧’이라는 느낌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모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던 것 같지만, 희야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엔 설렘이 자리했지만,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꿈만 같이 여겨졌다.


희야의 마음이 준비되었다고 확신한 선유는 방을 꾸미며, 초등학교 입학 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쉴 틈 없이 돌아갔다.

“희야야, 네 방은 무슨 색깔로 했으면 좋겠어?”

희야가 누렇게 변한 벽을 가리키며 물었다.

“노란색.”

희야가 자신 있게 말했다.

“노란색! 예쁘겠다.”

며칠 후, 어수선한 창고였던 작은 방은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칙칙했던 벽은 화사한 노란 색으로 탈바꿈했다. 창문에는 초록색 풀밭과 갖가지 색의 꽃들이 그려진 롤스크린이 달렸다. ‘아, 화사하다.’ 선유는 어릴 때 예쁘게 꾸며진 방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혼자 방을 쓰기는 했다. 그러나 눅눅한 곰팡이가 피고, 바닥이 기울어진 방에는 심지어 쌀가마니를 들여놓아서 쥐가 드나들기도 했다. ‘일곱 명이 한방에서 생활하다가 자기만의 방이 생기니, 희야가 얼마나 좋을까. 옷장, 책상, 책장은 어떤 걸로 해줄까.’ 선유는 마치 희야의 나이로 돌아간 듯, 자기 꿈을 대리 충족시키는 행복감을 맛보았다. 선유는 희야와 비슷한 나이에 해외로 입양된 아이가 자기 방 침대에서 자는 첫날 밤, 너무 좋아서 겅중겅중 뛰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분명 희야의 첫날도 그럴 것이라고 선유는 믿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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