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생모 이야기
생모 이야기
“희야야, 안녕!”
“응.”
선유의 전화에 희야는 낮고 탁한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이번 주 잘 지냈어?”
“응.”
“아빠랑 잘 오고 있어?”
“응.”
“엄마는 희야 빨리 보고 싶어. 이따 보자.”
“으응.”
금요일 오후마다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매주 똑같은 전화, 똑같이 짧은 대화. 선유는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 있었고, 희야는 호진과 기차 안에 있었다. 희야는 만나면 곧잘 말을 했지만, 전화할 때는 여전히 “응.”이 전부였다.
버스 창밖으로 노란 은행나무와 붉게 물드는 단풍이 스쳐 지나갔다. 늠름한 은행나무가 정복을 입은 장교들처럼 길가에 정렬해 있었다. 가끔 불어오는 쌀쌀한 바람에 은행나무 잎이 노란 눈물이 되어 뚝뚝 떨어졌다. 기쁨을 머금은 눈물이었다. 선유는 모든 일이 시작됐던 봄을 떠올렸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가. 이제 끝이, 아니 새로운 시작이 다가오고 있었다.
선유는 계절의 탓인지 자주 감상적인 기분에 젖어 들곤 했다. 올가을은 유독 심했다. 앞으로 두 달, 길어야 석 달이면 희야의 입양이 확정될 것이다. 그날을 기대와 설렘으로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선유의 상상력은 걷잡을 수 없이 날아갔다. 희야에게 뜻하지 않은 사고가 나거나, 선유나 호진에게 불운이 닥쳐 희야와 헤어질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소설 같은 이야기를 꾸며냈다. 그런 상상이 떠오를 때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어느새 볼을 타고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희야는 여전히 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선유에게는 마치 실체 없는 환상처럼 느껴졌다. 희야가 눈앞에 현실로 다시 나타나야 선유의 불안한 상상력이 경박한 요동을 멈췄다.
아파트 앞 공터는 저녁 무렵이면 주차한 차들로 가득 찼다. 아이들이 타는 자전거도 잔뜩 무더기를 이루어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었다. 아파트 후문 왼쪽 구석에는 주민들의 쉼터인 팔각정 모양의 정자가 세워져 있었다. 제법 키 큰 나무들이 심어있어 입구에 들어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게 시야를 가렸다. 선유는 희야가 도착할 즈음 7동 앞에 나와 두 사람을 기다렸다. 매번 설렘으로 두근거리는 기다림. 아직 조명이 밝혀지기 전 어스름 속에서 호진의 손을 잡은 희야의 실루엣이 어른거리며 다가왔다. 이제는 익숙해져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희야야!”
선유는 이런 설렘을 품고 누군가를 기다려 본 적이 있었던가, 문득 과거를 더듬어 보았다. 서른이 넘어서야 시작된 호진과의 연애. 그때까지 선유는 데이트 약속을 하고서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설레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호진과 짧은 넉 달의 연애가 끝나자, 설렘은 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지금 느끼는 감정은 마치 짝사랑에 빠진 것과 같았다. 그러나 그 애타는 감정 속에는 그리움보다 확신이 더 컸다. 희야는 손을 흔드는 선유를 보면 여전히 쑥스러운 듯 웃음을 지었다. 걸음도 느릿느릿했다. 아직은 “엄마!”하고 달려오지 않는다. 선유는 조만간 현관문을 열어젖히거나, 밖에서 희야가 “엄마!”하고 소리치며 달려올 순간을 상상하며 가슴이 뛰었다. 그 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집에 와 지내는 이틀 삼일은 고요하게 지나갔다. 이제 희야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두 번의 행사가 지나고 나서, 희야의 마음속에 작은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그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희야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희야는 이제 선유와 호진의 집으로 갈 날을 조금씩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가야 한다면, 이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의 저항감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었다. 가끔 불안과 슬픔이 찾아오기는 했지만, 그 감정은 예전만큼 강하지 않았다. 그럴 때면 희야는 조용히 구석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기곤 했다. 하지만 금요일마다 호진과 선유를 만날 때면, 그들의 익숙한 얼굴이 반가워졌다. 어느새 친숙하고 따뜻해진 얼굴이었다. 희야는 그들이 진심으로 좋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언제나 변함없이 기다려주고 맞이해 주는 그들에 대한 신뢰가 서서히 자라났다. 그들은 결코 자신을 외면하지 않을 것도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에 대한 불안보다는 편안함이 더 많이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꾸준한 배려 덕분인지 희야의 마음이 점점 열려가고 있었다. ‘저들과 함께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몰라.’ 특별한 기적 없이 희야의 마음은 서서히, 그러나 자연스럽게 안정되어 갔다. 행사 때의 불안은 아마 희야가 겪은 마지막 극도의 불안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불안의 강도는 한층 약해졌음을 희야는 느꼈다.
