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지는 아이

27화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만남

by 별지킴이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만남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소파에 앉은 호진 아버지의 오른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양말을 신지 않은 양쪽 발은 나무줄기같이 검붉은색으로 부어올라 있었다.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얼굴에는 표정이라는 것이 드러나 있지 않았다. 모든 징후는 예정된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남은 건 피할 수 없는 결말이 언제 닥치느냐였다. 하지만 호진은 아버지가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의사가 살 수 있다고 한 이 년의 시간이 거의 다 되었음에도 아버지가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아버님 언제든 돌아가실 수 있어. 당신 마음 준비하고 있어야 해.”라는 선유의 말은 호진의 견고한 마음의 갑옷을 뚫지 못했다.

“저희 드릴 말씀이 있어요.”

호진은 결심을 굳히고 신중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평소와는 다른 호진의 태도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옆에 앉아 있던 어머니도 자세를 고쳐 앉고 조용히 호진을 쳐다보았다.

“무슨 얘긴데 그러냐?”

어머니가 의자에서 몸을 조금 앞으로 당겨 앉으며 물었다.

“저희가 아이를 입양하기로 했어요.”

호진은 망설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 말이 떨어질 때, 선유가 재빨리 두 분의 표정을 살폈다. 호진 역시 두 분의 얼굴에 눈을 고정했다. 그런데 뜻밖에 두 분, 특히 어머니의 얼굴에서 이렇다 할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놀람도, 당황스러움의 기색 없이 잠자코 이야기를 들으려는 모양새였다.

“저희가 4월부터 아이를 만나고 있어요. 곧 법원에서 결정이 날 겁니다. 입양이 거의 확정되면 말씀드리려고 그동안 미리 말씀드리지 못했어요.”

호진이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남자아이냐, 여자아이냐?”

거품이 잔뜩 낀 탁한 물 같은 목소리가 아버지의 목을 타고 힘겹게 밖으로 흘러나왔다. 곧장 아이에 관한 질문이 이어지자, 호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대하실 뜻은 없는 거였다.

“여자아이예요. 나이는 일곱 살이고 이름은 희야라고 합니다.”

“희야, 희야... 그래, 어디서 만났냐?”

아버지는 눈꺼풀이 거의 덮인 한쪽 눈을 힘겹게 깜빡거리면서 이 새로운 소식에 관한 관심을 나타냈다.

“보육원에서 만났어요.”

“사진은 있냐?”

“네. 보여드릴게요, 아버지.”

호진은 폰을 꺼내 두 분 앞으로 다가가, 그동안 찍어두었던 희야의 사진을 한 장씩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누렇게 변한 눈 근육을 최대한 집중해 희야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어머니는 아버지 옆에 더 바싹 다가앉아 얼굴을 폰에 가까이 밀착했다.

“예쁘게 생겼네.”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의 첫마디에 호진은 더 안도했다. 아버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희야의 사진을 쓰다듬으며 초점이 흐릿해진 눈에 더 힘을 주었다.

“너희가...결정했으니...잘 키워라...아이...키우는 게...아주...힘들다...”

숨을 몰아쉬면서 또렷하지 않은 발음으로 아버지가 말했다.

“너희가 알아서 잘 생각하고 결정했겠지.”

어머니도 이 말만 하고 더 이상 부연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호진은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사실 그날은 선유보다 호진이 더 긴장했다. 그는 부모의 말을 거역해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사십이 넘었어도 잔소리와 간섭을 줄이지 않는 어머니에게 저항하지 못했다. 그런 호진에게 부모님과 상의 없이 입양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건 큰 부담이었다. 이렇게 쉽사리 받아들여 주시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다음에...올 때...희야...데리고...와라.”

아버지가 한 마디 한 마디를 힘겹게 내뱉듯 말했다.

“네, 아버지. 희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호진은 퉁퉁 부은 아버지의 두 손을 어루만지면서 고개를 떨궜다.


선유는 혹시나 “아무 상의도 없이 어떻게 너희끼리 결정할 수 있느냐?”, “둘이 그냥 살지 뭐 하러 고생스럽게 입양은 하냐?”, “남의 애를 데려다 어떻게 키우려고 하냐?”는 등 비난이나 질책을 예상했다. 그러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잔뜩 어깨에 힘을 주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가, 힘이 탁 풀어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입양을 미뤄온 것이 두 분 때문이라는 생각이 늘 마음 한쪽에 걸려있었다. 두 분에게 씨도 안 먹힐 얘기라는 걸 알았기에, 선유는 오랫동안 말 꺼내기를 포기해왔다. 두 분이 아이를 기다리지 않았더라면, 희야를 더 일찍 만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선유는 이렇게 입양이 늦어진 건 어쩌면 시부모님 때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더 일찍 용기를 내지 못했던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선유의 의식에 스며들었다. 이렇게 쉬운 일을 두고, 왜 그토록 오래 망설였던 걸까? 다 내가 겁을 집어먹고 있었기 때문이야. 비난받고 싶지 않아서 부딪칠 용기가 없었던 거야. 그동안 원망했던 시부모님께 죄송스럽고,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선유는 시부모님께 말로 마음을 전하는 데 서툰 며느리였다.