선유는 희야의 변화를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희야가 다시 조금씩 안정감을 되찾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선유는 희야와 입양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눌 적당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대화를 언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어느 날 밤, 희야는 선유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었다. 조용한 방 안에서 희야의 평온한 숨소리가 선유의 귀에 닿았다. 희야가 잠이 들면, 호진이 그녀를 안아 작은 방에 데려다 눕혔다. 희야의 방으로 꾸며질 공간이었다. 선유는 희야 쪽으로 몸을 돌려 옆으로 누운 채, 평소보다 훨씬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희야는 이제 아빠, 엄마랑 살 준비가 됐어?”
선유는 조용히, 진지하게 물었다.
“응.”
희야는 평온한 표정으로 짧게 대답했다.
“아빠, 엄마랑 살면 좋을 것 같아?”
선유는 가볍게 덧붙였지만, 결코 가벼운 질문이 아니었다.
“응.”
희야는 또다시 조용히 대답했다.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다.
“그럼, 이제...”
선유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 질문을 던지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선유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이제 말이 꼭 나가야만 했다.
“그럼 이제...낳아준 엄마하고는 살지 못하게 될 텐데, 괜찮을까?”
선유는 묻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침묵이 흘렀다. 희야는 아무 말 없이 천장만 바라보았지만,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선유는 잠시 기다렸다. 그때 뜻밖의 말이 희야의 입에서 나왔다.
“나는 엄마가 나를 보러 와 줄 거라고 믿었어. 언젠가 엄마가 찾아올 거라고 기다렸어.”
쿵! 선유의 가슴이 무언가 큰 힘에 눌린 듯 아팠다. 무엇인가가 속에서 부서진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그랬구나...그런데 엄마는 오지 않았구나.”
선유의 목소리는 떨려 나왔다.
“...”
“...”
“그래도 꼭 올 거라고 믿었어.”
희야는 다시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그랬구나. 희야는 그렇게 엄마를 많이 기다렸구나...”
그 순간, 그동안 희야가 어떤 마음으로 지내왔는지에 대한 비밀이 드러났다. 그 희망 하나로, 희야는 외로움과 슬픔을 견뎌온 것이었다. 생모라는 존재는 희야의 마음속에서 희미하게 살아있었다. 구체적인 모습은 알 수 없었지만, 그 존재는 늘 꿈속에서 모호하게 떠돌았다. 만약 입양되지 않는다면, 희야는 계속해서 생모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 기다림은 끝없이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가슴이 아려올 때, 선유는 ‘가만있어.’라고 자신에게 말하며, 눈물이 나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아빠랑 엄마가 생겼으니까 낳아준 엄마를 기다리지 말자. 나중에 네가 커서 만나고 싶으면, 그때 만날 수 있게 도와줄게. 그럴 수 있겠니?”
희야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희야의 눈에 물기가 가득히 고이는 게 보였다.
희야는 선유의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품어왔던 희망을 잃어버렸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언젠가는 다가올 거라고 믿었던 순간이 이제는 결코 올 수 없음을 깨달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이제 내 엄마를 기다리지 말아야 하는 거구나.’ 희야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동안 품고 있었던 희망이 한순간에 툭 끊어진 것 같았다. 희야의 앨범에는 둥근 테에 끈이 달린 모자를 쓰고, 노란 조끼를 입은 예쁜 여자분이 세 살 무렵의 희야를 두 팔로 안고 찍은 사진이 한 장 있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희야는 늘 그 여자가 자기를 낳은 엄마라고 믿었다. 그녀의 햇살같이 환한 웃음이, 따뜻한 품이 희야에게 유일하게 엄마의 이미지로 비추어졌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니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입양된 후, 어느 날 선유와 함께 앨범을 보다가 희야는 우연히 “이 사람이 나 낳은 엄마 아니야?”라고 물었다. 선유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아니야. 이분은 봉사하러 온 분이야.”라고 말했다. 그 순간 희야는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품고 있던 믿음이 흔들리며 착각 속에 살고 있었음을 비로소 알았다. 그 후로 희야는 생모를 어떻게 떠올려야 할지 몰랐다. 마음속 모래사장에 그 얼굴을 파묻었다.
희야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그렁그렁 고인 눈에 슬픔을 담고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상실감이었다. 말로 끝내 표현할 수 없는 그 먹먹한 감정의 실체와 마주하자,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끝도 없이 슬펐다. 차라리 엉엉 울 수 있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마음껏 눈물을 쏟아낼 수만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양쪽 눈에 그득히 고여있는 것은 짜디짠 눈물뿐이었다. 선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희야의 눈물을 닦아주며 작은 어깨를 살포시 끌어안았다. 결국 더 는 참지 못한 듯, 선유의 뺨을 타고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입양은 아이에게 새로운 부모를 주는 일이지만, 동시에 생부모와 다시 결합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산산이 부수는 일이라는 뼈아픈 진실을 선유는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선유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생모를 상상으로만 그려왔을 희야의 마음을 끝내 헤아릴 수 없었다. ‘내가 혹시 희야를 더 힘들게 하는 말을 한 건 아닐까.’ 그래도 선유는 진실을 말해주는 편이 낫다고 스스로 설득했다. 다만, 그 시기가 너무 이르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유는 결국 자신의 직관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선유가 등을 토닥이는 손길 아래서, 희야는 서서히 꿈속으로 가라앉았다. 오늘 밤 꿈에서는 낳아준 엄마와 작별하게 될지도 몰랐다. 어쩌면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꿈속에서나마 서로 약속할지도 몰랐다.
“여보, 오늘 희야랑...생모 이야기를 했어.”
희야를 옆 방에 재우고 돌아온 호진에게 선유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뭐라고?”
호진은 놀랄 때마다 그러하듯 눈을 크게 뜨고 몸을 움찔하며 되물었다.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다.
“희야가 그동안 생모가 찾아오길 기다렸다고 하더라. 그 얘길 듣는데 눈물을 참느라 정말 힘들었어.”
“그랬었구나...”
평소 공감 능력이 거의 제로라며 선유가 타박하던 호진조차, 찡하게 울려오는 미세한 감정의 흔들림을 감지하는 듯했다.
“그래서...이제 낳아준 엄마는 더 기다리지 말라고 했어. 대신 나중에 크면 꼭 만나게 도와주겠다고.”
“그랬더니 희야가 뭐래?”
호진이 궁금함을 감추지 못하고 되물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눈에 눈물만 그렁그렁 고이더라. 너무 가엾어서...나도 같이 울어버렸어.”
“흠...”
호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여러 생각이 뒤엉킨 표정이 그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내가 괜히 희야를 힘들게 한 건 아닐까. 말하지 말 걸 그랬나?”
“그래도...말해주는 게 나았을 것 같아.”
“그럴까...희야 생모는 어떤 사람일까. 지금은 어디서 뭘 하며 살고 있을까. 당신은 궁금하지 않아?”
선유는 그동안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질문들을 이참에 꺼내놓았다.
“나도 궁금하지.”
“난 아주 궁금해. 내가 이런데, 희야는 오죽하겠어? 앞으로는 마음속에 꽁꽁 묻어두고 혼자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곁에서 같이 아파해주려고 입양하는 건데... 이런 내 마음을 희야가 알 날이 올지 모르겠어.”
선유는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미세하게 떨리는 속눈썹을 숨기지 못하며 말했다.
“언젠가 알게 되겠지.”
“그러길 바라지만...입양하고 나면 분명 생모에 관해 물을 거야. 다른 것은 다 말해줄 수 있어도, 생모 나이는 말 못 할 것 같아. 희야가 너무 큰 충격을 받을 것 같아서. 그래도 계속 물어보면...어떡하지?”
선유의 눈빛에는 간절한 질문이 담겨있었다.
“그건...그때 가서 생각해봐야지.”
“그래..지금 고민해봐야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 그렇게 어린 나이에 임신하고 출산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희야를 뱃속에 품고 있을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난 도저히 상상도 못 하겠어. 희야를 보낼 때는 또 어땠을까? 아주 슬펐겠지. 아니면 너무 어려서 잘 몰랐을까...”