10월 셋째 주 토요일이었다. 선유의 사촌 언니인 선미의 딸이 수원에서 결혼식을 하는 날이었다. 희야는 선유에게서 결혼식에 갔다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는 말을 들었다. 희야는 호진의 사촌 동생인 정훈 말고는 아직 친척이 될 사람들을 만난 적이 없었다.

“엄마한테 사촌 언니가 있거든. 사촌이 뭔지 알아?”

선유는 희야를 옆에 앉히고 물었다.

“몰라.”

사촌이라는 말은 희야에게는 처음 듣는 낯선 단어였다. 선유는 종이와 연필을 가져와 동그라미를 그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자, 이 동그라미가 엄마의 아버지야. 그리고 이 동그라미는 엄마 아버지의 형이야. 이 두 사람이 형제인 거야. 이 말은 알아듣겠니?”

“응.”

희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치원에는 형제가 같이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엄마 아버지 형한테 자식들이 있어.”

선유는 두 동그라미 중 한 동그라미 아래에 줄을 긋고는 다시 동그라미를 여러 개 그렸다.

“이 사람들하고 엄마하고 사촌이라고 해. 어려워?”

“응.”

생전 처음 듣는 말들이라 희야가 금세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선유는 고개를 잠시 머뭇거린 후, 설명을 계속했다.

“엄마 사촌이 다섯 명인데 그중에 제일 큰 언니가 있어. 그 언니 딸이 오늘 결혼해. 거기 가면 엄마 사촌들을 다 볼 수 있어. 그리고 희야 큰 외삼촌하고 외숙모도 올 거야.”

희야는 선유의 두 남동생에 대해서는 여러 번 들어서 알고 있었다. 미국에 사는 호진의 여동생은 고모이고, 선유의 남동생들은 외삼촌이라고 배웠다. 희야는 모든 호칭이 혼란스럽고 뭐가 뭔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저 선유, 호진의 동생들이라는 것 말고는 희야와 어떤 관계가 될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선유의 설명을 듣다 보니

머리가 핑핑 도는 것 같았지만, 희야는 언제나처럼 얌전히 듣고 있었다. 그래도 사진으로만 보았던 선유의 남동생을 처음 본다는 것은 조금 흥분되기도 했다. 외삼촌이라는 명칭은 좀 낯설었지만, 왠지 따뜻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호진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해서 설명했다. 희야는 선유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고, 호진의 부모님이 자기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유치원에서 그 정도는 배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희야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생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뭐가 달라질까?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는 말에 희야는 조금 긴장했다.

“희야야, 할아버지가 아프셔. 잘 걷지도 못하시고 말도 잘 못하셔. 그래도 무서워하지 마. 알았지?”

호진은 약간 걱정되는 눈빛으로 희야에게 말했다. 희야는 호진에게서 그렇게 걱정되는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왜 아파?”

희야는 살짝 겁도 나고 궁금해서 물었다.

“응. 파킨슨이라는 병인데 그 병에 걸리면 그렇게 돼.”

호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밥도 못 먹어?”

희야가 걱정되어 되물었다.

“먹기는 하시는데 자꾸 음식을 흘리신단다.”

호진의 설명에 희야는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살짝 무서웠다. 그런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유는 희야에게 도톰한 분홍색 원피스를 사 입혔다. 털이 달려있어서 따뜻하긴 했지만, 움직일 때마다 몸에 걸리는 느낌이 났다. 소매가 없는 원피스라 안에 분홍색 블라우스를 받쳐 입고, 짙은 레깅스와 분홍색 구두까지 신겨졌다. 구두가 바닥에 닿을 때마다 딱딱한 소리가 났다.

“이렇게 입으니 희야한테 귀티가 흐르네.”

선유가 만족감이 가득한 얼굴로 희야를 감탄하듯 쳐다보았다.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아. 처음 만났을 때는 상상할 수도 없었는데.”

희야는 자기 얼굴이 뭐가 달라졌다는 건지 모르겠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소망원에서도 이모들이 ‘피부가 밝아졌다’, ‘예뻐졌다’는 말을 하곤 했다. 가끔 거울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했다. 희야는 편한 옷이 좋았다. 하지만 선유가 골라준 옷은 벗고 싶어도 벗을 수 없는 옷 같았다.

결혼식에는 선유의 사촌들, 조카들까지 다 와서 희야를 소개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혼식과 동시에, 희야에게는 또 다른 낯선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선유의 사촌들은 자연스럽게 희야를 반겨주었다. 하지만 희야는 캠프나 교회에 갔을 때처럼 너무 많은 사람을 소개받아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말들이 한꺼번에 들려서 귀가 간질간질했다. 희야는 선유 손을 꼭 붙잡고, 사람들이 안 보이게 몸을 반쯤 숨겼다.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큰외삼촌과 외숙모가 도착하지 않았다. 차가 막혀 늦는다고 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에서야 두 사람이 홀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서둘러 사촌들과 인사를 나누고 호진과 선유 쪽으로 급히 다가왔다.

“네가 희야구나. 반가워!”

선유처럼 키가 작고 하얀 피부를 가진 외숙모가 희야를 살짝 포옹했다. 갑자기 안아줘서 놀랐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굳지 않았다. 외숙모는 희야 옆에 너무 가까이 오지 않으면서도 멀어지지 않았다. 외숙모가 어디로 가든, 희야는 자연스럽게 그 옆에 서 있었다.

딩동.

벨 소리가 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활짝 열렸다.

“어유, 우리 희야 왔네.”

뽀글뽀글한 머리에 뚱뚱한 할머니가 환한 웃음을 머금고 희야를 반겼다.

“우리 희야 정말 예쁘네. 옷도 예쁘게 입었네.”

거실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할머니는 현관에 서서 희야의 외모며 옷차림을 칭찬했다. 할머니는 웃고 있었지만 얼굴이 너무 커 보여서, 희야는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만히 서 있었다.

거실로 향하는 문을 열자 커다란 휠체어가 희야의 눈에 들어왔다. 정면으로 보이는 안방 문은 살짝 열려있었다. 활짝 열린 오른쪽에 있는 방문으로 방 한가운데 철로 된 울타리 같은 게 달린 침대가 보였다. 병원에서 맡아본 적이 있는 냄새가 거실까지 흘러나왔다.

“희야...왔어?”

보이지 않는 어디에선가 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아버지.”

호진이 대답하며 먼저 거실로 들어갔다. 선유의 손을 잡은 희야가 조용한 발걸음으로 따라 들어갔다. 할아버지가 혼자 일어서려고 소파 팔걸이에 손을 짚고 힘을 주고 있었다.

“일어서지 마세요, 아버지. 넘어지세요...”

호진은 다급히 말한 후 할아버지를 부축해 앉혀드렸다. 그리고 희야의 손을 잡고 할아버지 앞으로 데려갔다.

희야는 병원 냄새와 휠체어, 그리고 손을 덜덜 떠는 할아버지를 보고 가슴이 잠깐 내려앉는 것 같았다. 희야는 지금까지 이렇게 늙고 아픈 사람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희야는 놀라거나 무서워하는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여기서는 울거나 뒤로 물러서면 안 될 것 같았다.

“희야...이리...와서...앉아..”

할아버지가 무릎을 가리키며 희야를 불렀다.

“희야야, 할아버지 무릎에 가서 앉아.”

호진의 말에 희야는 주저할 틈도 없이 할아버지 무릎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두 손을 앞으로 공손히 모으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선유는 그 장면을 사진에 담았다. 사진 속 할아버지는 양쪽에만 허연 머리칼이 남아있고 이마가 반들반들 빛이 났다. 희야의 허리를 안고 떨리는 손을 깍지 낀 채, 웃고 있었지만, 웃는 얼굴은 아니었다. 희야는 오른손을 왼손 위에 살포시 포개어 할아버지 손 아래 놓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빨리 할아버지의 품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할아버지 손이 풀릴 때까지 가만히 있어야 했다.

“아버지, 희야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호진이 할아버지의 귀에 대고 낮게 말했다. 그 말에 할아버지는 희야의 머리에 떨리는 손을 얹었다. 희야는 웅얼웅얼하는 할아버지의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기도하는 동안 희야는 몸을 비틀거나 꿈지럭대지도 않고, 숨을 크게 쉬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잠시 후 할아버지의 무릎에서 벗어난 희야는 조금씩 긴장이 풀어졌다. 처음 선유와 호진의 집에 갔을 때처럼 거실을 돌아다니며 “이건 뭐예요?”하고 물었다. 베란다로 향하는 창문 앞에 깔아놓은 초록색 잔디 같은 것이 신기해 자꾸 그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이게 뭐 하는 거야?”

희야가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호진에게 물었다.

“미니 골프라고 하는 거야. 희야도 한번 쳐 볼래?”

호진은 기다란 채를 쥐고 흰 공을 그 초록색 잔디 위에서 굴렸다. 그리고 채를 희야에게 내밀었지만, 희야는 고개를 저었다. 처음 보는 거라 잘할 자신이 없었다. 나중에 오면 해 볼 참이었다. 희야는 또다시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피곤한 하루였기에 금세 잠으로 빠져들었다. 희야는 그날이 할아버지를 처음 보는 날이자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알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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