어느새 선유는 호진을 잊은 채, 혼자만의 독백 속으로 빠져들어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엔, 호진은 영 어울리는 상대가 아니었다.
선유는 희야의 생모에게 끝내 보내지 못할 편지를 써 내려가곤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당신이 낳은 아이를 입양해서 키울 사람입니다. 당신은 지금 잘 지내고 있나요? 지금도 어딘가에는 계시겠지요. 저는 이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들여놓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 유전적인 특징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아이에게 생명을 건네어 이 고된 세상을 살아가게 할 용기도 제게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유야 무엇이었든, 당신은 한 생명을 이 세상으로 데려오셨지요.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당신이 충분히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저는 세상에 생명을 내놓을 용기는 없었지만, 이미 태어난 생명만큼은 보살핌과 사랑 속에서 자라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입양을 결심했고, 그 과정에서 희야를 만났습니다. 분명 언젠가는, 희야가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날이 온다면, 부디 희야를 만나주시길 바랍니다. 어떤 사정이 있더라도, 당신이 희야를 만나주지 않는다면, 아이가 얼마나 깊이 상처받을지 한 번만 헤아려주세요.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희야에게 영원한 환상으로만 남지는 말아 주세요. 부디 건강하게 잘 지내시다, 희야를 만났을 때 아이의 마음이 더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희야는 제가 사랑으로 잘 키울 테니, 더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동안 참 많이 힘드셨지요. 언젠가 만나게 된다면 꼭 한 번 안아 드리고 싶습니다. 희야의 삶
속에서 다시 마주해, 서로 아프고 상처받았던 마음을 훌훌 털어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날을, 조용히 기약해봅니다.
선유는 희야를 낳아주어 고맙다는 말을 차마 입에 올릴 수 없었다. 자궁에 열 달 을 품었던 아이를 떠나보내야 했던 생모에게, 어떻게 ‘낳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기묘하게 얽힌 운명을 과연 인간의 머리로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잠든 희야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선유의 마음은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만 갔다.
선유는 심지어 희야가 원한다면, 성인이 되어 생모를 만나 함께 살게 되더라고 괜찮다고 여겼다. 서로 떨어져 있던 시간을 모두 메울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공상에 불과한지 선유는 차츰 깨닫게 되었다. 그때까지 선유에게 입양은 아직 동화이자 판타지에 머물고 있었다. 십 년이 흐른 뒤, 희야가 실제로 생모를 찾아내 당장 그에게 가겠다고 했을 때, 선유는 자신 안에 잠들어 있던 깊고 깊은 불안을 자각했다. 희야의 엄마라는 자격이 통째로 흔들리는 거대한 진동을 겪는 듯했다. 이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로 남겨두고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겠다.
먹먹함에 잠을 이루지 못한 선유는 언젠가 소망원에서 보았던 희야의 아기 때 사진을 떠올렸다. 희야의 앨범을 아직 받아오지 못해, 기억은 어렴풋할 뿐이었다. 희야에게는 흔한 돌 사진 하나 없었고, 돌 무렵 어느 날 몰아서 사진을 찍은 기록만 남아있었다. 사진 속의 희야는 늘 울고 있었다. 눈을 질끈 감고 악을 쓰듯 울거나, 울음이 가라앉지 않아 누군가가 건네준 폴더폰을 꼭 쥔 채 그렁그렁한 눈으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은 단 하나도 없었다. 웃을 때조차 허탈하게 넋을 놓은 표정이었고, 울지 않을 때는 무언가를 지나치게 골똘히 응시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던 그날만 희야가 유독 많이 울었던 건지, 아니면 늘 그렇게 울었던 건지 선유는 알고 싶어졌다. 여느 아이들의 한 살 무렵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 사진들이 남긴 아픈 여운 때문에, 선유는 차마 다시 그 사진을 보자고 말할 수 없었다. 입양하면 두고두고 들여다볼 생각이었기에 더 그랬다. ‘희야가 혼자 울지 않도록, 나를 향해 방긋 웃도록 그때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야 했어. 내가 과연 희야의 결핍을 메울 수 있을까. 그게 과연 가능할까.’ 선유는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웃어줄 사람 하나 없었던 그 어린 희야를 떠올리며 견뎌내리라 다짐하면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였다.